한류스타가 된 베짱이
이솝우화는 고대 그리스 작가 이솝이 창작한 이야기들이다. 토끼와 거북이,
황금알을 낳는 암탉,시골 쥐와 서울 쥐,여우와 두루미,늑대와 양치기 소년 등
우리에게 친숙한 동물들을 의인화하여 쉽고 재미있게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교훈적인 결말로 전 세계 어린이들의 덕성 교육에 널리 활용되고 있다.
이솝우화 중 하나인 ‘개미와 베짱이’ 원작의 줄거리는 이렇다.
베짱이는 언제나 풀잎에 앉아 노래를 부르거나 그늘에서 누워서 잠을 청한다.
그런 베짱이는 날 좋은 봄에도, 해가 쨍쨍 내리쬐는 여름에도 뙤약볕에서 힘들게
일만 하는 개미를 한심하게 생각하며 놀려댄다.
그러나 개미는 베짱이의 타박에도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나간다.
단풍잎이 하나 둘 떨어지는 가을에도 베짱이와 개미의 삶에는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눈이 펑펑 내리고 찬바람이 부는 겨울이 오자 둘의 입장은 달라진다.
노래를 부르며 놀기만 하던 베짱이는 추운 겨울 오갈 곳 없이 배고픔과 추위에 떨었지만
겨울을 나기 위해 열심히 일한 개미의 집 굴뚝에서는 모락모락 밥 짓는 연기가 올라오고,
따뜻한 집 안에서는 개미 가족의 행복한 웃음꽃이 피어난다.
베짱이는 너무 춥고 배가 고파서 개미의 집 문을 두드렸지만 개미는 게을렀던 베짱이를 문전박대한다.
개미와 베짱이의 교훈은 열심히 노력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이 되자는 것이다.
그런데 이솝의 계몽 의지와 교훈은 싹 없애버린 새로운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가
요즘 사람들 사이에서 전해지고 있다.
현대판 개미와 베짱이는 우화 속 교훈은 오로지 재미 위주로 각색되었다.
그 내용을 보면, 가난한 가정에 태어난 월급쟁이 개미는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부동산 부자를 부모로 둔 베짱이를 절대 따라잡지 못한다.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둘의 빈부격차는 더 심해진다. 한편,
일은 안 하고 열심히 노래만 부른 베짱이가 한류스타가 되어 대성공한다.
어릴 적 우리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었던 이솝우화가 이렇듯 전혀 교훈적이지도,
교육적이지도 않은, 우스운 이야기로 전락되어 아이들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인터넷을 통해 삽시간에 퍼져나가고 있다는 데 여간 마음이 쓰린 게 아니다.
성장과정에서 올바른 교육을 통해 지식과 인성을 함께 배워나가야 할 어린아이들에게
허무맹랑하게 변경된 이야기들이 어떻게 작용할지, 특히 아이들이 변경된 내용이나
그릇된 정보를 재미와 교훈 사이에서 올바로 판단할 수 있을지 우려스럽다.
파급력이 큰 방송도 역사적 인물을 희화화하거나 역사를 왜곡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드라마 ‘최고다 이순신’은 극중 여주인공의 이름을 성웅 이순신 장군과 같은 이름을 사용했다.
문제는 “이름이 너무 세면 팔자를 말아먹는다”, “이순신이 백원짜리지 천원짜리냐”,
“해경에 지원해서 독도나 지켜라” 등
이순신 장군을 연상케 하며 비하하는 대사들을 거침없이 방송에 내보냈다는 점이다.
문제의 심각성을 느낀 어느 단체에서는 역사적 혼란을 가져오는 이 드라마의 제목을 바꾸고,
극중에서 이순신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가처분신청을 내기도 했지만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문제는 이러한 근본 없고 터무니없는 이야기들과 왜곡된 역사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진실로 둔갑해 버린다는 데 있다.
변경된 내용에 노출된 학생들은 동화의 원 줄거리를 모르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야스쿠니신사의 신사를 ‘젠틀맨(gentlemen)’이라는 의미로 알고 있거나
3.1절을 ‘삼점일절’이라고 읽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 이러다가 독도도 빼앗기고 마는 것은 아닐까.
진실되게 보존되어야 할 역사까지 왜곡되어 잘못된 정보와 지식이 난무하는 것에
뒤늦게 대비책을 마련하고 있으니 곧 바로잡히리라 기대해본다.
이제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는 풀어야 할 숙제가 하나 더 있다.
우리의 영혼 구원과 직결되는 교회사는 더 크게 변질되고 왜곡되었다는 것이다.
이를 바로잡지 않고는 아무도 구원을 받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당연하게 일요일예배를 지키고, 크리스마스를 지켰던 기독교인들에게
이 모든 행위가 하나님의 뜻이 아닌 왜곡된 것이라고 한다면 놀랄 사람이 꽤 많을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구원의 역사를 훼방하는 자가 등장할 것인데,
그가 바로 하나님의 절기를 변개하여 성도들을 괴롭힐 것이라고 알려주고 있다.
그가 장차 말로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할 것이며 성도는 그의 손에 붙인 바 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
(다니엘 7:25)
하나님의 때와 법이라 함은 정해진 날짜에 지켜지는 하나님의 계명을 말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하늘 백성이라면 응당 하나님께서 지키라 명하신 계명에 순종하여
지킬 것이고,
그에 따라 하나님께서는 구원을 선물로 주시게 되는 것이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요한복음 14:15)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요한일서 5:3)
여호와여 내가 주의 구원을 바라며 주의 계명을 행하였나이다 (시편 119:166)
그런데 누군가에 의해 구원이 약속된 하나님의 계명이 완전히 짓밟히고 왜곡됐다.
그 단체를 찾아야 한다. 그 단체가 바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많은 사람들을 지옥으로
인도하는 멸망받을 자들이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성서만이 종교 사정에 있어 유일하게 안전한 길잡이라고 믿고 있다.
또 그리스도교 신앙에 결부된 기본적 의무의 하나가 주일을 지키는 것임도 믿는다.
… 나는 성서를 창세기 첫 장부터 묵시록 끝 장까지 다 읽어 보았지만
주일을 거룩히 지내라는 구절은 발견하지 못했다.
성서에 기록되어 있기는, 한 주일의 첫날인 일요일을 지키라 하지 않고
마지막 날인 토요일을 지키라고 되어 있다.”
-억만인의 신앙, 가톨릭출판사-
“그렇지만 성서에 일요일이 아니라 …
이것은 비록 성서에 명시된 글에 따른 것이 아니고 가톨릭 교회의 권위에 바탕을 둔 것이지만
그들은 이 관습을 그대로 계속해오고 있다.”
-억만인의 신앙, 가톨릭출판사-
이 책들을 통해 성경의 예배일인 토요일 안식일이 로마 가톨릭 교황청의 권위로
A.D. 321년 지금의 주일예배인 일요일예배로 둔갑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155년 폴리캅은 로마 교황 아니케터스와 이 문제를 토론하였으나
… 아니케터스보다 훨씬 더 유력하던 로마 교황 빅터는 모든 혼란을 중지시키고
부활절(유월절)을 일요일에 지키는 도미닉의 규칙을 채용하도록 전 교회에 강요하였다.”
-교회사 초대편, 대한기독교서회-
죄사함과 영생의 축복이 있는 하나님의 계명 유월절 역시 로마 가톨릭 교황청이
니케아 종교회의를 통해 A.D. 325년 폐지해버렸다.
“로마법황청이 고대 로마력으로 동지날인 크리스머스로 성탄일을 통일시킨 것은
4세기 중엽쯤의 일이었다.”
-조선일보, 1984년 6월 28일자-
성경에는 없는 태양신의 탄생일인 크리스마스를 도입한 단체 역시
로마 가톨릭 교황청이다.
심지어 “교황은 하나님의 율법을 수정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십계명까지
바꿔버렸으면서도 “주여 주여 저는 주를 믿습니다”를 외치면서
거룩한 척하는 뻔뻔함을 보여주고 있다.
구원은 하나님의 말씀에 가감 없이 순종했을 때 주어지는 축복이다(요한계시록 22:18~19).
반대로 변경된 내용이 아무리 편하고, 쉽고, 재미있고, 보편화되어 있다
한들 그것을 통해 얻어지는 것은 멸망뿐이다.
이솝우화 속 베짱이는 일락에 빠져 겨울을 준비하지 못해 망했고,
개미는 열심히 겨울을 준비했다는 것이 진실이다.
그리고 이것은 자손 대대로 교훈을 주는 이야기로 전해져야 하되, 절대 변질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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