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신부는 누구인가!!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 22:17)
밧모섬에서 유배 중이던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계시로 성령시대의 구원자에 대한 예언을 기록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성령과 신부로부터 시작되는 구원의 메시지를 볼 수 있다. 그런데 교계에서는 이 성구의 ‘신부’ 존재를 놓고 갑론을박하며 다양한 해석을 내놓고 있다. 교리비교를 통해 과연 ‘신부’는 누구를 의미하는지 살펴보자.
신부는 성도다
① 근거
기성교단에서는 요한의 계시 속에 드러난 ‘신부’를 성도라고 말한다. 성도가 ‘그리스도를 남편으로 둔 신부’라는 근거는 성경의 이 말씀 때문이다.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고린도후서 11:2)
사도 바울이 고린도 지역에 있는 교회에 보내는 두 번째 서신에서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 한다’고 기록했다. 남편이신 그리스도께 드려지는 정결한 처녀는 당연히 ‘신부’다. 그러므로 성경에 기록된 모든 ‘신부’라는 단어는 성도를 뜻한다고 여긴다.
② 교단
신부를 성도라고 믿는 교단은 모든 기독교 및 소종파인 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신천지),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안식교), 여호와의증인 등이 있으며, 천주교에서는 신부를 말 그대로 주교 다음 가는 성직자인 신부(神父)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③ 결론
성경에 기록된 ‘신부’가 ‘성도’라고 해석되는 부분도 있다. 그러나 성경의 모든 ‘신부’를 오직 ‘성도’라고만 해석한다면 오류에 빠지고 만다. 성경의 전후 문맥을 잘 살펴서 그 의미를 파악하지 않고 단편적으로만 해석한다면 하나님의 뜻이 왜곡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양’에 대해 살펴보자. 성경에서 양(羊)은 통상적으로 목자이신 그리스도를 따르는 ‘성도’를 말한다. 그렇다고 성경의 모든 ‘양’을 성도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성경은 예수님을 가리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도 증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중적인 의미를 잘 모르고 단편적으로만 본다면 억지 해석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신부’가 ‘성도’라는 해석도 단편적 시선에 불과하다. 요한계시록 22장에 성령과 함께 등장하는 ‘신부’가 ‘성도’가 될 수 없는 이유는 같은 구절에도 잘 드러나 있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 22:17)
성령과 신부께서 주시는 것은 ‘생명수’다. 인류의 구원을 위해 주시는 생명수는 오직 구원자께서만 베푸실 수 있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 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요한계시록 21:5~7)
‘보좌에 앉으신 이’는 구원자이신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 목마른 자들에게 생명수를 주신다는 말씀이다. 그러니 생명수를 주시는 ‘성령과 신부’는 다름 아닌 구원자가 된다. 성령만이 구원자가 아니라 ‘신부’ 또한 구원자로 오시는 하나님이다. 그러니 ‘신부’는 오직 ‘성도’로만 해석된다는 주장은 비성경적 주장이다.
성도는 생명수를 받는 존재이지 결코 생명수를 주는 존재가 아니다. 다시 말하면, 성도는 구원을 받아야 하는 대상이지 구원을 베풀 수는 없다. 그럼에도 ‘신부’를 ‘성도’라고만 해석한다면 성도 자신들이 하나님이라는 셈이 된다.
신부는 하늘 어머니다
① 근거
요한계시록 22장에 성령과 함께 나타난 신부는 하늘 어머니다. 요한은 21장에서 천사가 보여준 신부의 존재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요한계시록 21:9~10)
신부는 곧 어린양의 아내다. 성경의 ‘어린양’은 예수님이다(요한복음 1:29). 그러니 ‘어린양의 아내’라는 말씀은 ‘예수님의 아내’를 의미한다. 하지만 초림 예수님께서는 아내가 없으셨고 이 예언은 분명 속히 될 일에 대한 계시이므로 요한계시록의 어린양은 바로 재림 예수님을 뜻하며 어린양의 아내란 재림 예수님의 신부가 된다(요한계시록 1:1). 해서 요한계시록 22장에서는 ‘성령과 신부’라고도 표현하고 있다. 그 어린양의 아내를 요한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으로 기록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예루살렘’은 누구를 의미하고 있을까.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갈라디아서 4:26)
그렇다. 요한계시록의 ‘성령과 신부’는 하늘 아버지와 하늘 어머니시다. 요한은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이 성령시대 구원자로 오셔서 우리에게 생명수를 통해 영생을 허락하시는 계시를 기록했던 것이다.
② 교단
성경의 말씀대로 ‘신부’이신 하늘 어머니를 믿고 따르는 교단은 오직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가 유일하다.
③ 결론
어린양의 아내, 성령과 신부를 통해 하늘 아버지와 함께 하늘 어머니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예수님께서 알려주신 혼인 잔치의 비유에서도 성도들은 신부가 아닌 ‘청함을 입은 자들’ 즉 하객으로 표현된 것을 볼 수 있다.
예수께서 다시 비유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 혼인자리에 손이 가득한지라 임금이 손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가로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저가 유구무언이어늘 …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마태복음 22:1~14)
이와 함께 예수님 자신을 ‘신랑’으로, 성도들을 ‘혼인집 손님들’로 비유하신 말씀도 있다.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금식할 수 있느냐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는 금식할 수 없나니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마가복음 2:19~20)
이로 보건대 성도들은 ‘신부’가 아닌 혼인잔치에 청함을 입은 ‘손님’이다. 특히 요한은 계시록을 통해 신부가 예비된 혼인잔치에서 신부와 성도의 차이가 확실히 다름을 알려주고 있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요한계시록 19:7~9)
어린양의 아내인 신부는 혼인잔치에 들어가기 전에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있다. 요한은 성도들을 이 세마포로 표현했다. 실지로 결혼식을 올릴 때 신부는 드레스와 예쁜 장식물을 하고 있다. 이때, 신부와 장식물을 통틀어 ‘아름답다’고 하는 것이지 신부의 장식물만 가지고 아름다움을 논하지는 않는다. 성도는 장식물과 같다. 신부이신 하늘 어머니의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처럼 아름다운 행실로 하늘 어머니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성도들이다. 그런 성도들로서 자신의 영광을 하나님보다 더 앞세울 수는 없는 노릇인 것이다.
요한계시록 19장은 어린양의 아내이신 신부, 곧 하늘 어머니의 존재와 하늘 어머니의 영광을 위해 옳은 행실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성도들이 초대를 받아 즐겁게 천국잔치에 들어가는 것을 예언한 것이다. 성경에 나타난 ‘신부’는 때로는 ‘성도’로도 해석이 되지만 요한계시록에 예언된 ‘신부’는 구원자이신 ‘하늘 어머니’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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