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월 3일 토요일

성삼위일체 성부=성자=안상홍님

성삼위일체 



성삼위일체는 기독교의 핵심교리다.
하나님이 성부, 성자, 성령 세 위격을 가진 분이라고 믿는다.
그동안 많은 신학자들은 셋이면서 하나인,
혹은 하나이면서 셋인 이 불가사의한 일을 증명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하지만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하나님은 어떻게 한 분이면서 세 분이 될 수 있을까.



성삼위일체의 의미

성삼위일체(聖三位一體)란 성부(聖父), 성자(聖子), 성령(聖靈)이 한 몸이라는 뜻이다.

 즉, 성부 여호와, 성자 예수, 성령이 각각 개체가 아니라 
한 분이라는 뜻이다.



예를 들어 물(H2O)은 액체다.
그러나 영하의 온도에서는 고체인 얼음이 되고, 물을 끓이면 기체인 수증기가 된다.
물, 얼음, 수증기는 모양과 이름이 다르지만 근본은 모두 물((H2O)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는 라디오의 모노드라마와도 같은 것으로
성우 한 사람이 아버지, 아들, 손자 세 사람의 음성으로 극을 엮어가는 것과 같은 논리다.


하나님께서는 성부시대, 성자시대, 성령시대 세 시대에 따라 각각 다른 모습,
다른 이름으로 구원사역을 펼치셨다.
하지만 근본은 한 분 하나님이시다.





여호와와 예수님은 한 분
이사야 선지자는 장차 이 땅에 오실 메시아, 예수님에 대해 이렇게 예언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이사야 9:6)


예수님을 일컬어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라고 하였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곧 우리 영혼의 아버지이신 여호와시기 때문이다.
즉, 성부 여호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은 한 분이다.
사도 바울도 예수님을 근본 하나님의 본체요,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빌립보서 2:5~8, 로마서 9:5).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여호와 하나님이다.


네 구속자요 모태에서 너를 조성한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만물을 지은 여호와라 
나와 함께한 자 없이 홀로 하늘을 폈으며 땅을 베풀었고 
(이사야 44:24)


그런데 신약성경에는 만물을 예수님께서 창조하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골로새서 1:16)


만약 성부 여호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께서 한 분이 아니라면
여호와 하나님과 예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가 각각 존재해야 하지만 단 하나의 
세계만 존재한다.
그러므로 성부와 성자는 개체가 아닌 일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여호와와 성령은 한 분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곧 성령이라는 사실을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 자세히 기록했다.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고린도전서 2:10~11)


사람의 사정은 그 사람의 영 외에는 알 수 없듯이 하나님의 영, 즉 성령 외에는 
하나님의 사정을 알지 못한다. 이는 성령이 하나님 자신이며, 
여호와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이 일체라는 의미다.
예수님과 성령은 한 분
…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요한일서 2:1)



예수님을 ‘대언자’라고 하였는데, 
대언자는 헬라어 ‘파라클레토스(παρακλητοσ)’를 번역한 것이다.
난하주에는 보혜사로 해석되어 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보혜사가 성령이라고 가르쳐주셨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요한복음 14:26)


요한일서에서는 성자 예수님을 보혜사라고 하였고,
 요한복음에서는 성령을 보혜사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예수님과 성령은 한 분이 분명하다.
성령은 인격체다

성령은 바람이나 전파처럼 거시적인 존재가 아니다.
 감정을 지니고 계시고(로마서 15:30),
 근심도 하시고(에베소서 4:30), 말씀도 하시고(요한계시록 2:7),
 탄식도 하시며(로마서 8:26), 기도도 하시고(로마서 8:26),
가르치기도 하시고(요한복음 14:26), 훼방도 당하시는(마태복음 12:31~32),
 분명한 인격체다.



…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마태복음 28:19~20)


성령이 바람이나 전파 같은 무형의 힘이라면 어떻게 성령의 이름이 존재할 수 있을까.
성령에게 이름이 있다는 말씀만으로도 성령이 곧 인격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성부, 성자, 성령 세 시대를 통해 각각 다른 이름으로 나타나셔서
구원의 섭리를 이루어가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권능을 나타내신
 세 가지의 이름을 불러 침례를 행하고 기념하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아버지(聖父)로 섭리하셨을 때의 
이름은 여호와였다.
또 아들(聖子)로서 역사하셨을 때의 이름은 예수였다.
성령시대, 성령(聖靈)으로 나타나실 때의 이름은 무엇일까.




처음부터 살인한 자<하나님의교회&패스티브닷컴>

처음부터 살인한 자



모든 인간은 출생과 동시에 '살아갈 권리' 즉  생명권을  가진다.
인간의 생명권은 어떤 이유로든, 누구에 의해서든 함부로 침해당해서는 
안 될 가장 기본적인고도 핵심적인 권리다.
 미국과 일본, 독일을 포함한 여러나라에서는 생명권을 헌법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헌법재판소 역시 이를 명백한 헌법상의 권리로 인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생명권의 핵심은 무엇일까? 
그것은 누구도 타인의 생명을 함부로 해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타인으로부터 자신의 생명을 침해받지 않을 권리를 가지며, 
그와 동시에 자신도 타인의 생명을 침해하지 않아야 할 의무가 있다.
 그 의무를 위반하고 타인의 생명을 빼앗은 자는 ‘살인죄’라는 이름으로 
강력한 처벌을 받게 된다. 

우리나라 형법은 ‘사람을 살해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라는 내용으로 살인죄를 규정하고 있으며,
 존속살해의 경우에는 더욱 중한 형벌을 내리게 된다.
 한 사례로 최근 의붓딸을 때려 숨지게 한 울산의 한 계모는 살인죄가 적용되어
 징역 18년을 선고받았다.


굳이 법적인 형량을 따져보지 않더라도 살인은 인간이 범할 수 있는 
모든 죄 가운데서도 가장 큰 죄라 할 수 있다. 
그것은 단지 타인의 재산을 훔치거나 폭력을 행사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나큰 죄인 것이다. 
한 사회에서 ‘살인자’로 낙인 찍힌 사람은 자신뿐 아니라 
그의 가족들까지도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게 된다. 
그러한 이유로 ‘살인’이라는 단어는 그 자체만으로도 무섭고, 끔찍하며, 
불쾌한 느낌을 준다.


이 땅의 살인자들은 각각 어떠한 동기에 의해 사람을 죽인다. 
개인적인 원한이나 우발적인 상황 때문일 수도 있고, 
때로는 아무 이유 없이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 
그 이유와 동기가 무엇이든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들이 처음부터 살인자였던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영적인 세계에서는 다르다. 
성경은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에서 ‘처음부터’ 살인한 자가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요한복음 8:44)


처음부터 살인이라는 엄청난 죄를 저지른 영적 세계의 살인자는 바로 사단 마귀다. 
그들의 살인은 어떠한 후발적인 동기도, 이유도 없다. 
그 존재의 시작부터 그들은 이미 살인한 것과 다름없는 
무자비하고 흉악한 살인자일 뿐이다. 
그들이 사람을 죽이는 방법은 칼이나 총이 아닌 ‘거짓말’이다.
 진리가 없는 그들은 진리를 가장한 수많은 거짓말을 만들어내고, 
그 거짓말로 사람들의 영혼을 죽인다.
 일요일에 주일예배를 지켜야 한다는 거짓말, 12월 25일이 예수의 탄생일이라는 거짓말,
 유월절이 폐지되었다는 거짓말, 교회에서 십자가를 세워야 한다는 거짓말 등, 
그럴듯하지만 성경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치명적인 거짓말들로 우리의 영혼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는 살아 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생명에 대한 권리를 가질 수 있다.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고, 구원을 받아 천국에 가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는 그 누구에 의해서도 빼앗길 수 없는 우리의 권리인 것이다.
 그 권리를 지키는 것은 우리 스스로의 몫이다. 
처음부터 살인한 자, 
사단 마귀의 거짓말에 현혹되지 말고 하나님의 진리를 찾자. 
그것이 우리의 영적 생명권을 지킬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출처 패스티브닷컴


2015년 1월 1일 목요일

하나님의교회에서 믿는 그리스도 안상홍님

하나님의교회에서 믿는 그리스도 안상홍님





안상홍님을 재림그리스도로 믿는 하나님의교회 진리에 대해 논란을 벌이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람이신 하나님의교회의 안상홍님 무슨 증거로, 어째서 그리스도가 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하나님의교회는 저들의 비방에 한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먼저 그들이 하나님의교회가 믿고 있는 
그리스도 안상홍님의 비밀에 대해 
논할 자격이 있는지 말입니다.

재림그리스도 안상홍님에 대한 진리가 참인지 거짓인지에 대해
하나님의교회는 오직 성경으로만 검토하며 이를 증거합니다.

2000년전 예수님때에도 알지 못하는 자들은 그 알지 못하는 것을 
무조건 훼방하였다고 하셨습니다.



이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그 알지 못하는 것을 훼방하는도다
또 저희는 이성 없는 짐승같이 본능으로 아는 그것으로 멸망하느니라
 (유다서 1장 10절)


오늘날 하나님의교회가 믿고 있는 재림그리스도 안상홍님을 훼방하고 비방하는 자들이 이와 같습니다.
그리스도는 사람의 지혜로는 알 수 없는 비밀입니다(골로새서 2장 2절).
하나님께서 지혜와 총명을 주셔야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교회 성도들이 안상홍님을 재림그리스도로 올바로 믿고 깨닫는 비결은
 하나님께 지혜와 총명을 허락 받았기 때문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잠언 9장 10절)


그런데 하나님을 아는 지혜와 총명이 가리워지는 자들이 있습니다.
같은 성경을 보는 저들과 하나님의교회 성도들은 너무나 대조적인 결과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주께서 가라사대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그러므로 내가 이 백성 중에 기이한 일 곧 기이하고 가장 기이한 일을 다시 행하리니
그들 중의 지혜자의 지혜가 없어지고 명철자의 총명이 가리워지리라
(이사야 29장 13~14절)



사람의 계명을 지키면 지혜와 총명이 가리워집니다.
지혜와 총명이 가리워졌는데 무슨 수로 하나님의교회의 
안상홍님을 그리스도로 알아볼 수 있겠습니까?

일요일과 크리스마스, 추수감사절 등은 사람의 계명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교회의 안상홍님을 재림 그리스도로 알아보지 못하고 
비밀을 알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교회를 세워주시고 친히 사람 되어 오신 재림 그리스도 안상홍님을 훼방하는 일에만 급급한 것입니다.


하나님의교회가 믿는 안상홍님을 단순히 사람이라 비방하고 훼방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계명을 지키고서는 절대로 안상홍님이 누구이신지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일에 참 그리스도께서 증거할 진리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진리는 바로 오늘날 하나님의교회가 지키는 새언약 하나님의 계명입니다.



우리의 절기 지키는 시온 성을 보라 네 눈에 안정한 처소 된 예루살렘이 보이리니
그것은 옮겨지지 아니할 장막이라 그 말뚝이 영영히 뽑히지 아니할 것이요
(이사야 33장 20~23절)




오늘날 우리들이 지켜야 할 하나님의 절기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희생으로 세우신 
새 언약, 즉 그리스도의 율법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절기인 안식일과 유월절을 
지키는 교회는 오직 하나님의교회 뿐입니다.

하나님의교회가 전하는 참 그리스도 안상홍님이 
누구이신지 알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먼저 하나님의교회가 지키는 하나님의 계명부터 
분별하여 지키십시오.

그 후에야 성경에 기록된 그리스도 안상홍님의 비밀을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교회 성도들은 새언약 유월절로 하나님께 지혜와 총명을 받아 
안상홍님을 재림그리스도시요,
하늘자녀로 믿는 하늘성민들입니다.



2014년 12월 31일 수요일

유혹을 이겨내는 비결<하나님의교회&안상홍님>

유혹을 이겨내는 비결





어떤 젊은이가 온 국민의 존경을 받고 있는 왕을 찾아갔습니다.

젊은이는 왕에게 자신은 쉽게 유혹에 흔들리고 참지 못하니 그것을 이기는
비결을 가르쳐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왕은 아무런 대답도 않고 자신의 앞에 있던 잔을 들어 포도주를 가득 따라
젊은이를 주면서, 큰소리로 신하를 불러 명령했습니다.

“이제 이 젊은이가 포도주 잔을 들고 거리를 한 바퀴 돌 것인데,

너는 칼을 들고 젊은이의 옆에 있다가 포도주를 한 방울이라도 흘리면 그 즉시 목을 베어버려라!”

거리로 나간 젊은이가 진땀을 흘리며 조심스레 걸어 무사히 왕궁까지 돌아왔습니다.

왕이 물었습니다.

“거리를 한 바퀴 도는 동안 네가 보고들은 것을 이야기해 보거라.”

그러자 젊은이는 당황하며 말했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보지도 듣지도 못했습니다.”

왕이 다시 한 번 물었습니다.

“거리에서 뛰노는 아이들, 시장에서 떠드는 장사꾼들의 소리를 하나도 듣지 못했단 말이냐?”

젊은이는 더욱 난처해하며 말했습니다.

“예, 저는 정말 아무것도 듣지도 보지도 못했습니다.”

그제야 왕은 젊은이를 향해 인자한 목소리로 이렇게 충고를 했다고 합니다.

“그것이 네가 알고자 하는 유혹을 이기는 비결이다.

거리를 돌아다니는 동안 포도주잔에 온 신경을 집중시키고 있었기에 아무것도 못 보고 들은 것처럼,

인생의 목표에 온 마음을 다해 집중하고 노력한다면 유혹의 손길이 아무리 거세다 해도 이길 수 없을 것이다.”






옛적 40년 광야 길을 걷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러했듯이 

천국을 목적 삼고 복음의 길을 걸어가는 우리도 하늘 가나안에 도착하기까지 시험과 유혹거리가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직 하늘 소망만을 생각하고 아버지 어머니께서 어디로 인도하시든지 그 길만 바라보고 따른다면

어떤 훼방과 유혹이 있을지라도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영원한 천국이 임박한 이때 그 어떤 유혹에도 고개 돌리지 않고 하늘의 것만을 바라보는 자녀가 되리라 다짐해봅니다.



<엘로히스트 중에서>

2014년 12월 30일 화요일

다름과 틀림<하나님의교회&패스티브닷컴>

다름과 틀림


일상생활 중에 자주 접할 수 있는 잘못된 언어습관이 하나 있다. 
'다르다'와 '틀리다'이다.
'다르다'는 '같다'의 반대말이고, '틀리다'는 '맞다'의 반대말이다.
영어로는 ‘different’와 ‘wrong’의 차이로 두 단어는 분명 차이가 있다.


‘다름’을 써야 할 자리에 ‘틀림’을 썼을 경우, 말의 의미는 엉뚱해지고 만다.
 ‘너와 나는 달라’와 ‘너와 나는 틀려’ 중 어떤 표현이 옳을까?
 ‘다르다’는 것은 ‘비교가 되는 둘 이상의 대상이 같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자 할 때 쓴다.
 ‘틀리다’는 말은 ‘셈이나 사실 따위가 그릇되거나 어긋나다’는 표현이다. 
다름은 비교의 대상이 존재하는 경우, 서로의 입장이 같지 않고 차이가 나는 상태에서
 쓰는 게 맞다. 반면, 틀림은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기준이 있어야 한다. 
그 기준에 맞지 않고 그릇되고 어긋난 것을 ‘틀리다’고 할 수 있다. 
즉, 틀림은 옳고 그름을 분명히 하는 부분이다.




하나님의교회와 일반 기독교의 차이를 살펴보면, 
둘 다 같은 성경을 보고 있음에도 예배를 드리는 날이 서로 ‘다르다’. 
그렇다면 ‘성경’이라는 기준을 놓고 봤을 때, 둘 중 하나는 ‘틀리다’.
 하나님의교회는 안식일이라 하여 토요일에 예배를 드린다. 반면, 일반 교회에서는 
주일이라 하여 일요일에 예배를 드린다. 
또, 하나님의교회는 크리스마스를 지키지 않는다. 
그날은 예수님의 탄생일이 아니라고 믿기 때문이다. 
반면, 일반 교회는 크리스마스를 예수님의 탄생일로 기념하면서 중요하게 지킨다. 
물론 2천 년 전 당시, 이스라엘에 예수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우리의 그리스도이신 
예수님만 존재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교회에서 믿고 있는 예수와 
일반 교회에서 믿고 있는 예수는 다른 예수인 것일까? 
탄생일도 다르고, 알려주신 예배일도 다르니 말이다.


만일 누가 가서 우리의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 
 (고린도후서 11:4)


서로 다른 예수를 믿고 있다면, 구원자이신 예수님은 누구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하나님의교회에서 믿고 있는 예수와 일반 교회에서 믿고 있는 예수 중에서 누가 맞고, 
누가 틀린지 판단해보자. 물론 기준이 있어야 한다. 
그 기준은 당연히 성경이다(요한복음 5:39). 





왜냐하면 모두 성경에서 알려주는 예수님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예배일은 무엇이 맞고 무엇이 틀릴까?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누가복음 4:16)


바울이 자기의 규례대로 저희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사도행전 17:2)


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 
(마가복음 16:9)


예수님께서 친히 규례로 삼으시고 본보여주신 예배일은 일요일이 아니라 안식일이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에 예수님을 영접한 사도 바울이 규례로 삼고 지켰던 날도 
안식일이다. 그 안식일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일요일 전날인 토요일이다. 
즉 성경의 예배일은 토요일로서, 일요일 예배는 틀린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탄생일은 어떨까?


그 정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되었더라 거기 있을 
그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맏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그 지경에 목자들이 밖에서 밤에 자기 양떼를 지키더니 
(누가복음 2:5~8)


예수님께서 탄생하시는 장면이다. 정확한 날짜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이스라엘은 지중해성기후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탄생일이라고 알고 있는 12월은 
우기인 겨울에 해당한다.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양을 쳤다는 것은 적어도 추운 겨울은 
아니라는 얘기다. 성경의 증거 외에도 교회사 등을 통해 살펴보아도, 
12월 25일은 예수님의 탄생일이 아니다. 
그날을 예수님의 탄생일로 기념하는 건 성경상 틀리다.



‘다르다’와 ‘틀리다’는 잘 구분해서 사용해야 서로 오해나 혼동 없이 정확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해주었을 때, 세상은 더욱 따뜻한 분위기가 
조성될 것이다. 구원과 상관없는 것은 비록 틀리더라도 넉넉하게 웃어넘기는 아량을 
베풀 줄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성경상 틀린 것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과는 전혀 다른 길을 가는 것이다.




출처 패스티브닷컴

2014년 12월 29일 월요일

쿼바디스<하나님의교회&패스티브닷컴>

쿼바디스


아직 이 영화를 본 것은 아니다, 다만 교계를 뜨겁게 하며 논란이 되고 있어 관심이 
갈 뿐이다. 영화의 줄거리와 리뷰, 뉴스 등을 살펴본 결과 ,
 보고 싶다는 호기심이 생기는 건 사실이다. 


영화 '쿼바디스 (QUO VADIS, 2014)’는 국내 대형 개신교회들의 감추고 싶은 치부들을 
들춰내 낱낱이 고발하고 있다. S교회 목사의 배임 사건, J 목사의 성추행 의혹, 
수천억 원이 소요되는 교회 건축 문제, 목사 아버지들의 아들 세습 문제 등 
오늘날 교회들이 돈과 권력을 좇아가는 세속적인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영화는 개봉부터 순탄치 않았다. 한국교회언론회는 기독교 교단에 
공문을 보내 ‘쿼 바디스’ 상영 중단을 압박했다. 
아무래도 그들의 민낯을 드러낸다는 것이 껄끄럽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의 내용은 그저 그들의 겉모습을 드러낸 것에 불과하다. 
오늘날 기독교가 ‘개독’이라는 몹쓸 별명을 얻은 이유가 영화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겉모습에서 비롯됐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기독교의 부패는 아주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리더들은 그 자리에 오르기 위해 수세기 전부터 정치와 결탁하고,
심지어 살인, 간음, 근친상간 등 온갖 치졸하고 비열한 패륜을 저질렀다.




그렇다면 과연 기성교단의 부패 원인과 건강한 기독교인으로 거듭나기 위해 갖추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목회자의 정직한 신앙생활? 
세습 청산? 
교회의 대형화 억제?
 이런 것만으로는 개독을 벗어나기는 어렵다. 기독교는 근본적으로 달라져야 한다
기성교단이 흔히 말하는 겉모습의 개혁이 아니라 진정한 개혁을 이루기 위해 
뼛속 깊이 그리스도를 닮고 변화되고자 노력하는 진리의 개혁이 우선돼야 한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그대로 전수받았던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생활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그들처럼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바울이 자기의 규례대로 저희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사도행전 17:2)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고린도전서 11:26)


우리는 무교절 후에 빌립보에서 배로 떠나 닷새 만에 드로아에 있는 그들에게 가서 이레를 머무니라 (사도행전 20:6)


오순절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곳에 모였더니 (사도행전 2:1)


초대교회 기독교인들은 예수님께서 세워주신 새 언약의 
계명대로 안식일, 유월절, 무교절, 
오순절 등 하나님의 절기를 지켰다.

하지만 현재, 
예수님의 새 언약의 계명은 어디로 갔는가.
 하나님의 절기를 뺀 곳에는
 일요일 예배, 맥추감사절, 추수감사절, 크리스마스 등 
낯선 ‘사람의 계명’이 들어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기독교인들이 근본적인 진리의 개혁은 배제하고 겉모습만 
고쳐보겠다고 개혁을 운운하고 있다.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 바리새인은 지금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나 너희 속인즉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도다
 (누가복음 11:39)


쿼 바디스? 기독교인들이여, 그대들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하나님께서 그대들에게 물으신다.



출처 패스티브닷컴

2014년 12월 28일 일요일

훌륭한 리더, 성공한 팔로어<하나님의교회&안상홍님>

훌륭한 리더, 성공한 팔로어





어떤 조직이나 단체에서, 구성원들을 이끌어가는 위치에 있는 사람을 
리더(leader)라고 부릅니다.


리더라는 말은 ‘참다’, ‘고통받다’, ‘견디다’ 등을 뜻하는 독일 고어에 어원을 둔다고 합니다.


그만큼 리더의 역할이 쉽지 않다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리더의 지시를 따르며 리더가 조직을 잘 이끌어 갈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돕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조직이 나아가는 방향에 맞추어 주도적으로 일을 해나가는 사람은
 팔로어(follower)라 칭합니다.


팔로어 역시 독일 고어에서 어원을 찾을 수 있는데 ‘돕다’, ‘후원하다’, ‘공헌하다’ 등의
 의미를 지닙니다.


결국 리더의 고충을 십분 이해하고 뒤에서 힘껏 도와주는 사람을 팔로어라 할 수 있습니다.


좋은 팔로어들이 많을수록 조직은 활발하게 움직이고 눈에 띄는 성과를 냅니다.


리더의 의도와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파악해, 필요한 능력을 갖추고 헌신하는 팔로어들이
 많은 단체는 순풍에 돛을 단 배와 같이 목표를 향해 정확하고 신속하게 나아갑니다.   


멜기세덱 군사로 부르심받은 우리는 하늘 군대를 이끌어가시는(lead) 
하늘 아버지 어머니를 따르며(follow) 복음에 헌신하는 영적 팔로어들입니다.


온 세상의 구원을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깨닫고, 맡겨주신 사명을 은혜롭게 
감당하며 천국을 향해 힘차게 나아가는 사람들.


우리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리더를 만난, 가장 성공한 팔로어들이 아닐까요?




2014년 12월 26일 금요일

보고도 못 믿고, 안보고도 잘 믿고<하나님의교회&패스티브닷컴>

보고도 못 믿고, 안보고도 잘 믿고



눈으로 볼 수 있는 것과 눈으로 볼 수 없는 것, 둘 중 어느것에 더 신뢰가 갈까?
 당연히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에 더 신뢰가 갈 것이다. 물론 그렇다 해서 보이지 않는 것을 믿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공기나 바람, 전자파 같은 것이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도 유형의 움직임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실하게 드러내고 우리는 그 사실을 통해 존재감을 인식하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가 구원을 얻기 위해 반드시 보아야 하는 것이 무엇일까? 바로 성경이다. 보이지 않는 것보다는 볼 수 있는 것에 더 신뢰를 두고 살아가는 인생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허락해주신 것이 성경이다.




성경에는 우리의 영혼이 안전하게 천국까지 도달할 수 있는 하나님의 가르침이 들어 있다. 성경을 통해 보여주신 모든 말씀은 하나님의 것이며 성경에서 볼 수 없는 것은 하나님의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지금 이 시대, 하나님을 믿노라 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모른 채 막연한 신앙의 길을 걷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상식적으로, 당연시 여기고 있는 일요일예배, 크리스마스, 추수감사절 등을 성경에서 본 적이 있는가? 아니면 그것을 성경에서 확인해보기 위해 노력한 적이 있는가? 그러나 아무리 보려 해도 결단코 볼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성경에 근거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주일을 거룩하게 지킬 의무의 예를 보자. 이는 물론 신자의 가장 중대한 의무의 하나이지만 성서에서는 그에 대한 명백한 구절을 하나도 찾아볼 수 없다. 성서의 안식일은 토요일이지 일요일은 아니다.” 
(교부들의 신앙, 가톨릭출판사)


“일요일은 태양, 또는 태양의 신을 기리어 붙여진 명칭이다. 비록 1세기에는 유대인들이나 기독교인들이 이교적 이름을 사용하기를 회피하였지만 기독교인들은 2세기부터 벌써 이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 그리스도교시대 초기에 로마제국에서, 특히 로마군인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던 수많은 동방종교 가운데 하나가 페르시아로부터 수입된 미드라 종교였다. 미드라는 태양신이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미드라 종교는 일요일을 성일로 간주했다.”
 (기독교대백과사전, 기독교문사)


“서기 321년 그(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일요일을 일반적인 공휴일로 선포했을 때 그는 그리스도인과 이교도를 함께 마음에 두었다. … 황제의 견해에 의하면,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그리스도께 예배하고 이교도들은 그들의 태양신을 섬기는데, 두 종교의 예배의 대상이 근본적으로 같은 것이었다.”
 (브리태니커백과사전)


“기독교회는 많은 이방 사상과 상징을 받아들였다. 예를 들면 태양 숭배로부터 예수의 탄생일이 태양제의 날인 12월 25일로 정해지게 되었다.”
 (교회사핸드북, 생명의말씀사)


“성탄절을 12월 25일로 지킨 것은 354년의 기록에 나타났으니, 곧 로마 감독 리베리우스(Liberius) 시대였다.” 
(교회사, 이건사)


“추수감사절: 미국에서는 1789년 12월 26일을 추수감사절로 워싱턴(G, Washington) 대통령이 선포하였다.” 
(세계백과대사전, 서문당)





하나님을 믿노라 하는 곳에서 행하는 이러한 모든 예배는 성경에서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교회 역사는 교회가 이교화되면서 로마의 황제 콘스탄티누스, 교황 리베리우스, 미국의 워싱턴 대통령에 의해 일요일예배나 성탄절, 추수감사절 등이 지켜지기 시작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예배들을 고집하는 자들이 보고 있는 것은 성경이 아니라 변질된 교회의 역사인 것이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성경에서 볼 수 있는 예배일은 일요일이 아니라 안식일이다(출애굽기 20:8, 누가복음 4:16, 사도행전 17:2). 그리고 성경 어디에도 12월 25일을 예수님의 탄생일로 지키라는 기록은 없다. 대신 유월절을 영원한 규례로 정해주시고 지키기를 간절히 원하신다고 하셨다
(출애굽기 12:11~14, 누가복음 22:7~15, 고린도전서 11:23~25).


무엇을 보고 믿을 것인가? 성경을 보고도 못 믿는 자가 될 것인가, 아니면 성경에 전혀 기록이 없어 보지 못하면서도 잘 믿는 자가 될 것인가? 일찍이 사도 바울은 성경을 보고도 못 믿고 성경에서 보지 않고도 잘 믿는 자들에게 이렇게 충고했다.


만일 누가 가서 우리의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 (고린도후서 11:4)




예수님을 진실로 사랑하고 구원을 간절히 원하는가? 그렇다면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자.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마태복음 13:16)



출처 패스티브닷컴
https://www.pasteve.com/?m=bbs&bid=B2BibleCovenant&uid=3086

2014년 12월 25일 목요일

"가족이니까 괜찮다?"<하나님의교회&행복한 가정&안상홍님가르침>

'가족이니까 괜찮다?'

-가족에 대한 착각을 깨뜨리자-



가족은 서로 다른 성별, 서로 다른 나이의 구성원들이 모인 최초의 집단입니다. 서로가 진심으로 대하고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어려워지는 관계이기도 하지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가족에 대한 착각은 , 가족관계는 노력을 안해도 저절로 유지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가족이니까 잘 보일 것도 없고 그저 있는 그대로 편하게 대하면 된다고 여깁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가족 사이를 갈라놓는 크고 작은 분쟁들이 결국은 서로를 너무 편하게 대했기 때문에 일어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달에는 무심코 빠지기 쉬운 가족에 대한 여러가지 착각에 대해 알아보고 가족 관계를 더욱 돈독히 했으면 합니다. 가족은 나의 일생을 함께하며 내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소중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원만한 관계를 위해 가족 구성원 모두가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착각1 - 가족이니까 말 안해도  알겠지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봤을 유명한 CM송입니다. 광고 효과는 톡톡히 보았지만 이 노래의 가사에는 약간의 문제(?)가 있습니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 해도 상대방의 마음을 100% 다 알수는 없으니까요. 가족이니까 말하지 않아도 당연히 알겠지 하는 생각은 정말 큰 착각입니다.
가족의 사랑과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고 입을 꾹 닫아버리는 가정과 그때그때 “사랑해요”, “고마워요”, “미안해요”, “괜찮아요”, “잘했어요” 등과 같은 말로 마음을 표현하는 가정의 분위기는 사뭇 다를 것입니다. 가족에게 부정적인 표현은 잘하면서 긍정적인 표현은 못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습니다. 그러나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런 말을 듣고 싶어 합니다.
‘꼭 말을 해야 아나?’라는 생각을 가지면 해야 할 말도 안 하고 그냥 넘어갈 수 있으니, 처음엔 쑥스럽더라도 마음에 있는 것을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말하는 습관을 가져봅시다. 가족이기 때문에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다 알아줄 것이라는 기대가 클수록 그에 부응하지 못할 때 실망도 커집니다.
“아내의 마음도 모르면서 남편이라고 할 수 있어?”
“엄마는 내 맘 다 알 거라 믿었어.”
“너는 그걸 꼭 말로 해야 알겠니?”
이처럼 원망 섞인 말이 나오는 것은 그만큼 기대가 컸기 때문입니다. 가까운 사람에게 기대를 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살다 보면 가족이라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 분명 있습니다. 뜻하지 않은 갈등이 생겼을 땐 상대방에 대한 자신의 기대치를 융통성 있게 변화시키고 대화로 풀어나가야 합니다. 말하지 않고 눈빛만 보아도 통하는 사이가 가족이라지만 많이 표현하고 자주 대화할수록 사랑도, 행복도 커지는 법입니다.





착각 2 - 가족이니까 이해해주겠지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가족은 혈연과 사랑으로 맺어진 관계이므로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일반적으로 상대방이 나한테 맞춰주는 것을 사랑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가족이니까 짜증과 불평도 당연히 받아줘야 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얼마 전, 공익광고협의회에서 ‘안과 밖이 다른 가족’이란 제목의 광고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아래 직원들에게는 자상하지만 아내에게는 무뚝뚝한 남편, 고객에게는 친절하지만 아들에게는 냉랭한 엄마, 친구와 있을 땐 쾌활하지만 아버지와 있을 땐 시무룩한 아들, 회사에서는 상냥하지만 집에서는 무심한 딸. 이렇게 이중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 가족의 모습을 차례로 보여준 뒤 시청자들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안과 밖이 다른 사람인가요?”
이 질문에 자신 있게 아니라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남들에게 하는 것 반만큼만 집에서 하라는 말이 이래서 나온 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는 친구나 회사 동료들에게는 친절한 반면에 때로 가족에게는 괜히 심술을 부리거나 퉁명하게 대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가까운 사이니까 나를 이해해주겠지’라는 안이한 생각이 불러온 잘못된 행동입니다. 만약 가족 중 누군가 그러한 생각으로 나를 힘들게 한다면 그것도 넓은 마음으로 무조건 받아줄 수 있을지 생각해보세요.
가족이 신뢰를 바탕으로 한 관계이긴 하지만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가족 구성원의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안과 밖이 다른 가족에게, 위 광고는 마지막으로 말합니다.
“밖에서 보여주는 당신의 좋은 모습, 집에서도 보여주세요.”





착각 3 - 가족끼리 못할 말이 어디 있어

“살 좀 빼.”
“이것도 몰라?”
“됐어, 말이 통해야 말을 하지.”
“너 때문에 되는 일이 없어.”
사랑하는 가족이 무심코 내뱉은 말이 살면서 들은 말 중에 가장 심한 말이 될 수도 있습니다. 가족은 서로를 가장 아끼고 사랑하면서도 또한 아픔을 가장 많이 주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과 대화할 때는 ‘이 말을 하면 저 사람이 기분 상하지 않을까?’ 하며 걱정하다가도 가족과 대화할 때는 모든 것이 용납되리라는 생각에 서슴없이 내뱉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한 말을 해놓고도 농담이었다는 한마디로 자신의 무례함을 정당화하거나, 심지어 “그렇게 속이 좁아서야”라며 적반하장으로 나올 때도 있습니다.
똑같이 서운한 말을 듣더라도 남에게 듣는 것보다 가족에게 들을 때 훨씬 아프고 오랫동안 가슴이 시린 건 왜일까요? 그 누구보다 가족을 믿고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만큼 식구의 기분, 처한 형편, 성격 등을 세세히 살펴서 말해야 합니다. 친구를 용서하는 것보다 원수를 용서하는 것이 훨씬 쉽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가까운 사람이 주는 상처는 그만큼 씻어내기 어렵습니다.




집에 가면 가장 먼저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듯이 집에서는 누구나 마음의 긴장을 풀고 싶어 합니다. 그렇게 무방비 상태로 있을 때 ‘가족끼리 무슨 말을 못해’라는 생각으로 여과 없이 감정을 표출하거나 분풀이를 한다면 더욱 치명적인 상처로 남게 될 것입니다. 남들에게 차마 못하고 속으로 삭이는 말은 가족에게도 삼가야 합니다.






착각 4 - 가족끼리 예의는 무슨 …

사업상 누군가와 만날 때는 약속 전에 약속 시간을 확인하고, 약속 시간을 지키지 못하거나 어길 것 같을 때는 미리 전화를 한다거나 메일을 보내는 등 고객 감동이라는 명목하에 노력을 기울입니다. 하지만 가까운 가족에 대해서는 어떤가요? 철석같이 약속해 놓고 불가피하게 지키지 못할 경우 ‘어쩔 수 없지 뭐. 뭘 그 정도 가지고’ 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는 않는지요.






사실, 가장이 일을 우선시하는 이유도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서인데 돌아오는 것은 원망뿐이니 억울하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본의 아니게 약속을 어기게 될 경우, 가족들에게 신뢰를 잃지 않기 위해서는 미리 양해를 구하고 상황을 충분히 설명해주어야 합니다. 가정은 가족끼리 사랑과 우애로 서로 도우며 사는 공동생활의 터전이며, 사회생활의 기초적인 생활양식을 몸에 익히고, 인격을 수양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가족 간에 서로 존중하며 기본적인 예절을 지켜 나갈 때 화목한 가정을 이룰 수 있고, 나아가 밝고 명랑한 사회생활을 해나갈 수 있습니다.
가족 간에 허물없이 지내는 것이 좋다지만 지나치게 격의 없이 행동하면 불화를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예의를 지키라’는 말이 있고, 영어 속담에도 ‘Familiarity breeds contempt(친해지면 무례하기 쉽다)’ 했으며, 공자도 ‘가족들에게 예의를 갖춰 대하라. 이것은 한 사람이 되는 뿌리다’라고 가르쳤습니다.
사람의 본연의 모습은 가정에서 여실히 드러납니다. 가족에게 예의를 지키지 못하면서 타인에게 예의 바르게 행동하는 것은 보여주기 위한 예절일 뿐입니다. 진정 예의 바른 사람은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 먼저 예의를 다하는 사람입니다.

‘가족이니까’라는 생각을 자기를 합리화하는 방편으로 끌어들일 것이 아니라 화목하고 행복한 집을 짓는 데 주춧돌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가족이니까 더 표현하고, 가족이니까 더 친절하게 대하고, 가족이니까 상처 주지 말고, 가족이니까 더욱 예의를 지킨다면 어떠한 강풍이 불어 닥쳐도 끄떡없는 가정이 될 것입니다.



참고 : 『한국형 대화의 기술』(이정숙 著), 『젊은 그녀 전쟁터를 즐겨라』(차영 著)



-행복한 가정 가족애 소통 중에서-

시작<하나님의교회&좋은글&엘로히스트>

시작







1970년대 후반까지 에베레스트 산을 산소마스크 없이

오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라인홀트 메스너와 피터 하벨러는 산소가 부족한 

고산 지역에 적응하는 훈련을 반복한 끝에 1978년,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 무산소 등정에 성공했다.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8천미터가 넘는 에베레스트 

최고봉을 산소 도구 없이 오늘 산악인은 전 세계에서 

150명이 넘는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그때는 왜 불가능했을까.







-엘로히스트 쉼터중-

2014년 12월 24일 수요일

서리 같은 교리<하나님의교회&패스티브닷컴>

서리 같은 교리




이슬이 얼어서 생긴 얼음 결정체를 서리(霜, Frost)라고 한다. 서리는 주로 밤이나 새벽에 복사냉각에 의해 생긴 이슬이 어는점 이하가 될 경우 생긴다. 서리가 발생하는 조건은 낮 최고 기온이 18도 아래오 내려갈 무렵이다. 저녁 6시 기온이 7도 정도, 밤 9시 기온이 4도 아래로 떨어지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서리가 무서운 것은 지면의 식물에 부착돼 세포 조직을 동결시킨다는 점이다. 때문에 농작물에 서리가 내릴 경우 막대한 피해를 입는다. 초봄, 녹차밭에 서리가 내리면 최고의 차라 불리는 우전차 수확은 포기해야 한다. 또한 배꽃이 서리를 맞으면 그해 배 농사는 끝이다.


식물에 막대한 피해를 주는 서리처럼 우리 영혼에도 막대한 피해를 주는 서리같은 교리들이  있다. 아무리 애지중지 키운 꽃이라도 서리가 내리면 마치 뜨거운 물을 부어 놓은 듯 시들어버린다. 하나님의 말씀대로의 신앙생활을 영위해나가야 함에도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고 가르친다면 그 영혼은 서리를 맞은 것과 같다. 서리와 같은 교리란 성경에 없는 사람의 계명을 말한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하시고 (마태복음 15:8~9)


예수님께서도 사람의 계명을 지키는 것은 헛된 경배를 하는 것이라고 강조하셨다. 그렇다면 제대로 알자. 서리와 같은 사람의 계명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먼저 성경에서 알려주신 하나님의 계명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출애굽기 20:8)



무교절의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유월절 잡수실 것을 우리가 어디서 예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마태복음 26:17, 26~28)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고린도전서 11:23~24)



안식일과 유월절은 하나님께서 지키라고 명하신 하나님의 계명이다. 이와 반대로 기성교단이 지키고 있는 일요일 예배와 12월 25일 크리스마스는 성경에 없는 사람의 계명이다. 해서 이런 사람의 계명을 지키게 되면 마치 서리를 맞은 것처럼 그 영혼은 결국 막대한 피해를 입고 만다.



농사에도 서리를 예방하기 위해 불을 이용한 연소법이나 바람을 이용하는 송풍법 등 다양한 방법을 강구한다. 우리도 영혼 구원을 위해 서리 같은 교리를 잘 판단해 미리 예방하므로 피해를 입는 일이 없어야겠다. 농사꾼이 서리 피해를 입으면 1년 농사를 망치게 되지만 서리 같은 교리로 인한 피해는 영원하다.라고 한다. 서리는 주로 밤이나 새벽에 복사냉각에 의해 생긴 이슬이 어는점 이하가 될 경우 생긴다. 서리가 발생하는 조건은 낮 최고 기온이 18도 아래로 내려갈 무렵이다. 저녁 6시 기온이 7도 정도, 밤 9시 기온이 4도 아래로 떨어지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출처 패스티브닷컴
http://cafe.naver.com/heavenindependenc/12050

2014년 12월 23일 화요일

6도의 사소한 변화<하나님의교회&패스티브닷컴>

6도의 사소한 변화



지구 온난화, 기후변화의 심각성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 100년간 우리나라 연평균 기온은 1.7도 상승하였으며 연강수량은 19% 증가하였다.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지 않는다면
2100년에는 최대 6.4도까지 상승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고작 6도 올라가는 게 뭐 그리 대수냐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6도의 변화는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니다.





지구 평균기온이 1도만 올라가도 지구에는 이상 징후가 생긴다.
한쪽에서는 가뭄으로 동식물들이 말라 죽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엄청난 폭우가 내리는 기현상이 나타난다.
수자원의 양극화 현상으로 전 세계 인구의 3분의 1이 물로 고통받게 될 것이다.
비옥해 보이던 대지는 건조해져 모래가 날리기 시작하며 산불이 일어나 숲이 없어진다.
이쯤 되면 도시, 농촌 할 것 없이 온 세상은 흙먼지와 모래폭풍에 휩싸이게 된다.
자연, 농사는 어려워지고 식료품 가격이 폭등해 식량부족으로 힘겨워질 것이다.
고작 1도의 상승으로 벌어지는 일들이다.



평균기온이 2도 상승하게 되면 상황은 더욱 심각해진다.
해수면의 온도가 상승함에 따라 바닷물이 산성화되어 플랑크톤이 바닷물에 녹아죽고,
플랑크톤을 먹이로 하는 수많은 어종들도 덩달아 죽는다.
결국 바다 생태계는 파괴되고 인류에게까지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3도 상승하면 아마존의 열대우림이 붕괴된다.
지구의 허파라 불리는 아마존의 식물들이 말라 죽으면 온난화의 속도는 걷잡을 수 없이 빨라진다.
알프스 정상의 만년설이 사라지고, 엘니뇨 현상에 의한 극단적인 기후가 일상이 된다.



4도 상승하면 북극은 물론 남극의 빙하들까지 녹하 해수면이 높아진다.
이에 따라 전 세계 곳곳의 바닷물이 불거나 수억 명의 피난민이 발생한다.
침수를 면한 지역은 피난민들로 붐비게 될 것이다.



6도가 상승한 지구는 더 이상 푸른 행성이 아니다.
북극과 남극의 빙하가 모두 사라지고 정글도 불타 없어진다.
해수면의 상승으로 마침내는 대륙 깊숙한 곳까지 물에 잠기거나
사막화되어 생명체가 디딜 곳이 점차 줄어들게 된다.
자연재해는 일상적인 사건이 되고 도시들은 물에 잠기거나 폐허로 변한다.
한마디로 6도의 상승은 ‘지구 최후의 날’이나 마찬가지다.
사소할 것 같은 6도의 변화는 이처럼 삶의 모든 것을 휩쓰는 위력적인 것이다.



현재, 이상기후로 인해 북반구에서는 영하 50도까지 내려가
세계 최대의 나이아가라 폭포가 결빙되고,
남반구에서는 영상 40도를 웃도는 폭염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북극과 남극의 빙하는 서서히 녹아 내리고 있으며,
해수면이 높아져 국토를 잃은 나라도 있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변화들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성경이 말하는 재앙의 이유 역시 중요한 것을 사소하게 여긴 데서 비롯된다.


땅이여 들으라 내가 이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리니 그들의 생각의 결과라
그들이 내 말을 듣지 아니하며 내 법을 버렸음이니라
예레미야 6장 19절


하나님(하나님의교회 안상홍님)의 말씀은 곧 삶이다.
우리로 하여금 생명을 이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구상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하나님의교회 안상홍님)의 말씀,
하나님(하나님의교회 안상홍님)의 법을 소홀하게 여기고 있다.
 반면, 하나님(하나님의교회 안상홍님)의 법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은 어떨까?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 ...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
출애굽기 12장11~13절


이르시되 내(예수)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누가복음 22장15절


천인이 네 곁에서, 만인이 네 우편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못하리로다
시편 91편 7절


6도는 사소한 변화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유월절이 뭐 그리 대수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하나님의교회 유월절은 결코 사소하지가 않다.

하나님의교회 유월절을 지키느냐 지키지 않느냐는 문제로,
구원을 받느냐 받지 못하느냐의 엄청난 결과를 맞이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교회 유월절은 당신을 재앙으로부터 구원하고
당신의 생명을 책임지는, 위력적인 것이다.




출처 패스티브닷컴


2014년 12월 22일 월요일

나비의 고향<하나님의교회&패스티브닷컴>

나비의 고향



세상의 모든 나무가 낙엽을 떨구고 나목이 된 겨울,
멕시코 시에라마드레 산맥의 숲에 사는 나무에는 여름철보다 더 화려한
오렌지빛 잎사귀들이 무수히 많이 달려 있다.
잎사귀의 무게 때문에 어떤 나무가지는 금방이라도 부러질 듯 휘어져 있다.
실은, 나뭇잎이 아니라 헤아릴수 없이 많은 나비떼들이 다닥다닥 붙어서 겨울잠을 자고 있는것이다.


그 장엄한 광경을 연출하는 주인공은 왕나비의 일종인 모나크 나비(Mornach Butterfly)다.
 멕시코의 시에라마드레산맥 외에도 미국 캘리포니아연안에서는 겨울이면 이렇게 전나무나 
유클립스나무 등에 매달려 겨울을 나는 모나크나비들을 볼 수 있다.


출처 :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


긴 겨울잠을 자고 난 모나크나비들은 짝짓기를 한 후 미지의 나라를 향해 대장정을 시작한다. 
그들이 가야 할 곳은 캐나다 혹은 알래스카다. 
0.5g의 연약한 몸으로 수천km에 달하는 멀고도 험한 여정을 떠나는 이유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은 해마다 봄이 되면 약속이나 한 듯 북쪽나라를 향해 날갯짓을 한다.



그 여리디여린 날개를 가지고 모나크나비는 시속 50km의 속도로 날아야 한다. 
그 고된 여행은 3~4주간 계속된다. 
남쪽나라에서부터 알을 품고 온 어미 나비는 아기의 안식처를 찾는다. 
그들이 찾는 안식처는 독성이 강한 풀, ‘밀크위드’다. 
다른 동물들이 밀크위드를 먹을 경우 중독을 일으켜 죽음에 이른다. 
그러나 모나크나비의 아기들은 밀크위드의 독에 중독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잎사귀를 먹고 자라 몸에 독성을 갖게 됨으로 자기 몸을 지킨다. 
참으로 불가사의한 생존전략이다.



아기가 자라 애벌레에서 완전한 나비로 탈바꿈한 모나크나비 2세들은 3~4시간 동안 날개를 말린 후,
 다시 북쪽나라를 향해 날갯짓을 한다. 모나크나비 1세가 겨울잠에서 깨어 남쪽나라를 출발한 지 
약 5개월 만에 북쪽나라에 도착한다. 1세들은 이미 모두 죽고 없다.


모나크나비들은 해가 짧아지기 시작하면 겨울나기를 위해 다시 남쪽나라를 향해 날아간다. 
멀고도 험한 대이주를 하는 동안 2세와 3세들이 수명을 다한다.
 1세들이 겨울을 났던 남쪽나라의 숲으로 돌아온 주인공들은 건강하고 용감한 4세들이다.


경이로운 일은 모나크나비 4세들이 1세들, 
즉 자신들의 증조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겨울을 났던 그 숲, 

그 나무에 정확하게 찾아온다는 것이다. 
이것은 곤충학자들 사이에서 최대의 미스터리 중 하나다.


사람들은 모나크나비를 ‘세계 최고의 항법사’라고 부른다.
 모나크나비의 항법에 대한 메커니즘은 아직 풀지 못한 숙제로 남아 있다.
 그저 태양, 달, 자기장을 이용하는 것이라고만 추측할 뿐이다. 그 연약한 생명체들이 어떤 신호작용에
 의해 해마다 수천km에 달하는 길을 오갈 수 있는 것인지 사람들은 해독하지 못한다.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요한계시록 4:11)


하나님께서 모나크나비들의 회귀 메커니즘을 설계하실 때, 우리들이 잃어버린 고향, 
천국을 다시 찾아가기를 바라신 건 아닐까.





출처 패스티브닷컴



2014년 12월 21일 일요일

어머니의 손길

어머니의 손길








원숭이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새끼 원숭이를 만져주지 않았더니 시름시름 앓다 
요절했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반면, 생후 10주에서 6개월 사이의 아기들을 관찰한 결과로는 엄마가 평소 자주 보듬고 
어루만져준 아이가 그렇지 못한 아이에 비해 감기에 잘 걸리지 않고 잔병치레를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더 큰 어른이라고 다르 것은 없었습니다. 신경질적이거나 우울증을 앓고 있는 성인이, 
안아주는 횟수와 지속 시간에 따라 병의 회복 속도로 빨라졌습니다. 
우울증 치려에 애완동물을 쓰다듬어주는 치료요법이 등장한 것은 이러한 
실험 결과에서 기인합니다.


열방에 흩어져 있던 자녀들이 하늘 예루살렘 어머니의 품으로 나아옵니다. 
세상에서 상처받고 죽어가던 영혼들이 따듯한 어머니의 품에 안겨,
 어머니께서 어루만져주시는 손길로 나음을 입고 소성함을 입습니다.
영혼에 생기가 돌고, 활력이 넘칩니다.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편안한 안식처, 
어머니의 품, 어머니의 손길이 기적을 일으킵니다. 
어머니의 사랑이 만병통치약입니다.




2014년 12월 20일 토요일

보증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

보증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



[잠 6:1]

내 아들아 네가 만일 이웃을 위하여 담보하며 타인을 위하여 보증하였으면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 내 아들아 네가 네 이웃의 손에 빠졌은즉 이같이 하라 너는 곧 가서 겸손히 네 이웃에게 간구하여 스스로 구원하되 네 눈으로 잠들게 하지 말며 눈꺼풀로 감기게 하지 말고 노루가 사냥군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 같이 새가 그물 치는 자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 같이 스스로 구원하라


현대어 성경 

 얘야, 다른 사람의 빚 때문에 네 재산을 담보로 잡혀 준 일이 있느냐? 또는 다른 사람이 무슨 사업을 한다고 하여 그 사람의 보증을 서 준 일이 있느냐? 그렇다면 큰일이구나. 네가 재산을 담보로 잡혀 주고 네가 보증을 서 준게 잘못이다. 담보와 보증이라고 하는 것은 올가미와 같은 것이다.
얘애, 이제 네 재산은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간 것이나 다름없다. 어서 그 사람을 찾아가  '제발 담보를 잡은 것과 보증 선 것을 무효로 해 달라'고 애원을 할 수 밖에 더 있겠느냐? 재산은 건지고 봐야 하지 않겠니? 어서 그 사람을 찾아가거라. 이런 상황에 잠잘 생각은 하지도 말아라. 눈붙일 생각도 하지 말아라. 노루가 뒤좇아오는 사냥꾼의 눈에 띄지 않으려고 재빠르게 내달리듯, 하늘에 날아다니는 새가 사냥꾼이 쳐 놓은 창애에서 날쌔게 빠져 나가듯, 어서 서둘러 벗어나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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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11:15]
타인을 위하여 보증이 되는 자는 손해를 당하여도 보증이 되기를 싫어하는 자는 평안하니라


현대어 성경 :
 빚 보증을 서는 사람은 손해를 볼 수 밖에 없으나, 보증을 서지 않으면 아무런 염려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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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17:18]
지혜 없는 자는 남의 손을 잡고 그의 이웃 앞에서 보증이 되느니라


현대어 성경 : 
앞뒤를 가릴 줄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은 남의 보증을 손쉽게 잘도 서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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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22:26]
너는 사람과 더불어 손을 잡지 말며 남의 빚에 보증이 되지 말라 만일 갚을 것이 없으면 네 누운 침상도 빼앗길 것이라 네가 어찌 그리하겠느냐



현대어 성경 : 
남 대신 담보물을 잡혀 주거나 빚 보증을 서지 말아라. 네가 그것을 갚아 줄 수 없을 때는 네가 누운 자리마저도 빼앗아가리라. 어찌 그런 일을 당하려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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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딤전 6: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히 13:5]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딤전 6:17]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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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 가르침대로만 살면 가정도 평안하고 행복합니다.
하나님의교회는 하나님의 가르침에 순종하는 교회입니다.
가정을 중시하는 하나님의교회는 구원의 참 진리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