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0월 9일 목요일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글자, 세종대왕의 한글-1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글자.세종대왕의 한글-1
이세상에는 약3천종의 말이 있지만, 글자는 고작 60종 가량에 불과하다고 합니다.그러고 보면 우리나라는 소수민족만 가진 고유 문자를 사용하는 축복받은 나라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더욱 자랑스러운 것은 그 모든 글자 가운데 누가,언제, 어떻게 만들었는지 명확하게 밝혀진 글자도 한글밖에 없다고 합니다.
또 이세상에서 가장 합리적이며 독창적인 글자는 어떤것일까요?그것 역시 우리나라의 글자인 '한글'이라고 합니다. 한글의 우수성과 ,합리성,독창성 등은 이미 전세계 모든 언어학자가 인정하고 있고 또 훌륭하다고 격찬하는 바입니다.
미국에 널리 알려진 과학전문지 디스커버리지 1994년 6월호에서 레어드 다이어먼드라는 언어학자는 한글을'독창적이고 세계에서 가장 합리적인 문자'라고 극찬한바 있습니다. 그는 또 한글이 간결하고 우수하기 때문에 한국인의 문맹률이 세계에서 가장 낮다고도 말했습니다.
소설'대지'의 작가 펄벅도 한글이'전세계에서 가장 편리한 글자'이며 가장 훌륭한 글자'라고 인정했고'한글을 만든 세종대왕을 한국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로 극찬하기까지 했다고 합니다.언어 연구학으로 세계최고의 명성을 자랑하는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언어학 대학에서는 세계 모든 문자를 합리성.과학성.독창성 등의 기준으로 순위를 매겨 열거했는데 그 1위는 바로 한글이었습니다.
영국의 존 맨이라는 역사 다큐멘터리 작가는 세계 주요 언어의 자모(字母)의 기원을 추적한 그의 저서 ‘알파 베타’라는 책에서 한글을 ‘모든 언어가 꿈꾸는 최고의 알파벳’이라고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또 ‘모든 언어학자로부터고전적 예술 작품으로 평가된다’, ‘단순하고 효율적이고 세련된 이 알파벳은 가히 알파벳의 대표적 전형이다’, ‘인류
의 위대한 지적 유산 가운데 하나다’는 등 거듭거듭 격찬을 했습니다.
급기야 1989년 6월, 유네스코는 세계에서 문맹 퇴치에 공이 큰 사람에게 주는 상을 제정했고 그 상의 명칭을 ‘세종대왕 문맹퇴치상(King Sejong Literacy Prize)’으로 명명했습니다. 이 세종대왕상은 1990년에 인도 과학 대중화 단체가 처음 수상한 이래 세계 곳곳의 문맹퇴치에 커다란 공을 세운 단체에 꾸준히 수여되고 있는 권위 있는 상입니다. 수상자에게는 소정의 상장과 메달 그리고 38,000달러의 상금이 지급되기도 합니다.
이 상의 이름에 세종이라는 이름이 들어간 것은 세종 대왕이 만든 한글이 세계에서 사용하는 글자 가운데 가장 배우기가 쉬워 지구상의 문맹을 없앨 수 있는 글자로 가장 적합하다고 세계가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한류’ 열풍이 부는 등 우리나라의 국력이 신장하면서부터는 호주와 일본 등 여러 외국의 고등학교나 단체에서 한국어를 교육 과목으로 채택하기도 하였고, 미국에서는 1997년부터 미국대학입학 수학능력시험에 한국어가 포함되기도 했습니다. 이외에도 세계 여러 대학과 단체에서도 한국어 강좌가 꾸준히 신설되는 가운데 있습니다.
‘어린 백성’을 위한 세종의 작은 배려가 낳은 위대한 업적
전 세계 학자들이 인정하고 명성과 칭찬을 받으며 위상이 높아져 가는 한글.
지금은 세계적으로 그 독창성과 합리성을 인정받아 전 세계의 명성과 칭찬을 받는 처지이지만 현재의 영광이 있기까지 순탄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한글은 처음 탄생하였을 때만 해도 양반들에게서 철저하게 외면당하던 천덕꾸러기 글자였습니다. 심지어 품위 있는 양반집 자제 이름에 비해 하층민 자제의 이름들이 ‘개똥이’ 수준이었던 것처럼 ‘상말을 적는 상스러운 글자’라는 뜻이 있는 ‘언문’이라는 이름으로 불려 한자에 대하여 비하되기까지 했습니다.
남의 나라 글자인 한자보다 배우기도 쉽고 쓰기도 편한 우리나라 글자였음에도 태어나자마자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것은 양반층의 집단 이기주의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양반들이 사용하던 한문은 서민과 양반을 구분 짓는 척도와 같았습니다. 한자는 양반 계층만이 사용할 수 있는전유물이었던 것입니다. 많은 일반 서민층은 글자가 없어서 불이익을 당해도 자신들의 뜻을 마음대로 펼칠 수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계층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이 한글을 사용한다는 것은 곧 양반 중심 계급사회의 붕괴를 의미하는 것이었기에 양반들이 좋아할 리가 없었습니다.
세종은 지배계층의 최상위에 존재하는 한 국가의 왕이었지만 양반들의 반발이 있을 것이 자명했기에 한글을 만든다는 사실을 알리지 못하고 혼자서 근 10여 년 동안 한글을 만드는 데 온 열정을 쏟았습니다.
일반인들은 집현전 학자들과 함께 한글을 만든 것으로 알고 있지만, 세종 혼자서 한글을 만들고서 집현전 학자들에게 알려 반포하게 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렇듯 한글 창제는 양반층의 눈을 피해 만든, 세종 혼자만의 비밀 프로젝트였던 것입니다.
세종이 양반층의 거센 반발도 무릅쓰고 한글을 만들기로 한 것은 다름 아닌 글자가 없어 제 뜻을 마음껏 표현하지못하는 ‘어린 백성’ 즉 ‘어리석은 백성’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훈민정음 서문을 보면 세종이 한글을 창제하고자 한분명한 이유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 말이 중국과 달라 한자와는 서로 통하지 아니하여서 이런 까닭으로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가 이것을 가엾게 생각하여 새로 스물여덟 글자를 만드니, 모든사람으로 하여금 쉽게 익혀서 날마다 쓰는 데 편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다(현대어로 해석).”
한자는 우리말을 표현하기에 어렵고 배울 기회도 쉽지 않아 양반을 제외한 서민층은 답답한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서민들의 애환을 알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유능하고 실력 있는 대학자가 많았지만, 누구도 어리석은 백성의 고충을 헤아리거나 안타까워하는 이는 단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세종 대왕이 한글을 만들었을 때에도 양반들은 ‘낮고 천하고 이익이 없는 새로 된 글자’로 한글을 업신여길 뿐이었습니다. 학자들은 대대적으로 상소문을 올려 연일 세종을 괴롭게 하기도 했습니다.
모두가 다 아는 글자를 만들 수 없다는 그들의 주장은 오직 자신들만이 문화적 사치를 누리겠다는 집단 이기주의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세종은 특권을 놓치기 싫어 한글 사용에 반대하던 많은 양반과 학자들을꺾고 백성의 어버이로서 어리석은 백성에게 문자를 주어 뜻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한글은 이후 모든 백성으로 하여금 각자의 뜻을 마음껏 글로 펼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훈민정음은 처음부터 백성을 위해 제작된 글인 만큼 배우기가 어렵지 않아 주로 여성과 일반 백성을 중심으로 보급됨으로써 민족의 얼을 담아내는 많은 작업에 도구로 쓰였고 문학적, 역사적으로 크게 이바지를 하게 됩니다.
이 한글은 일본강점기 때, 민족의 얼을 없애려는 식민지 정책에 의해 한동안 난관이 있기도 했지만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언문’이라는 천시받던 이름도 20세기에 와서 주시경 선생에 의해 ‘한글’이라는 새 이름으로 다시 태어나 세계 속에 그 위상을 우뚝 세우게 되었습니다
출처 하나님의교회 watv.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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