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고향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고향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15년 3월 27일 금요일

고향의 주소/감동글[하나님의교회 엘로히스트 중에서]



하나님의교회 월간지 엘로히스트에  감슴 뭉클한 감동적인 글이 실려서 올려봅니다.



“할아버지, 그동안 못 찾아봬서 죄송해요.”
“예, 괜찮습니다. 근데 누구슈?”

외할아버지는 5년째 치매를 앓고 있다. 증상이 호전되지는 않지만 진행 속도가 느린 편이라 시설이 아닌 집에서 생활하신다.

가족의 얼굴은 물론 자신의 나이와 이름조차 잊은 지 오래인 할아버지는 올해 들어 망상 증세가 심해져 가족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할아버지! 오랜만에 큰손녀가 왔는데 뭐 드시고 싶으신 거 없으세요?”
“…….”
“필요한 거 있으면 말씀해보세요.”
“…….”
“그럼, 가시고 싶은 데 있으세요? 말씀해보세요. 같이 가게요.”
“…집.”
“집이요? 여기가 할아버지 집이잖아요.”

할아버지의 상태를 전화로만 전해 듣다가 실제로 보니 건강하실 때 자주 찾아뵙지 못하고 전화 한 통 못 드린 게 죄송스러웠다.

“느그 할아버지 말하는 집은 여기가 아녀.”
“그럼요? 할머니한테도 집에 가고 싶다고 하세요?”
“허구한 날 조르는 통에 못 살겄어. 가고 싶어도 갈 수 있는 것도 아닌디.”
“전에 사시던 불광동 집이에요?”
“아니. 저 이북 말하는겨, 지금.”
“할아버지 고향이요?”
“저 셔츠 주머니 봐 봐. 느그 할아버지가 얼마나 꼬깃꼬깃 접어놨는지….”


할아버지의 셔츠 주머니에는 닳고 닳은 메모지가 고이 접혀 있었다.
소중한 보물이라도 되는 양 할아버지는 메모지를 조심스럽게 펴서 보여주셨다.

“할아버지 이게 뭐예요?”
“우리 집이에요.”

접히고 접힌 메모지에는 또박또박 주소가 적혀 있었다.

“영감! 영감 집 주소가 어떻게 되우?”
“황해도 개풍군 상도면 ○○리 ○○번지요. 가고 싶어요. 데려다주세요.”
“난 느그 할아버지가 저러는 거 망상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 주소 물어보니까 60년 전에 살던 집이 맞는겨.”

할머니는 할아버지에게 주소를 잊으면 고향에 돌아갈 수 없으니 꼭 기억하라고 하셨다고 한다. 그 이후부터 할아버지는 주소를 메모지에 적어놓고 매일같이 보며 잊지 않으려고 하신단다.

“할아버지, 지금은 고향에 갈 수 없지만 고향이 보이는 곳에는 가실 수 있어요. 모셔다 드릴게요.”

사라져가는 기억들 속에서 고향만큼은 잊지 않으려 애쓰는 할아버지의 모습에 가슴이 먹먹했다. 그래서 고향을 조금이나마 느끼게 해드리고 싶어 할아버지를 모시고 통일전망대에 가기로 했다.

통일전망대까지 가는 내내 할아버지는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그래도 눈빛은 고향이 있는 땅을 볼 수 있다는 설렘으로 빛나고 있었다. 전망대에 오르려면 주차장에서 조금 걸어가야 했다. 거동이 불편하신 할아버지를 위해 휠체어를 빌리려 했더니 할아버지는 기다리는 시간도 아깝다는 듯 난간을 부여잡고 힘겹게 계단을 오르셨다.

“할아버지, 망원경으로 보세요 . 저 건너편이 할아버지 고향 땅이에요.”
“…….”






할아버지는 망원경에 얼굴을 꼭 붙이고 한참을 들여다보셨다. 입가에 미소가 번진채였다. 몸은 갈 수 없지만 마음은 이미 저 건너편 땅에 내려서 산을 넘고 익숙한 길들을 지나, 벌써 고향 집 앞을 서성이는 듯싶었다.


옛 추억을 더듬으며 행복해하시던 할아버지는 이내 눈물을 흘리셨다.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으시며 급기야 흐느껴 우셨다.
 그리고 잊고 싶지 않은 고향을 가슴에 담으려는 듯 다시 한 번 망원경을 들여다보셨다.


“할아버지, 이제 내려갈까요?”
“황해도 개풍군….”


할아버지는 아쉬움이 남았는지 주소를 되뇌셨다.

가지 않으려 하시는 할아버지를 모시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할아버지는 좀처럼 눈물을 멈추지 않으셨다.


“할아버지 다음에 또 모시고 올게요. 그때까지 조금만 참으세요.”
“아버지, 어머니, 형, 누이 다 거기 있어요.”
“네?”
“아버지하고 어머니….”


그랬다. 할아버지가 그토록 고향에 가고 싶어하고 그리워했던 이유는 부모님과 형제자매가 그곳에 있기 때문이었다.


할아버지는 집에 돌아와서도 주소가 적힌 메모지를 몇 번이나 꺼내 보고 어루만지셨다.
고향은 그런 곳인가 보다. 잊을 수도 지울 수도 없고 잊히지도 않는, 망각의 병 마저도 어찌하지 못하는 곳 말이다.


나에게도 사무치게 그립고 보고 싶은 고향이 있다.
하늘 부모님과 형제자매와 함께했던 하늘 본향이다.
나의 죄와 허물이 얼마나 두텁고 짙길래 내 영혼의 고향을 기억하지 못한 채 존재조차 잊고 살았던 것일까.


이 땅이 전부인 양 살던 무지몽매한 나를 위해 찬란한 보좌를 뒤로하시고 이 땅에 오신 하늘 아버지 어머니. 하늘 기억을 상실한 자녀들에게 돌아갈 고향이 어디인지 알려주시고 기억을 되찾아주신 은혜에 감사드린다. 하나님께서 희생과 사랑으로 알려주신 고향의 주소를 가슴에 새기고 새겨 다시는 잊지 않으리라. 하루빨리 고향에 돌아가 하늘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형제자매들과 영원한 기쁨과 행복의 시간을 보내고 싶다.



<하나님의교회 엘로히스트 -고향의 주소>





할아버지가 치매 중에도 부모님 계신 고향땅만큼은 기억하고 간절히 그리셨듯,
우리 또한 본향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하늘 본향을 알려주신 하늘아버지 어머니께 감사드리며 
하나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 http://www.watv.org/
패스티브닷컴 https://www.pasteve.com/

2015년 1월 10일 토요일

편안함<하나님의교회 엘로히스트>

편안함





하루는 딸아이가 제 등에 기대어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아이와 살을 맞대니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무게가 느껴지면서 허리가 점점 굽혀지고 종내에는 숨쉬기조차 
힘들어졌습니다.

아이를 살짝 밀어내려는 순간, 딸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아, 편안하다.”


행복감이 한껏 묻어나는 아이의 목소리에 저는 아이가 일어날 때까지 꾹 참고 편안함을
 이어주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생각에 잠겼습니다. 

제가 은혜의 천국에서 편안하게 지내는 것은 제가 아무 걱정없이 기댈 수 있는 어머니가
 계시기 때문입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똑같습니다. 

굶으면 배고프고, 찬바람이 불면 춥고, 햇볕이 내려쬐는 여름이면 땀이 나고 덥습니다. 

어머니라고 다를까요. 

우리와 같은 모습으로 오셨기에 아픔과 슬픔, 고통을 분명  느끼실 텐데 저는 오랫동안 
모른 척해왔습니다.

이제는 어머니를 외면하지 않겠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만 하며 들판을 누볐던 에서의 모습을 버리고 어머니께 

고사리 손으로나마 도움을 드리는 딸이 되고 싶습니다. 

어머니, 지금까지 제 곁에 계셔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월간 엘로히스트 중에서




2014년 12월 22일 월요일

나비의 고향<하나님의교회&패스티브닷컴>

나비의 고향



세상의 모든 나무가 낙엽을 떨구고 나목이 된 겨울,
멕시코 시에라마드레 산맥의 숲에 사는 나무에는 여름철보다 더 화려한
오렌지빛 잎사귀들이 무수히 많이 달려 있다.
잎사귀의 무게 때문에 어떤 나무가지는 금방이라도 부러질 듯 휘어져 있다.
실은, 나뭇잎이 아니라 헤아릴수 없이 많은 나비떼들이 다닥다닥 붙어서 겨울잠을 자고 있는것이다.


그 장엄한 광경을 연출하는 주인공은 왕나비의 일종인 모나크 나비(Mornach Butterfly)다.
 멕시코의 시에라마드레산맥 외에도 미국 캘리포니아연안에서는 겨울이면 이렇게 전나무나 
유클립스나무 등에 매달려 겨울을 나는 모나크나비들을 볼 수 있다.


출처 :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


긴 겨울잠을 자고 난 모나크나비들은 짝짓기를 한 후 미지의 나라를 향해 대장정을 시작한다. 
그들이 가야 할 곳은 캐나다 혹은 알래스카다. 
0.5g의 연약한 몸으로 수천km에 달하는 멀고도 험한 여정을 떠나는 이유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은 해마다 봄이 되면 약속이나 한 듯 북쪽나라를 향해 날갯짓을 한다.



그 여리디여린 날개를 가지고 모나크나비는 시속 50km의 속도로 날아야 한다. 
그 고된 여행은 3~4주간 계속된다. 
남쪽나라에서부터 알을 품고 온 어미 나비는 아기의 안식처를 찾는다. 
그들이 찾는 안식처는 독성이 강한 풀, ‘밀크위드’다. 
다른 동물들이 밀크위드를 먹을 경우 중독을 일으켜 죽음에 이른다. 
그러나 모나크나비의 아기들은 밀크위드의 독에 중독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잎사귀를 먹고 자라 몸에 독성을 갖게 됨으로 자기 몸을 지킨다. 
참으로 불가사의한 생존전략이다.



아기가 자라 애벌레에서 완전한 나비로 탈바꿈한 모나크나비 2세들은 3~4시간 동안 날개를 말린 후,
 다시 북쪽나라를 향해 날갯짓을 한다. 모나크나비 1세가 겨울잠에서 깨어 남쪽나라를 출발한 지 
약 5개월 만에 북쪽나라에 도착한다. 1세들은 이미 모두 죽고 없다.


모나크나비들은 해가 짧아지기 시작하면 겨울나기를 위해 다시 남쪽나라를 향해 날아간다. 
멀고도 험한 대이주를 하는 동안 2세와 3세들이 수명을 다한다.
 1세들이 겨울을 났던 남쪽나라의 숲으로 돌아온 주인공들은 건강하고 용감한 4세들이다.


경이로운 일은 모나크나비 4세들이 1세들, 
즉 자신들의 증조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겨울을 났던 그 숲, 

그 나무에 정확하게 찾아온다는 것이다. 
이것은 곤충학자들 사이에서 최대의 미스터리 중 하나다.


사람들은 모나크나비를 ‘세계 최고의 항법사’라고 부른다.
 모나크나비의 항법에 대한 메커니즘은 아직 풀지 못한 숙제로 남아 있다.
 그저 태양, 달, 자기장을 이용하는 것이라고만 추측할 뿐이다. 그 연약한 생명체들이 어떤 신호작용에
 의해 해마다 수천km에 달하는 길을 오갈 수 있는 것인지 사람들은 해독하지 못한다.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요한계시록 4:11)


하나님께서 모나크나비들의 회귀 메커니즘을 설계하실 때, 우리들이 잃어버린 고향, 
천국을 다시 찾아가기를 바라신 건 아닐까.





출처 패스티브닷컴



2014년 12월 15일 월요일

*위가 두 개인 개미*

위가 두개인 개미


하루는 신문에서  '지구상에 살고 있는 개미들의 총 무게는 얼마나 될까?'
하는 제목으로 개미의 생태계가 실린 흥미로운 기사를 읽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과연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 해답은 놀랍게도 지구상에 살고 있는 전인류의 총 무게와 같다고 합니다. 


가히 상상치 못했던 수치의 기사를 읽으며 저는 참으로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대체 어떠한 특성과 요소가 있기에 
그와 같이 무리를 이루는 번식력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는 사람을 통하여 인터넷으로 개미에 관해 알아보았습니다. 
개미가 엄청난 무게의 수치로 기록될 수 있는 것은 독일의 생태학자들이 실험 연구한
 사실을 토대로 한 것인데 브라질 열대 밀림 속에서 사는 모든 동물들을 
거대한 저울에 올려 무게를 달아본다는 가정하에 연구해 본 결과 
흰개미를 포함한 전체 개미가 밀림 전체 동물의 중량 중 약30%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이는 개미의 부지런한 근면성이 있는 것도 요인이지만 가장
 큰 요인은 개미는 작지만 사회성이 발달한데다 수가 워낙 많기 때문이기도 하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저의 관심을 끈 개미의 기사는 
개미에게는 위(胃) 가 두 개나 있다는 점입니다.

 각 생물마다 소화 기관과 먹이를 저 는 방식은 다르지만 
개미의 경우 심장과 모이 주머니, 전위, 중장과 직장,그리고 항문과 기타 기문,
말피기씨관,두푸르샘,독샘, 저장낭이 있는데 
그 외에도 먹이를 임시 저장하기 위한 가짜위가 있다나요?


그 가짜 위를 영어로 크라프(Crop : 거둬들인 수확을 의미함) 또는 크러프라고 하는데 
이 두 개의 위(胃) 중에서 하나는 자신을 위한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평소에 모아온 꿀과 양식을 저장하였다가 배고픈 동료들에게 
입을 통하여 양식을 나눠주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배가 고픈 개미가 동료의 머리를 툭툭 건드리게 되면 위에 저장해 농은 양식을 
되새김질하듯 내어 먹여주는 이 생존을 위한 생태계의 신비는 
실로 저의 마음에 크나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우리들도 믿음생활을 할 때나 혼자만 가는 천국이 아니기에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서로 사랑하고 위하며 나눠줄 줄 아는 그런 믿음의 
소유자들이 되어야겠습니다. 
생명의 양식을 자신을 위해서만 쌓지 말고 시온의 가족 된 내 형제자매를 위해서도 
저장하고 준비해야 함을 말입니다. 
나 자신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잘 깨닫고 이해하여 함께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며 하늘나라 갈 수 있도록 손잡아 주는 것!
이것이 우리의 할 일이 아닐까요?


이천 년 전 이 땅에 오신 우리 하나님께서 부탁하신 '내 양을 먹이라’ 는 음성을 기억하며
 영의 양식이 결핍되어 시들하게 죽어 가는 영혼들이 없는지 살펴봅시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 한마음이 되어 진정한 사랑의 꽃을 피우는 
시온의 향기들이 다 되어야겠습니다.



[하나님의 교회 구 소식지 '십사만사천지 23호]



2014년 12월 10일 수요일

메멘토 모리<하나님의교회&패스티브닷컴>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이 말은 '죽음을 기억하라','너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뜻의 라틴어다.
옛적 로마에서는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개선장군이 시가행진을 할 때 노예를 뒤따라오게 하며 이렇게 외치도록 시켰다고 한다. 한껏 승리감에 도취되고 기쁨으로 고무된 개선장군에세 찬물을 끼얹는 소리인 셈이다.


그들의 행위가 범상치 않게 느껴지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지금은 이렇게 개선가를 부르고 있지만 언젠가는 너도 죽을 것이다’라는 사실을 상기시켜 겸손하게 살라는 교훈을 심어주기 위한, 의미심장한 행위이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한 문제는 인류 최대의 이야깃거리이자 수수께끼다. 그래서 그리 많은 철학자들이 생겨난 건지도 모른다. 철학자들의 논제는 삶이란 무엇이다, 인간이란 어떤 존재다, 죽음이란 무엇이다 등 대개가 인생이다. 철학자들은 그런 식으로 자신의 인생관을 타인에게 설파해 어디에 가치를 두고 살아야 하는지 제시해주기도 한다.


과연 성공한 인생은 어떤 것일까. 세상에 태어나 누구는 부(富)를 축적하는 것으로, 누구는 권력을 누리는 것으로, 누구는 이름을 알리는 것으로 성공했다고 말한다. 세간에 오르내리는 성공스토리의 주인공들이 그룹총수 혹은 매출깨나 올리는 사업가, 정치인, 유명인 일색인 것을 보면 이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들의 성공스토리는 뭇 사람들에게 삶의 지표가 되기도 한다. 스토리의 주인공을 롤모델로 삼고 사업전략을 짜거나 정치노선을 바로잡거나 생활습관을 바꾸기도 한다. 그렇게 하면 정말로 성공스토리의 주인공처럼 살게 될지도 모른다. 떼돈을 벌 수도 있고, 유명해질 수도 있고, 권력을 손에 쥘 수도 있다. 그러나, 찬물 끼얹는 소리를 안 할 수가 없다. 그렇다 할지라도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며, 죽을 때 그것들을 갖고 갈 수도 없다는 것이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제아무리 엄청난 부와 명예와 권력을 가졌던 사람일지라도 죽을 때는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했다. 역사를 뒤흔들었던 제왕들은 어떠한가. 굴지의 기업을 이끌며 부를 거머쥐었던 기업가들은 어떠한가. 살아생전 그들이 소유하던 것을 영원히 갖고 산다면 좋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태어날 때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않았듯이 말이다. 공수래공수거는 불변적이고 불가항력적인 법칙이다. 한평생 쌓아온 공을 영원히 가지지 못하는 인간은 불행하고 불안하고 불완전한 존재인 것이다.


고대 이스라엘 왕조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솔로몬은 세상의 모든 것을 가졌던 사람이다. 그런 그가 깨달은 것은 의외의 것이었다.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 내가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본즉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전도서 1:2~3, 14)







부와 명예와 권력을 모두 가졌던 솔로몬은 열심히 살아보려고 발버둥치는 사람들에게 찬물을 끼얹고 있다. 인류 역사상 최고의 성공가도를 달렸다고 할 만한 그가 남긴 말은 ‘내가 모든 것을 가져봤는데 다 헛되고 부질없더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떠한 삶이 진정 성공한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영원히 가질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인생은 그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그것은 바람이 지나면 없어지나니 그곳이 다시 알지 못하거니와 여호와의 인자하심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며 그의 의는 자손의 자손에게 미치리니 곧 그 언약을 지키고 그 법도를 기억하여 행하는 자에게로다
 (시편 103:15~18)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지키고, 하나님의 법을 기억하여 행하는 사람에게 영원히 인자를 베풀겠다고 하셨다. 즉 영원한 생명을 허락해주시겠다는 뜻이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성공한 삶을 살고 있는 데다 영원한 생명까지 받는다면 금상첨화인 인생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솔로몬의 충고를 두고두고 곱씹어야 할 것이다.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신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
 (전도서 12:1, 7~8)


출처 패스티브닷컴



2014년 12월 5일 금요일

평면사고와 입체사고<하나님의교회&패스티브>

평면사고와 입체사고






세상을 살다 보면 처음으로 생소한 일을 하게 될 때 아직 경험해보지 않은 일이라
자신감도 부족하고 불안한 마음에 눌려서'과연 내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혹은 '이 일이 옳은 것인가, 잘못된 것인가?'하며 고민할 때가 있다. 
내일 일은 고사하고 당장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여 
끔찍한 재앙과 사고를 당하는 현실을 날마다 목도하면서 불확실한 미래와 
삶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우리 인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시편 70:10)



사람은 누구나 안락한 삶을 꿈꾼다. 
그러나 그러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가로와 세로만 생각했던 평면사고보다는 가로와 세로와 높이, 
넒이까지 생각하는 입체사고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때이다. 
봄이 왔어도 봄만 생각하는 평면사고에서 벗어나 이제는 곧 여름이 오고 
가을과 겨울까지 닥친다는 것을 내다보면서 입체사고로 진화되고 
변화된 삶을 추구하고 대비해야 할 것이다.



저희가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히브리서 11:15~16)


이 땅에 살면서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며 사는 사람이야말로 평면사고에서 벗어나 입체사고, 
고차원의 사고를 가진 자일 것이다. 사계절의 변화가 뚜렷한 온대지방에 살면서도 
계절의 변화를 체감하지 못하고 그저 오뉴월이 한창인 메뚜기 같은 사고를 가지거나, 
여름 한철 내내 신바람나게 노래하고 즐기던 베짱이 
같은 사고를 가진 자들은 결코 생각하지 못하는 세계인 것이다.



봄이 지나면 여름이 오고 때가 되면 가을, 겨울이 지나 다시 새로운 봄이 오듯이, 
우리 인생도 이생이 지나가면 반드시 내생이 오리라. 
그 내생을 보장하는 시온에 거하고 있고, 
어머니 하나님이 함께 계시니 이 얼마나 행복하고 감사한 일인가?



우리의 절기 지키는 시온성을 보라 네 눈에 안정한 처소된 예루살렘이 보이리니 
그것은 옮겨지지 아니할 장막이라 … 거기 거하는 백성이 사죄함을 받으리라
 (이사야 33:20~24)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갈라디아서 4:26)




출처 패스티브닷컴



2014년 12월 2일 화요일

먼지도 하는 일이 있다[하나님의교회]





'하찮고 보잘것 없다'는 의미로 자주 언급되는 물질 '먼지'

작고 쓸모 없는 존재로 여겨지는 먼지도 역할이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아름다운 저녁노을을 만드는 것입니다.

해질 무렵 태양빛이 먼지에 부딪혀 흩어지면서 우리 눈에 보여지는 것이 붉은 노을입니다.

먼지는 빗방울과 눈송이를 만드는 결정적 역할도 합니다.

물이 수증기 되어 하늘로 올라가 방울방울 뭉쳐져야 비나 눈이 되는데 이때 수증기를 

흡수해 방울을 형성하는 물질이 먼지 입니다.

먼지가 없다면 아름다운 노을을 볼 수 없을 뿐더러 눈비가 내리지 않아 지구의 생명체들은

극심한 가뭄으로 큰 고통을 겪게 됩니다.




-월간<엘로히스트>중에서-


누구나 자신만의 특별한 장점과 매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간혼 그것을 발견하지 못해 스스로를 쓸모없는 존재로 착각하는 것 뿐이지요.
곰곰이 생각해 보세요.
나의 장점과 역할은 무엇일까요?



나는 열매도 맺지 못하고 말씀도 잘 전하지 못하니 하나님의 일에 필요치 않다고 생각하셨나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주신 것은 우리도 하나님의 복음의 일에 쓰임받기 위함입니다.
더욱 더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복음의 일에 열심을 다하시고 하나님께서 
부족한 이 자녀들에게 맡겨주신 복음에 최선을 
다하여 안상홍님과 하늘 어머니 하나님께 기쁨을 드릴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2014년 10월 12일 일요일

[하나님의교회 영혼이야기]사람과 영혼

[영혼]

사람과 영혼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인가
인간의 근원적이고 존재론적인 문제에 답을 던지다.



샘이 죽은 후 몰리는 혼자였다. 잦아지는 그리움에 슬픔이 복받쳐도 위로해줄 사람이 없었다. 그와 함께했던 소파에 앉아 샘을 그리워하던 몰리에게 한사람이 찾아왔다. 오다메였다.
그리고 몰리는 깨닫게 된다. 샘이 영혼의 상태로 자신의 주위를 맴돌고 있음을.


1990년, 전세계적으로 대히트를 쳤던 영화' 사랑과 영혼(Ghost)'의 한 장면이다. 전반부의 안타까움이 절정에 다다를 즈음 이 장면에 이어 몰리는 결국 샘을 만나게 된다. 오다메 속에 들어온 샘의 영혼과의 재회는 보는 이의 노스탤지어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영화 '사랑과 영혼'의 한 장면

하지만 우리는 이 영화에서 차마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떠날 수 없었던 샘의 영혼이 던지는 메시지보다 ‘사람에게 과연 영혼이라는 것이 존재할까’라는 의문을 더 가지게 된다. 과연 영혼이라는 것은 존재할까. 영화에서 샘의 영혼은 몸을 벗어나 활동하며, 눈으로 볼 수 없고, 만질 수도 없는 존재로 설명된다. 물론 영화는 픽션(fiction)이다. 그러나 영화의 소재인 영혼은 논픽션(nonfiction)이다.

사람의 영혼에 대한 문제는 종교를 떠나 오랜 세월 회자되고 있다. 영혼 존재에 대한 갑론을박은 결론 없이 이어진다. 이유는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다’ 말할 수 없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 속에는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이 많다. 겨울이면 유행하는 인플루엔자, 동장군이 몰고 온 찬바람, 손바닥에 득실대는 세균들…. 인간이 가진 시력으로는 그 유무를 확인할 수 없다. 그러나 이들의 존재를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는 이들의 존재를 증상이나 증거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인플루엔자의 증상은 열과 몸살, 기침 등이 있으며, 동장군이 몰고 온 찬바람 또한 피부로 그 증거를 체감할 수 있다. 손의 세균은 현미경을 통해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영혼의 존재는 어떤 증거로 확인할 수 있을까. 성경에서 그 해답을 살펴보자.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창세기 2:7)

생령이란 ‘산 영혼’, ‘산 생명’이란 뜻이다. 흙이라는 육체 속에 하나님의 생기(영혼)로 사람이 창조됐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살아 있는 사람 모두에게는 영혼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영혼의 존재를 어떤 증거로 확인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의 명쾌한 답이다. 누구든지 살아 있다면 그것이 바로 영혼의 존재를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이 숨쉬고, 먹고, 움직이며 살아가는 모든 것, 그것이 바로 사람 속에 영혼이 존재한다는 증거다.
그렇다면 반대로 생각해보자. 사람의 몸속에 영혼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여호와께서 엘리야의 소리를 들으시므로 그 아이의 혼이 몸으로 돌아오고 살아난지라 (열왕기상 17:22)

이 내용은 엘리야라는 선지자가 사르밧 지역에 사는 한 과부를 만나 그의 죽은 아들을 살리는 장면이다. 이때 엘리야 선지자는 하나님께 기도했다. ‘아이의 영혼을 몸으로 돌아오게 해달라’고 말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엘리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빠져나온 영혼을 몸으로 돌려보내 아이를 살아나게 하셨다. 즉 영혼이 몸과 분리되면 사람은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그 사람의 몸에 영혼이 없다는 것 자체가 죽었음을 의미한다. 이를 두고 성경에서는 ‘돌아간다’고 설명했다.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신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전도서 12:7)

‘돌아간다’는 의미는 ‘왔던 곳으로 다시 감’을 뜻한다. 예를 들어 아침에 집에서 나와 학교로 간 아이가 하교 후에 돌아간다면 어디로 갈까. 다시 집으로 가야 ‘돌아간다’는 말이 성립된다. 만약 아이가 하교 후 도서관에 들른다면 이는 ‘돌아간다’는 표현을 쓸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죽게 되면 몸과 영혼이 분리되어 ‘왔던 곳’으로 돌아간다고 하셨다. 육체는 흙에서 왔기에 땅으로 돌아가고, 영혼은 하나님으로부터 왔기에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영혼과 육체의 결합으로 살아 있던 사람은, 수명을 다한 후 영혼과 육체의 분리로 죽게 된다. 이와 관련해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표현하는 습관이 하나 있다. 예로부터 사람의 죽음에 대해 ‘돌아가셨다’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영혼은 아마도 육체가 의식하지 못하는, 삶과 죽음에 대한 메커니즘을 깨닫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몸을 보호하기 위해 인류는 옷을 지어 입기 시작했다. 옷은 유구한 역사 속에 변화를 거듭해 갔다. 그리고 명품이라는 브랜드 속에서 고가의 제품으로 태어나기도 했다. 그렇다고 몸보다 중요하지는 않다. 또한 옷이 아무리 비싸도 저절로 혼자 무엇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사람이 벗어 놓으면 그 자리에서 조금도 움직여지지 않는다. 우리의 몸이 이와 같다. 영혼에서 탈피된 육체는 아무것도 아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존재가 우리 몸이다. 벗어놓은 옷과 같다. 중요성을 논하자면 옷보다 몸이 중요하듯 육체보다 영혼이 더 중요하다는 결론이다.

영혼은 존재한다. 그 존재를 믿을지 말지는 각자에게 달렸다. ‘사랑과 영혼’의 몰리처럼 말이다.


출처 패스티브닷컴

나는 무엇인가? "나"라는 존재의 해답. 
하나님의교회(안상홍증인회) 는 영혼문제에 대한 해답을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서 찾습니다.

잠시잠깐 살다가는 육신의 인생에 연연하기보다
영원한 영혼의 삶을 생각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교회 성도들은 영원한 천국에서
영원한 영의 삶을 소망하며 믿음의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