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1월 13일 목요일

다윗의 뿌리가 세우신 하나님의교회[하나님의교회역사&안상홍님]

다윗의 뿌리가 세우신 하나님의교회

울지말라
대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인을 떼시리라


성경은 가장 오랫동안 일류에게 읽혀온 스테디셀러다. 전 세계에서 통용되고 있는 6,500개의 언어 가운데 성경은 약 2,500개의 언어로 번역되어 읽히고 있다. 이렇게 많은 언어로 번역되면서 세상에는 수많은 교파들과 수많은 교회들이 저마다 조금씩 다르게 성경을 해석하고 그 교리를 '진리'로 가르치고 있다. 과연 그 많은 교회 중 어느교회가 성경을 하나님의 뜻대로 올바르게 해석하고 있을까. 성경에서는 오직 '다윗의 뿌리'만이 성경을 올바로 해석해주실수 있다고 기록한다.



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책이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 또 보매 힘 있는 천사가 큰 음성으로 외치기를 누가 책을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 하니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에 능히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할 이가 없더라 이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않기로 내가 크게 울었더니 장로 중에 하나가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요한계시록 5:1~5)


요한은 밧모섬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 인봉된 성경의 비밀을 개봉해주시는 ‘다윗의 뿌리’에 대해 언급했다. 예언 가운데 ‘보좌에 앉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다. ‘오른손에 가지신 책’은 당연 성경이다. 그런데 이 계시 속에서 요한은 성경이 어느 누구도 펴거나 보거나 할 수 없도록 ‘인봉’돼 있다고 말했다. 성경의 비밀을 아무도 볼 수가 없어 답답한 마음에 크게 울었던 요한에게 한 사람이 다가와 ‘다윗의 뿌리’만이 인봉된 성경의 비밀을 풀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성경의 비밀은 유명한 목사도, 신학자도 아닌 오직 ‘다윗의 뿌리’만이 풀 수 있다. 즉, 우리는 ‘다윗의 뿌리’가 세운 교회에 가야 성경을 올바르게 배울 수 있다. 그러므로 성경은 마지막 때 다윗을 구하고 경외하는 사람들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 후에 저희가 돌아와서 그 하나님 여호와와 그 왕 다윗을 구하고 말일에는 경외하므로 여호와께로 와 그 은총으로 나아가리라 (호세아 3:5)


말일(末日)에, 즉 마지막 때에 다윗을 경외하지 않고서는 결코 구원의 은총으로 다가갈 수 없기에 이 시대 우리는 반드시 다윗의 뿌리가 누구인지 알아야 한다.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거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별이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 22:16)


성경의 모든 비밀을 올바로 해석해주고 우리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다윗의 뿌리는 바로 ‘예수님’이다. 그런데 요한계시록 5장에 등장하는 다윗의 뿌리는 과연 ‘초림 예수님’일까 ‘재림 예수님’일까. 물론, 요한계시록은 이미 초림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셨다가 하늘로 올라가신 후 쓰여졌기 때문에 초림에 대한 예언이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하지만 더욱 확실한 해답은 ‘인봉’이라는 단어 속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예언은 초림 예수님께서 알려주신 구원의 말씀이 인봉된 후 다시 개봉할 역사에 대한 예언인 고로, 다윗의 뿌리는 재림 예수님이다. 그런데 초림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다시 오실 때, 수많은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도 함께 등장할 것이라고 예언하셨다.


예수께서 감람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종용히 와서 가로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 (마태복음 24:3, 24)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다윗의 뿌리인 재림 예수님을 알아볼 수 있을까. 이 문제는 다윗의 뿌리만이 가지고 오는 ‘확실한 증표’로 해결된다.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에게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니라 (이사야 55:3)


다윗에게만 주신 확실한 은혜는 영혼을 살리는 ‘영원한 언약’이다. 그러므로 다윗의 뿌리인 재림 예수님은 반드시 영원한 언약이라는 증거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영원한 언약은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께 받은 옛 언약이 아니다. AD 80년경 쓰인 ‘히브리서’는 이 영원한 언약에 대해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양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를 영원한 언약의 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이끌어내신 평강의 하나님이 (히브리서 13:20)

히브리서는 ‘영원한 언약’에 대해 논하며 ‘피’를 언급하고 있다. 이는 영원한 언약에는 반드시 예수님의 피가 내재돼 있어야 함을 뜻한다. 때로는 아주 중요한 약속을 하며 변치 않겠다는 의지로 ‘혈서’를 쓰기도 한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에게 영생을 약속하시며 피로써 절대 변치 않는 ‘영원한 언약’을 세워주셨다. 한정적이고 유한하지 않은, 무한하고 영원한 ‘언약의 피’는 무엇일까.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마태복음 26:26~28)


이 장면은 유월절 성만찬 자리다. 예수님께서는 이 자리에서 떡을 일컬어 ‘당신의 몸’, 포도주를 일컬어 ‘당신의 피’라고 하시며 이를 보다 확실하게 ‘언약의 피’라고 말씀하셨다. 반드시, 꼭, 확실하게 죄를 사해주시고 이로써 구원을 주시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이와 동일한 장면을 묘사하며 누가는 ‘새 언약’이라고 기록했다.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누가복음 22:20)


따라서 영원한 언약은 예수님께서 피로 세워주신 유월절 새 언약이다. 다윗이 가지고 올 확실한 증표가 바로 이것이다. 그러므로 말일에 새 언약 유월절을 가지고 나타나신 분은 요한이 계시를 통해 보았던 다윗의 뿌리가 된다. 다윗의 뿌리를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도 성경을 올바로 해석할 수 없다. 만약 다윗의 뿌리가 아니면서, 즉 새 언약 유월절을 가지고 오지 않았으면서 성경을 해석한다면 그는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화를 면하지 못할 것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아래 ucc 참고}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베드로후서 3:16)

다윗의 뿌리로 오시는 재림 예수님은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 어느 누구도 해석할 수 없었던 성경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려주신 분이다. 그러므로 새 언약 유월절을 지키고 있는 다윗의 뿌리가 세우신 교회라야 올바로 성경을 해석하는 진리 교회다.

패스티브 닷컴

다윗의 뿌리는 하나님의 예언을 통해 오시는 이시대의 구원자입니다.
마지막 시대 성경을 개봉하실 다윗의 뿌리 재림그리스도 안상홍님이십니다.





2014년 11월 12일 수요일

천국의 비밀을 알려주신 안상홍 하나님


성경은 천국의 비밀을 허락받지 못한 자들은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고 깨닫지도 못한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율법학사들은 알아보지 못했던 예수님을
어부들이 알아보았고 들판에서 양을 치던 목동들이 알아보았습니다.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을 알아보고
올바르게 경배했던 그들이 축복받았던 것처럼
오늘날 천국의 비밀을 허락받은 사람이 있다면
정말 복 있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성경은 오래 저장되었던 포도주로 영생을 허락해주시는 그분이
우리를 구원하실 우리의 하나님이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325년 이후로 오랫동안 봉해졌던 새 언약 유월절을 다시 우리에게
찾아주신 분이 계시다면 우리가 기다려온, 이 시대의 구원자입니다.

천국의 비밀들을 모두 풀어주시고
생명과인 새언약 유월절을 가져 오신 하나님
죄 사함의 축복과 영원한 천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축복을 주신 분은
안상홍님이십니다.


2014년 11월 11일 화요일

재림그리스도의 예언 멜기세덱의반차<하나님의교회>



하나님의교회 재림그리스도의 예언 멜기세덱의 반차


하나님의교회는 멜기세덱반차의 예언을 이루시고 이땅에 오신 재림그리스도 안상홍님을 믿고 전합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모든 예언을 한고리씩 이루셨습니다.
멜기세덱의 반차를 통해 재림그리스도 안상홍님을 만나보십시오.

멜기세덱의 기원을 아십니까?
성경의 멜기세덱을 살펴보면 하나님의 비밀과 그리스도에 대해서 알 수 있습니다.

2000년 전에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신 예수님께서 멜기세덱 반차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두번째 안상홍 하나님께서 멜기세덱 반차로 오셨습니다.



구약에 등장하는 멜기세덱에 대해 살펴봅시다.

「창 14장 17~20절」 아브람이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한 왕들을 파하고 돌아올 때에 소돔 왕이 사웨 골짜기 곧 왕곡에 나와 그를 영접하였고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의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구약의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을 만나서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와서 축복을 빌어준 인물입니다.
이러한 멜기세덱은 마지막때 등장하실 재림그리스도를 알려주는 중요한 예언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를 통해서 멜기세덱에 대한 예언을 살펴보겠습니다.

「히 7장 1~3절」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여러 임금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 자라 아브라함이 일체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눠 주니라 그 이름을 번역한즉 첫째 의의 왕이요 또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 아들과 방불하여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멜기세덱의 행적을 통한 예언과 예언 성취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이러한 멜기세덱의 예언을 성취하시는 분이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할 완전한 멜기세덱이라 할 수 있습니다.

멜기세덱의 모든 예언을 따라 이스라엘 족보에 오를 수 없는 이방 나라인 동방 땅끝 한국에,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의 가정에 태어나셔서,
새 언약 유월절의 떡과 포도주로 우리에게 영생의 축복을 빌어 주신 분이 바로 안상홍하나님이십니다.
아래의 ucc를 참고 하시길 바랍니다.




성경의 멜기세덱의 비밀을 통해서 우리는 안상홍하나님께서 재림 그리스도임을 알 수 있습니다.
현재 재림 그리스도이신 안상홍하나님께서 하나님의교회를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의교회로 오셔서 새언약 유월절 진리에 참여 하셔서 영원한 영생의 축복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2014년 11월 10일 월요일

'우리 어머니' 글과 사진전 30만 돌파.6일 경기분당 입성

'우리 어머니' 글과 사진전 30만 돌파.6일 경기분당 입성


성남시 분당구 이매동 하나님의교회 새예루살렘성전 특별전시장에 마련된 '우리 어머니'글과 사진전에서
관람객들이 어머니들의 손때가 묻은 옛날의 그릇을 둘러보고 있다.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총회장 김주철 목사)가 주최하고  (주)멜기세덱 출판사 주관하는 '우리 어머니'글과 사진전이 관람객 수십만을 끌어모으며 경기도 성남시 분당에 입성했다.

'어머니 전'은 그동안 전국 24개 지역에서 30만명 관람이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우며 화제를 모았다. 분당 전시회는 6일부터 이매동 소재 하나님의교회 새예루살렘 성전 특별전시실에서 내년 1월 11일 까지 67일간 전시에 들어갔다.


하나님의교회 새예루살렘성전 외벽에 부착된 '우리 어머니'글과 사진전

전시회는 첫날부터 관람객의 발길로 성황을 이뤘다. 박영애, 김해숙, 최승희 성남시의원을 비롯해 주부와 학생, 지역 언론사 관계자들까지 500여 명이 전시회장을 찾아 뜨거운 열기를 실감했다.

‘어머니전’은 어머니의 사랑과 희생을 추억하며 삶의 용기와 위안을 얻고, 갈수록 소원해지는 가족 간의 정을 다시 확인하기 위해 기획한 뜻깊은 자리다.

전시회는 총 5개의 테마관으로 구성돼 있다. A존은 ‘엄마’, B존은 ‘그녀’, C존 ‘다시, 엄마’, D존 ‘그래도 괜찮다’, E존 ‘성경 속 어머니 이야기’로 꾸며져 각각 색다른 감동을 전한다. 부대행사로 문학영상관, 사랑의 우편함, 포토존, 북카페 등도 마련돼 있다.

전시관에는 시인 문병란, 박효석, 김초혜, 허형만, 김용택, 도종환, 아동문학가 김옥림 등 기성문인의 글과 일반 문학동호인들의 문학 작품, 멜기세덱출판사에 투고된 독자들의 글과 사진 100여 점이 전시돼 있다. 호롱불, 반짇고리, 배냇저고리 등 유년시절과 어머니를 추억할 수 있는 어머니들의 손때 묻은 소품들도 잔잔한 감동을 전한다.

박영애 시의원은 “가슴이 찡하고 애잔한 감동이 느껴지는 전시회”라며 “물질적으로 챙겨주는 일을 하는 사람이 엄마인 것처럼 이 시대에 진정한 엄마의 역할과 사랑을 되새겨보게 한다”고 말했다.

주부 김미영(39)씨는 “작품을 보며 엄마와의 기억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며 “전시장에 있는 동안 내내 가슴이 먹먹하고 숙연해졌다”고 소감을 밝혔다.

‘어머니전’은 누구나 관람이 가능하며, 관람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저녁 8시까지다. 문의 (031)703-1925. 

정성수 종교전문기자 tols@segye.com 
http://www.segye.com/content/html/2014/11/07/20141107003717.html


30만이 넘는 많은 이들이 우리 어머니 글과 사진전을 관람했네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인 '어머니'를 주제로 감동 넘치는 뜻깊은 전시회라
재관람도 많았다고 합니다. 아직 관람을 못하신 분이 계시다면 꼭 찾아가 보시길 바랍니다. 또한 우리 영의 하늘어머니가 계심을 깨달을 수 있는 귀한 시간이 되실겁니다.



2014년 11월 9일 일요일

영혼의 존재에 대하여(하나님의교회&패스티브)

영혼의 존재에 대하여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될까
영혼은 과연 있는 것일까
사람은 죽으면 어디로 가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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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존재에 대한 문제는 종교를 떠나 오랜 세월 사람들 사이에서
많은 토론을 불러일으킨 논제다.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될까. 영혼은 과연 있는 것일까. 사람은 죽으면 어디로 가는 것일까.’
 하는 생각은 유사 이래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사이자 풀지 못할 숙제로 남아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나’라는 존재에 대해 생각하고 연구했지만 그 누구도 답을 얻지 못했고, 
‘나’라는 존재는 과연 어디서 왔는지 깨닫지 못한 채 다만 알고 싶은 
욕망만이 앞서 철학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영혼’은 인간의 풍부한 상상력이 빚어낸 망상에 불과할 것이다. 
무신론자는 두말할 것도 없지만 개중에는 2천 년 전 사두개인들처럼 하나님을 
믿는다면서도 영혼이 없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유대교의 한 당파였던 사두개인들은 성경의 일부만 인정하고 부활, 천사의 존재와 
함께 사람이 죽은 후에는 아무것도 없다며 영혼의 존재를 부인했다(사도행전 23:8). 
이는 하나님께서 알려주신 영혼의 근본 원리를 깨닫지 못해 빚어지는 현상이다.

영혼의 근본 원리는 우리 영혼이 어디서 왔느냐 하는 것이다. 
혹자는 출생과 동시에 영혼이 생성되었다고 주장한다. 
그 말이 옳다면 육신이 소멸할 때 영혼도 함께 없어져야 한다. 
그러나 육신이 죽더라도 영혼은 살아 있다. 다만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없는 것’으로 간주할 수도 있겠으나 세상에는 보이지 않아도 
존재하는 것들이 많이 있다. 
세균이나 미생물은 인간의 시력으로는 볼 수 없지만 분명 존재한다. 
현미경을 사용하면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었던 생물체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영혼 세계도 마찬가지다. 
지금 우리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특별한 도구만 있으면 확인이 가능하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록된 성경이 그것이다. 
성경에는 창조의 역사로부터 영혼 문제가 무수히 기록되어 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창세기 2:7)

생령(生靈)은 사람이 흙(육체)과 생기(영혼)로 결합된 상태를 의미한다.
 생령이란 ‘산 영혼’, ‘산 생명’이란 뜻인데 흙이 생명의 본질은 아니다.
 흙으로 빚었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생령’이라고 하지 않았고, 
그 흙 속에 하나님의 생기가 들어가므로 생령이 되었다고 하였으니 
인간에게 있어서 생명의 본질은 육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불어넣으신 
생기 즉 영혼(신)인 것이다. 즉 영혼이 깃들지 않은 육체는 아무 생명력이 없다. 
하나님께서는 육체에 영혼을 결합시켜 살아 있는 사람을 창조하셨다. 
육체와 영혼의 결합이 살아 있는 상태라면 반대로 죽음은 육체와 영혼의 분리를 가리킨다.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신(생기)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전도서 12:7)

사람이 죽으면 육체와 영혼은 각각 그 온 곳으로 돌아가게 된다. 
흙인 육체는 땅으로 돌아가 썩어 없어지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영혼은 
영혼의 세계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육신과 별개로 존재하는 우리의 영혼은 이 땅에 오기 전 하늘에 있었다. 
성경은 우리의 영혼이 이 땅에 태어나기 전, 
하늘에서 하나님과 함께 있었던 천사들이었다고 알려주고 있다.





여호와께서 그 조화의 시작 곧 태초에 일하시기 전에 나를 가지셨으며 만세전부터, 
상고부터, 땅이 생기기 전부터 내가 세움을 입었나니 아직 바다가 생기지 아니하였고 
큰 샘들이 있기 전에 내가 이미 났으며 산이 세우심을 입기 전에,
 언덕이 생기기 전에 내가 이미 났으니 하나님이 아직 땅도, 들도, 세상 진토의 근원도 
짓지 아니하셨을 때에라 (잠언 8:22~26)


때에 여호와께서 폭풍 가운데로서 욥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 ··· 
그때에 새벽 별들이 함께 노래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쁘게 소리하였었느니라 ··· 
네가 나던 날부터 아침을 명하였었느냐 새벽으로 그 처소를 알게 하여 
그것으로 땅끝에 비취게 하고 악인을 그 가운데서 구축한 일이 있었느냐 ··· 
네가 아마 알리라 네가 그때에 났었나니 너의 년수가 많음이니라 (욥기 38:1~21)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 비유로 이르시되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도록 
찾아 다니지 아니하느냐 또 찾은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았노라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누가복음 15:3~7)



이 말씀들과 ucc를 정리해보면, 하늘의 천사들이 죄를 짓고 
이 땅에 쫓겨 내려와 잠시 육신을 입고
살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원래 있던 곳이 하늘이기 때문에 사람이 죽어 육신을 벗게 되더라도
 영혼이 남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물속에만 사는 잠자리 애벌레는 장차 자신이 잠자리가 되어 누비고 다닐 바깥세상, 
곧 푸른 하늘과 울창한 숲과 아름다운 꽃이 피어 있는 곳을 상상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수천억 개의 은하계가 가득한 우주에서 먼지 하나에 
불과한 지구에 살고 있는 우리로서는 장차 허락될 영혼의 세계를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
(이사야 40:15).

패스티브닷컴

사람이 태어나 한번은 반드시 생각하게 되는 질문.
나는 어디서 와서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
그에 정확한 답을 성경은 알려주고 있습니다.
인간이란 피조물이 한줌의 모래가 되는 것은 피할수 없는 현상 이지만
그 후 영원한 세계의 삶이 있음을 알려주시고 그곳에 돌아갈수 있는 방법도 
안상홍님께서 알려주셨습니다.  
영적 삶을 위해 투자하여 후회없는 이 땅의 삶을 살아야하겠습니다 


2014년 11월 8일 토요일

당신의 이름은 생명책에 있나요???[하나님의교회/침례]

당신의 이름은 생명책에 있나요??


하나님의 교회에서 침례를 받은 나는...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는자가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들었습니다.

[단12:1] .. 그때에 네 백성 중 무릇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얻을 것이라
[계20: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 성경은 생명책에 이름이 녹명된자가 구원을 받으며, 녹명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운다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생명책에 이름이 녹명되는 방법은?

이 땅에 생명을 부여 받아 출생하는 신생아들은 이 땅의 시민권과 이 나라의 
국적을 취득하기 위하여 출생신고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그림자로..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영의 생명을 부여 받아 새롭게 새 생명을 받은 자가 곧 하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이 됩니다.

[롬6:4] 그러므로 우리가.. 세례(침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 침례로 새생명을 받은 자들은 하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 됩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하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 되었나요??
생명책이 있다는 것도 모르셨나요??
아직이라면..
하나님의 약속이 있은 침례.. 

하나님의교회에서 받으시고 하늘 생명책에 이름을 기록하세요~~


2014년 11월 7일 금요일

무화과나무의비유에 따라 1948년오신 재림예수님[하나님의교회]

무화과나무의 비유 [재림예수님오시는 시기]



하나님의교회에서 믿고 있는 안상홍님이 진짜 하나님이냐구요?
사람으로 오셔서, 대한민국에 오셔서 잘 믿기지 않으시죠?
2000년 전에도 예수님을 유대인들이 못 믿었습니다.
오늘날과 동일하게 사람으로 오셨다는 이유만으로 믿지 않았답니다.
하지만 예수님도 믿지 않았지만 성경의 예언대로 오신 하나님이셨듯
오늘날 안상홍님도 사람들은 믿지 않더라도 성경의 예언대로 오신 하나님이 맞습니다.


그렇다면 성경 말씀을 통해 조금 알려드릴께요.
오늘은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통해 재림예수님의 등장시기에 대해 알려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예수님의 재림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재림을 믿고 기다리면서도 재림의 시기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막연히 기다리고만 있습니다.



[마 24:32-33]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지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1)무화과나무


위 본문의 내용에“무화과나무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인자가 이른 줄 알라”했습니다.

이 예언은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시기를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통해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화과나무가 무엇을 비유하고 있으며 무화과나무가 언제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을 내었는지 알아야
재림 그리스도를 올바로 영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회개치 않으며 망하게 될 것을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눅 13:5-7]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같이 망하리라 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과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실과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 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느냐』
(마 21:18-19,막 11:12-14)


예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복음의 역사를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들어 말씀하는 장면입니다.

한 사람(예수님)이 무화과나무(이스라엘 백성)에서 3년 동안(예수님 복음의 기간) 열매(믿음)맺기를 기다렸으나 열매를 맺기 않았기 때문에 찍어버리라(멸망시키라)는 비유의 말씀입니다.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 백성을 뜻하는 비유로서 무화과나무에서 3년 동안 열매를 구했다는 말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3년 동안 회개하라고 복음을 전하였으나 회개치 않았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찍어버리라는 말입니다.

이 비유의 말씀을 통해서 무화과나무가 이스라엘 백성을 비유하고 있음을 일깨워 주고 계십니다.

(2) 말라죽은 무화과나무


회개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못한 이스라엘의 운명을 예수님께서 실제 무화과나무를 통해 보여주신 바 있습니다.

[막 11:12-21]
『이튿날 저희가 베다니에서 나왔을 때에 예수께서 시장하신지라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외에 아무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예수께서 나무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
저희가 아침에 지나갈 때에 무화과나무가 뿌리로부터 마른 것을 보고 베드로가 생각이 나서 여짜오되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

열매 없어 말라죽은 무화과나무는 멸망한 이스라엘의 표상이었습니다.

[눅 21:20-24]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며 성내에 있는 자들은 나갈지며 촌에  자들은 그리도 들어가지 말지어다 이날들은 기록된 모든 것을 이루는 형벌의 날이니라. 그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니 이는 땅에 환난과 이 백성에게 진노가 있겠음이로다 저희가 칼날에 죽임을 당하며 모든 이방에 사로잡혀가겠고 예수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밝히리라』

예수님의 말씀대로 서기 70년 9월 8일에 로마의 디도 장군에 의해 예루살렘은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다 무너졌으며  110만 명이 죽고 9만 7천명이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이리하여 이스라엘 민족은 나라 없는 민족으로 1900여 년 동안 떠돌게 되었으며 전 세계에 흩어져  유랑민족으로 전락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열매 없어 말라죽은 무화과나무의 예언은 이스라엘 멸망으로 온전히 이루어졌습니다.


(3) 무화과나무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을 낸 시기



“무화과나무가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낸다”는 말은 말라버린 무화과나무가 되살아난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서기 70년에 멸망한 이스라엘 나라가 국권을 다시 회복하게 될것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선지자의 예언을 통해서 이스라엘 민족이
다시 예루살렘에 돌아와 국권을 회복하게 될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렘 30:1-3]
『여호와께서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니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일러 가라사대 내가 네게 이른 모든 말을 책에 기록하라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과 유다의 포로를 돌이킬 때가 이르리니 내가 그들을 그 열조에게 준 땅으로 돌아오게 할 것이라 그들이 그것을 차지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또한 예수님께서도 예루살렘이 멸망하여 이방인들에게 짓밟힌 다음 때가 되면 수복될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눅 21:24]
『저희가 칼날에 죽임을 당하며 모든 이방에 사로잡혀 가겠고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니들에 밟히리라』


이 예언의 말씀대로 서기 70년에 나라를 잃어버린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 세계에 흩어져 짓밟힘을 당하고 나라 없이 1900년 동안 유리방황 했으며 무화과나무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을 내리라는 예언대로 이스라엘은 1948년 기적처럼 독립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인자가 온 줄로 알라" 
했으니 이스라엘이 독립한 1948년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무화과나무의 비유는 예수님의 재림 시기를 알려주는 예언으로서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을, 무화과나무의 마름은 이스라엘의 멸망,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냄은
멸망했던 이스라엘이 국권을 되찾게 될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독립한 1948년 예수님께서 재림을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이 모든 예언대로 안상홍님께서는 이스라엘이 독립한 1948년, 
30세에 침례 받으시고 복음 생애를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종교암흑세기 동안 이지러지고 훼파된 새 언약의 진리를 회복하시어 
우리를 구원의 길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새언약 유월절은 오로지 하나님만이 가지고 오실 수 있는 증표입니다.
즉 , 재림그리스도를 알아볼 수 있도록 해 주신 하나님의 섭리임을 아시고
이시대의 재림 그리스도이신 안상홍님을 영접하시어 구원 받으시길 바랍니다.


2014년 11월 6일 목요일

유월절을 가져오신 안상홍님[하나님의교회]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를 가지고 오신 안상홍님
[하나님의교회]


하나님의 교회는 안상홍님을 믿습니다.
하나님의교회가 안상홍님을 믿는 이유는 성경에 증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오래저장하였던 포도주를 가지고 오셔서
사망을 멸하는 연회를 베풀어 주시며 우리를 구원하실것이라 하셨습니다.


이사야 25장 6-9절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 산에서 만민을 위하여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로 연회를 베푸시리니
곧 골수가 가득한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맑은 포도주로 하실 것이며
또 이 산에서 모든 민족의 그 가리워진 면박과 열방의 그 덮인 휘장을 제하시며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그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 날에 말하기를 이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그가 우리를 구원하시리로다.
이는 여호와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우리는 그 구원을 기뻐하며 즐거워하리라 할 것이며...

하나님의교회에서 믿는 안상홍님은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처럼
사망을 멸하는 포도주를 가지고 오셔서 축복을 베풀어 주신 하나님이십니다.


오래저장하였던 포도주를 가지고 오신 하나님의교회 안상홍님 
영접하셔서 영생의 축복 받으세요.
더 많은 궁금증은 차차 포스팅할께요.




2014년 11월 5일 수요일

하나님의교회 침례는 즉시 받아야한다?!

하나님의교회는 학습세례가 아닌 하나님을 깨달은 즉시
구원의 약속이 담긴 침례를 줍니다.

침례(세례)란?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한 신앙의 첫걸음입니다.




잠언 27장1절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일이 날는지 네가 알수 없음이니라


한치 앞도 내다 볼수 없는 것이 바로 인생입니다.
요즘 들어 많은 사건 사고들이 끊이질 않고 있는데 만일 내게 일어날 일들을 안다면
피할수 있겟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인생은 앞의 미래를 내다 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 위해 허락해 주신 
구원의 증표가 바로 침례(세례)입니다.

 그런데 일반 교회에서는 이 중요한 침례를 6개월이나 1년정도의 학습을 
마치고 나서 주게 됩니다.

일명 학습세례..
한 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인류인생들에게 생명을 구하는 것은 긴급을 요하는 일인데
6개월이나 1년이라는 시간을 낭비한다니 옳은 내용일까요?


먼저 예수님의 가르침을 보시면

마태복음 28장 19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예수님께서는 먼저 침례를 주고 그리고 나서 가르치고 지키게 하라 고 명하셨습니다.
가르치고 침례를 주는것과 침례를 주고 가르쳐 지키게 하는것
어떻게 보면 별 차이 없어 보이지만
우리 생명을 위해 침례를 먼저 허락하신 것입니다.


만일 침례를 받기전에 목숨을 잃으면 누가 우리의 생명의 책임을 질 수 있을까요?

그렇기에 침례는 즉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럼 침례는 왜 받아야 하는가?

로마서 6장 3절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침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을 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 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침례는 하나님 안에서 우리를 새 생명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결국 침례를 받지 않으면 새 생명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이죠.

베드로전서 3장 21절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찾길 바라는 사람들은 반드시 침례를 먼저 받아야 합니다.
구원의 표로 삼아주신 침례!



새 신자 가이드 라는 책자에 보시면
학습세례는 한국교회에서만 행해지는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침례란 하나님을 깨달은 즉시 받아야 합니다.
아래의 ucc 를 보시면 이해가 빠르실겁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해지는 올바른 침례는 하나님의교회에서 행해지고 있으니
하나님을 찾는 영혼이라면 안상홍님과 어머니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구원의 표 침례를 꼭히 받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생명은 소중하니까요^^"



2014년 11월 4일 화요일

침례요한의 실족[패스티브&하나님의교회]

침례요한의 실족



침례 요한은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예수님께 침례를 베풀며 예수님을 가리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 증거했던 사람이었습니다.(요한복음 1:29~30)

그런 침례 요한이 예수님에 대해 의문을 품은 적이 있습니다.


요한이 옥에서 그리스도의 하신 일을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마태복음11:2)


요한의 질문에서 '오실 그이'란 성경의 예언에 따라 오실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쉽게 말하면 '성경에 오신다고 예언된 그분이 당신이 맞습니까? 아니면 우리가 다른 분을 찾아야 합니까?'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이 성경에 예언된 그리스도가 아닐 수도 있다는 시험에 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요한은 왜 이런 시험에 들었을까요?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예수의 하신 일을 듣고’라고 했습니다.
 즉 요한은 예수님이 행하신 ‘어떤 일’로 인해 시험에 들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뭔가 잘못된 일을 하신 걸까요? 당연히 아닙니다. 
완전무결하신 하나님께서 그러실 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요한은 스스로의 생각에 갇혀 ‘저런 일을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 맞을까?’
라는 의심을 했던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서도 가끔 요한과 같은 어리석음을 범하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하나님이 왜 이렇게 해주시지 않나요?”,
 “하나님이 왜 저런 식으로 하실까요?”라는 질문이나 항의를 하는 사람을 봅니다.
 하지만 돌려 생각해보면,
 “하나님이 왜 그렇게 하셔야만 합니까?” 하는 반문이 저절로 나옵니다. 
사람들은 왜 내 예상이나 기대대로 일하셔야만 하나님으로 인정해주고,
 내 생각에 어긋나는 일을 하면 ‘하나님이 아니신 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는 것일까요?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이사야 55:8)


하나님의 길과 생각은 인간의 그것과는 다르다고, 그 차이가 적지 않음을 분명 말씀하셨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종종 내 생각이 옳다는 오류를 벗어나지 못해 하나님의 길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 시험에 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족속은 이르기를 주의 길이 공평치 않다 하는도다 이스라엘 족속아 나의 길이 어찌 공평치 아니하냐 너희 길이 공평치 않은 것이 아니냐 (에스겔 18:29)


우리는 내 마음에 드는 하나님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참 하나님의 찾아 그 길을 순종으로 따라야 하는 죄인들입니다.
 하나님을 내 뜻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뜻에 맞춰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큰 죄를 지은 죄인들입니다. 하나님의 한낱 피조물에 불과합니다. 그런데도 내 생각을 버리지 않고 내 생각이 옳다고 동조해주는 곳을 선택한다면 결국 멸망의 길을 가게 될 것입니다. 내 생각을 버려야만 실족하지 않고 시험에 들지 않습니다. 나를 버려야만 하나님의 모든 말씀에 순종할 수 있습니다.


사단은 창세 때부터 지금까지 인간의 상식과 인간의 기준으로 하나님을 판단하라고 미혹해 왔습니다. 하나님이 금하신 일을 사단은 괜찮다고 권합니다. 하나님이 명하신 일을 사단은 하지 말라고 미혹합니다. 우리가 믿고 있는 분이 하나님이신지 아닌지, 그분이 가르쳐주신 말씀들이 하나님의 말씀인지 아닌지는 인간의 상식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닌 오직 성경을 기준으로만 판단해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고린도전서 2:12~13)


오직 성경만을 가지고 말씀을 상고하셔서 예언 따라 오신 성령과 신부를 영접하시고 영원한 생명수를 허락받아 꼭 천국에 입성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출처 패스티브


우리는 사망에 해당하는 중죄를 지은 죄인의 입장입니다.
내 뜻에 하나님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뜻에 맞춰야 합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성경을 기준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바르게 알고 행한다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올바른 믿음을 갖추어 영원한 천국과 구원을 얻게 될 것입니다.



2014년 11월 3일 월요일

사람은 결핍존재[하나님의교회@패스티브]

사람은 결핍존재



몇 년 전, 유엔의 연구팀에서는 과학저널 플로스 바이올로지(PLoS Biology)를 통해 “지구상에 870만종의 생물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했다. 전 세계의 동•식물학자들은 250년 전부터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체를 분류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데, 현재 분류가 완료된 종의 수는 약 120만종이라고 한다.
대략 80~90%는 미발견 상태인 것이다.
다른 과학자들은 750만~1000만종을 예상하고 있으며, 일부는 300만~1억종이 있을 것이라는 가설을 내놓았다.
 실제 해마다 6,000~10,000종의 새로운 종이 발견되고 있으니, 나머지를 분류하는 데는 천년이 넘게 걸린다는 계산이 나온다.



괴테의 스승이었던 독일의 철학자 요한 고트프리트 폰 헤르더(Johann Gottfried von Herder)와 역시 독일의 학자인 아르놀트 겔렌(Arnold Gehlen)은 “동물은 신체기관이 생존에 적합한 상태로 발달했지만, 인간은 매우 부족하고 불완전한 상태로 태어나고 살아가는 존재”라며 인간을 ‘결핍존재’라고 정의했다.


흔히들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부른다. 
영장(靈長)은 ‘영묘한 힘을 가진 우두머리’라는 뜻으로, 
종의 분류에서 인간은 그야말로 지존이다. 
그런데 왜 헤르더와 겔렌은 인간을 ‘결핍존재’라고 했을까.? 
동물들의 놀라운 생존능력을 알고 나면 그들의 말에 백분 수긍이 갈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사람들은 서태평양의 엔게비섬에서 핵실험을 했다.  원자폭탄 14발과 수소폭탄 1발의 강력한 방사선은 그 섬에 살고 있던 동물과 식물, 인근 바닷속 물고기에게 대재앙을 가져왔다. 생명체가 전멸한 것이다. 그로부터 4년 후, 사람들이 방사선 차단복으로 무장한 채 그 섬을 다시 찾았다. 섬은 여전히 황폐했고 생명체를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데 굴속에 들어갔을 때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그곳에서 쥐들이 발견된 것이다. 굴속의 쥐들은 핵실험 전보다 더 놀라운 생존력과 번식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쥐는 자기 몸의 4분의 1밖에 안 되는 구멍을 어렵지 않게 빠져나갈 수 있다. 두개골만 들어가면 통과가 가능하고 이마저도 어려우면 이빨로 구멍을 내고 들어가는 일도 문제없이 해낸다. 스파이더맨처럼 수직으로 벽을 기어오를 수도 있다. 어디 이뿐인가. 놀랍게도 쥐는 수영장 티켓을 끊어본 적이 없는데도 급류가 흐르는 물길을 2km나 헤엄쳐 이동할 수 있다. 담력도 어찌나 좋은지 자그마치 15미터 높이에서 뛰어내릴 수 있다. 번식력도 대단하다. 한 쌍의 쥐는 1년에 천 마리가 넘는 새끼를 낳을 수 있다. 생후 2개월이면 임신이 가능하고 20일 만에 출산한다.

딱따구리는 나무에 수직으로 매달려 나무껍질이나 줄기 속에서 먹이를 찾아 먹고 사는데, 나무 쪼기에 특별한 재주를 갖고 있다. 딱딱딱딱 소리를 내며 긴 부리로 1초에 6~7m 속도로 10~20회가량 나무를 쫀다. 이는 기관총의 거의 두 배 속도다. 나무 쪼는 일은 하루 10,000번이 넘는다. 특히, 나무를 쫄 때의 충격은 중력가속도의 1,000배라고 한다. 중력가속도는 물체가 중력에 의해 지표면에 떨어지는 속도로, 표준치는 9.8m/s2이다. 물체가 초당 9.8m씩 가속도가 붙어 떨어진다는 것인데, 그의 1,000배라면 머리가 산산조각이 날 수밖에 없는 엄청난 충격이다. 그런데도 딱따구리는 끄떡없다. 터미네이터나 트랜스포머를 능가하는 강력한 두개골, 부리와 머리의 완벽한 구조 덕분이다. 그야말로 살아 있는 전기드릴이라 할 수 있다.

오리너구리는 먹이를 찾기 위해 부리를 사용하는데, 부리가 안테나 역할을 하여 먹이의 몸에서 나오는 희미한 전기장을 탐지하는 능력이 있다. ‘살아 있는 헬리콥터’라고 불리는 벌새는 1초에 55~75회의 날갯짓을 한다.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는 듯하면서 꽃 속에 부리를 깊이 집어넣어 꿀을 빤 다음, 살며시 후진하면서 꽃에서 떨어진다. 전후, 좌우 자유자재로 비행이 가능한데, 벌새의 비행능력을 능가하는 새는 없다고 한다. 쏙독새 집이 필요 없다. 그냥 맨땅에 알을 낳는다.

수심이 깊은 심해는 언제나 한밤중이다. 대개 태양빛은 바닷속 150m까지는 희미하게나마 투과되는데 200m 아래의 바닷속은 그야말로 암흑천지다. 그래서 식물은 도저히 살 수 있는 곳이 못 된다. 수온은 빙점을 겨우 넘고 수압은 매우 높다. 추운 데다가 사방에서 물이 옥죄어오는 그곳에도 수많은 생명체들이 살고 있다. 대개는 200m~1,000m의 심해층에서 사는데, 10,000미터가 넘는 극심해층에 사는 어종들도 있다고 한다. 암흑 속에 살고 있는 심해어들의 필살기는 자체 발광이다. 비늘, 지느러미 등의 기관에서 나오는 빛으로 짝이나 먹이를 유인한다. 해저 밑바닥에 가라앉은 먹이를 먹을 때는 자체 여과 능력이 있어 조심스럽게 먹지 않아도 된다. 사람은 바닷속에 들어갈 경우, 반드시 갖가지 특수장비를 착용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맨몸으로 들어갈 경우, 물의 압력 때문에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 스쿠버다이버들의 안전 수심 한계는 30~40m라고 한다. 이마저도 전문가들에게 고도의 훈련을 받아야 가능하며 잠수병을 염려해야 한다.

사람은 수영을 배우지 않으면 헤엄을 칠 수도 없다. 만약 수영을 전문적으로 배워서 국가대표급 선수가 되면 짧은 시간 시속 6km 정도로 헤엄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바다생물들을 추월할 생각은 처음부터 접어야 한다. 바다생물들은 장거리 수영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훨씬 빠른 속도로 헤엄치는 능력을 타고났기 때문이다. 돛새치는 시속 109km로 헤엄치며, 거구의 몸집을 자랑하는 하마도 시속 40km의 속도로 수영을 한다. 하다 못해 펭귄은 어류가 아닌 조류이면서도 시속 35km 속도로 바닷속을 유영한다. 참고로, 우리나라 박태환 선수의 수영 속도를 시속으로 계산하면 6.5km라고 한다.

동면에 들어간 곰은 7개월을 안 먹어도 살 수 있다. 물론, 동면에 들어가기 전 많은 양의 음식을 먹어 지방을 축적하는데, 이때 콜레스테롤을 자가 처리하는 능력이 있다. 만약 사람이 이럴 경우에는 분명 동맥경화나 고혈압 등 각종 성인병에 걸려 위험해질 것이다.

벼룩은 뛰기의 대가다. 보통 15cm의 높이로 60cm 거리를 뛰는데, 이는 자기 몸의 350배를 점프하는 셈이다. 사람이 벼룩만큼의 실력을 보유한다면 건물 70층 높이로 4000미터를 뛸 수 있을 것이다. 쇠똥구리는 끌기의 대가다. 자기 몸의 800배나 무거운 물체를 끌 수 있다. 사람이 이 정도면 5~6t 자동차를 맨손으로 끄는 슈퍼맨이 되는 것이다.

시력 하면 맹금류와 올빼미를 따라갈 자가 없다. 맹금류는 사람보다 4~8배의 시력을 가지고 있어 1.6km 상공에서 땅에 있는 먹잇감을 발견한다. 올빼미는 밤의 사냥꾼인데, 희미한 빛으로도 먹이를 찾을 수 있고, 청력도 뛰어나 25m쯤 떨어진 곳에 쥐가 있다는 것을 알아챈다고 한다.

청력은 개와 고양이가 최고다. 사람의 가청 한계는 청력이 정상인 성인의 경우 63Hz~23,000Hz다. 개는 45Hz~45,000Hz, 고양이는 45Hz~64,000Hz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한다. 청력은 이 정도 차이지만 후각에 있어서는 도저히 개와 고양이를 이기지 못한다. 이들의 후각은 사람보다 백만 배 뛰어나다고 한다.

치타는 포유류 중 단거리달리기 챔피언이다. 사람 중에서 단거리 세계신기록 보유자인 우사인 볼트와 100m 달리기를 겨루었을 때, 치타는 볼트를 가뿐하게 이길 수 있다. 볼트의 최고 기록이 9.58초로 시속 37km인 반면, 치타는 시속 110km의 빠른 속도로 달리기 때문에 3초면 주파가 가능하다.

성장 속도에서도 사람은 동식물을 따라가지 못한다. 대개의 동물은 태어나자마자 걷기가 가능하고 얼마 안 되어 자생능력을 갖춘다. 사람은 태어난 지 6개월 정도가 지나야 겨우 제 몸을 뒤집을 수 있다. 그리고 꼬박 1년이 지나야 어렵사리 걸음마를 배워 인간의 유일한 장점인 직립보행이 가능하다. 그러고도 자그마치 10년간은 부모의 세심한 손길이 없으면 살아가기 힘들다. 식물은 혼자 세상을 살아야 하고 움직이지 못하는 대신 놀라운 속도로 성장한다. 하루에 15cm 이상 자라는 잔디도 있고, 어떤 대나무는 하루도 지나지 않아 70cm를 훌쩍 넘을 만큼 초고속성장을 하기도 한다.

헤르더와 겔렌의 말대로 사람은 결함이 많은 존재가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자신이 사람인 것이 감사하고 다행스러울 것이다. 사람의 장점, 사람으로서 좋은 점이 무엇인가. 단연,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축복과 권위에 가까운 권리일 것이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1:26~28)

무능하고 연약한 사람이 엄청난 능력을 가진 
동물들을 정복하고 다스릴 수 있는 건 하나님의 축복이 틀림없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더욱 의지할 수밖에 없고 의지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우리들의 무능함이요 연약함 때문일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했던 
바울의 말이 이제야 고개가 끄덕여진다(고린도후서 11:30).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으로 살아가는 우리 사람은 과연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일까. 
이스라엘 역사상 최고의 권위와 부와 명예를 누렸던 솔로몬의 말이 큰 무게로 와닿는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전도서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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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들의 생존능력은 정말 상상을 초월합니다. 우리나라 최고의 수영선수라 할수 있는 박태환선수가 시속 6.5km달리는데 사실 펭귄(35km),하마(40km) 보다 느린거였네요. 
무능하고 연약한 사람이 엄청난 능력을 다진 동물들을 다스릴수 있는건 정말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이렇게 나약하고 무능한 존재에게 하나님의 형상을 그대로 본따 창조하여 주시고 사람의 본분을 행하게 하신 엘로힘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2014년 11월 2일 일요일

손님,커피 나오셨습니다.

손님,커피 나오셨습니다.??%$


'주문하신 커피 나오셨습니다'.'사이즈가 없으십니다'.'포장이세요?'.'이 상품은 품절이시네요'. 
이 문장들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다. 음식점 또는 옷 가게에서 점원들이 손님을 응대할 때 주로 사용하는 이 표현들은 사실 우리의 잘못된 언어습관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하지만 이를 잘못된 것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은 드물다.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말들이기 때문이다. 친절한 어투로 '커피 나오셨습니다' 라고 외치는 카페의 점원. 얼핏 듣기엔 한없이 친절하고 손님을 존중하는 격식 있는 말처럼 들리지만 , 이 표현에슨 커다란 문법적 오류가 있다. 바로 손님이 아닌 '사물'을 존대하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국립국어원 '표준 언어 예절'에 따르면 ‘커피 나오셨습니다’, '사이즈가 없으세요', '포장이세요?', '품절이십니다' 등은 사물을 존대하는 잘못된 표현이다. 한국어는 그 문법적 특성상 사람과 밀접하게 관련된 심리, 또는 신체 등을 존대하는 것은 허용하지만, 앞서 말한 단어들은 고객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개념이 아니므로 높임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따라서 ’커피 나왔습니다‘, ’사이즈가 없습니다', '포장해 드릴까요?', '품절입니다'가 올바른 표현이다. 고객에게 무조건 친절히 대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이 불필요한 존칭까지 사용하게 만든 것이다.

이러한 언어현상을 바라보며, 필자는 오늘날의 수많은 교회들이 범하고 있는 한 가지 오류를 떠올렸다. 높여야 할 대상이 아닌 엉뚱한 대상을 아무 거리낌 없이 존대하는 언중들처럼, 교회 안에서도 하나님이 아닌 다른 대상을 높이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크리스마스’와 ‘십자가’다.

오늘날 교회에서 예수님의 탄생일로 지키고 있는 크리스마스의 기원은 사실은 태양신 미트라의 축일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교회에서 숭배하고 있는 십자가는 고대 바벨론의 ‘담무스’신 숭배사상에서 기인한 것이다.

가톨릭의 마리아상 숭배, 성인 숭배, 유물 숭배사상 등도 마찬가지다. 모두 하나님을 경배한다는 그럴듯한 목적을 내걸고 있지만, 그 속에는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다. ‘손님’이 아닌 ‘커피’를 높이는 엉터리 표현처럼,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을 높이고, 하나님을 철저히 우상보다 못한 객체로 전락시키고 있을 뿐이다.

일부 유통업계에서는 사물을 존대하는 엉터리 표현을 정정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언중들에게 한 번 뿌리 내린 언어 습관이 쉽게 고쳐지지는 않을 듯하다. 여전히 카페에서는 커피가, 옷 가게에서는 사이즈가 존대받고 있는 것이 우리의 슬픈 현실이다. 무엇보다 슬픈 현실은 교회에서 하나님이 존대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가 또 나를 데리고 여호와의 전으로 들어가는 북문에 이르시기로 보니 거기 여인들이 앉아 담무스를 위하여 애곡하더라 … 너는 또 이보다 더 큰 가증한 일을 보리라 … 그가 또 나를 데리고 여호와의 전 안뜰에 들어가시기로 보니 여호와의 전 문 앞 현관과 제단 사이에서 약 이십오 인이 여호와의 전을 등지고 낯을 동으로 향하여 동방 태양에 경배하더라 … 그러므로 나도 분노로 갚아 아껴보지 아니하고 긍휼을 베풀지도 아니하리니 그들이 큰 소리로 내 귀에 부르짖을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에스겔 8: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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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존대하여 표현하는 오류처럼 하나님께서도 교회안에서나 밖에서나 우상보다 사람보다 못한 객체로 전락시키고 있음이 안타깝네요.
교회에 하나님이 안계시는...불편한 진실....이런 십자가! 부서질 우상들!!

https://www.pasteve.com/?m=bbs&bid=B2BibleCovenant&uid=2850


안상홍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하나님의교회


지금 이 시대에 모든 교회가 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안상홍님의 이름으로 기도를 합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의 교회에서는 안상홍님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있을까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지 않는것은 잘못된 것이다 라면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으나 어리석은 생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주장이 얼마나 어리석은 주장인지 성경을 통해 알려드리겠습니다.


만일 우리가 안상홍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이 잘못되었다면
2천년 전 사도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2천년전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당시 모든 유대인들은 오랫동안 누구의 이름으로 기도해오고 있었을까요?


시116:4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유대교 안에도 여러 교파가 있었고 세상 각지에 수많은 유대교 신자들이 있었지만
그들 모두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습니다.

그런데 유독 초대교회 성도들은 여호와가 아닌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사도들이 잘못한 것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세 시대가 있고 각 시대마다 구원자의 이름을 달리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28:18~19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의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침례)를 주고




그렇다면 왜 사도들은 여호와가 아닌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했겠습니까?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구원자로 오셨기 때문입니다.

즉, 성부시대에서 성자시대로 바뀐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이름으로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6:24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이때부터는 더 이상 여호와의 이름으로는 기도의 응답을 받을 수 없습니다.
당시는 성자시대였으므로 오직 예수님의 이름으로만 
기도의 응답을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재림 예수님이신 안상홍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다시 말해,
성자시대에서 성령시대로 바뀐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성령시대 구원자의 이름이신 "안상홍님"의 이름으로 기도해야만이 기도의 
응답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교회는 안상홍님의 이름으로 기도를 합니다.

예수님의 새이름이신 안상홍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여
기도의 응답을 받을수 있습니다.

이외에  수많은 궁금증은 차차 풀어나가도록 해요.^^




하나님의교회는 즉시 침례를 준다?!

하나님의교회에서는 복음을 듣고 깨달은 즉시 침례를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침례의 의미와 가치를 알지 못하는 다른 교회에서는 침례를 일정기간의 학습을 통해서 주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하나님의 가르침일까요?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침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벧전  3:21)

침례(세례) 는 구원의 표입니다.
따라서 아무리 오랫동안 하나님을 믿었다고 하더라도 침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이처럼 중요한 침례, 도대체 언제 받아야 할까요?
3개월  또는 6개월 동안 성경 학습을 한 후 받아야 할까요?
아니면 하나님을 깨달은 즉시 받아야 할까요?
선지자의 사례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살펴볼까요.


사례1

에디오피아 여왕의 재정을 관리하는 내시가 이사야서를 읽고 있었다.
그때 빌립이 성령의 이끌림에 따라 마차에 다가가
 “읽는 것이 이해가 됩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내시가 “설명해주는 사람이 없으니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라며 
빌립에게 마차에 오르길 권했다.
마차에 오른 빌립은 그에게 이사야서부터 시작하여 예수님에 관한 복음을 전했다.
진리를 깨달은 내시는 물 있는 곳에 이르렀을 때
 “여기 물이 있는데 나도 침례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그리고 빌립과 내시는 물가로 내려가 침례식을 행했다.

 진리를 깨달은 그 즉시 침례 시행 (행 8:27~38).



사례. 2

바울과 실라가 복음을 전하다 옥에 갇혔다.
그 밤중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 옥문이 열렸다.
간수가 자다가 깨 옥문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가 도망한 줄 생각하고 
자살하려 하자 바울이 이를 말렸다.
간수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려 
“내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받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이에 바울과 실라가 “주 예수를 믿으십시오, 
그러면 당신과 온 집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라고 답했다.
그날 밤 간수가 바울과 실라를 그의 집으로 데려가 매맞은 상처를 씻어주고 
온 집안 식구와 함께 즉시 침례를 받았다

밤에 온가족이 즉시 침례 받음
(행 16:25~33)


위의 두 사례를 통해 복음을 깨달은 ‘즉시’ 침례를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만큼 침례가 중대하고 긴급한 의식이기 때문입니다.
성경 어디에도 3개월이나 6개월 동안 학습한 후 침례를 받으라는 말씀은 없습니다.


암에 걸린 사람의 수술을 6개월이나 1년 후로 미루어도 되겠습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죄로 인해 죽을 수 밖에 없는 인생들에게 있어서 죄 사함의 예식인
침례는 미룰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도들의 행적을 통하여 보면 6개월이나 1년동안 공부하라고 하지 않고
즉시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의교회가 침례를 먼저 준다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교회에서 전하는 복음의 뜻을 제대로 모르고 하는 주장일 뿐입니다.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지 못하는 우리 인생이기 때문에
 하나님의교회에서는 성경의 가르침대로 
 복음을 깨달은 즉시 침례를 받아 구원을 받으라고 하신 것입니다(잠 27:1).

아래의 ucc는 좀더 이해를 도울수 있을거 같아 함께 올립니다.
짧은 영상이니 꼭 참고 하세요~




이제까지 사람들의 잘못된 오~~랜 습관과 고정관념이 
'즉시 침례'받는 것을 잘못된 것인양 생각하실수도 있지만
사도들도 즉시침례로  가르침을 주었고
가장 성경적임을 아셨을겁니다.
이제부터는 '즉시 침례'가 성경적인 것을 알았으니 
그대로 행하시면 될것같습니다.



PS. 오늘날 일반적으로 교회에서 사용하고 있는
"세례(물을 찍어 세번 뿌리거나 바르는 기독교에서 행해지는 예식)"라는 말은
"침례(물에 몸이 잠기는 기독교에서 행해지는 예식)"라고 하는 것이 맞습니다.

예수님께서 요단강에서 받으신 죄사함의 크나큰 축복과
구원의 의미가 담겨진 예식인 "침례"라는 중요한 예식에서
배도자들의 기준으로써 정해진 "세례"라는 말로써 바뀌게 된것입니다.

위의 내용이 사실임을
"이건사"가 발행한 "교회사"라는 책자의 99페이지 "고대 기독교회사"의
최상단 부분을 보시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세례식>
세례를 베푸는 방법은 일반으로 침례하는 것이 원식이나
침례대신으로 세번 물을 붓는 일이 전기에도 약간 있은 것이고
120년경에는 완전한 세례식으로 여기게 되었다.

분명 "세례"라는 말을 사용하기 이전에 "침례"하는 것이 원식 이었음을
말하고 있으며 이후인 120년 경에 가서 바뀌어졌음을 확인 할수 있습니다. 
원래 침례라고 하는 것이 맞습니다.^^






노인과 지팡이[하나님의교회**패스티브]

노인과 지팡이


한노인이 갈림길에 서서 지팡이를 하늘을 향해 던지고 있었다. 그 일은 계속해서 반복되었다. 지나가던 사람이 이를 보고 노인에게 물었다.
"할머니.지금 뭘 하시는 겁니까? 왜 자꾸 지팡이를 하늘로 던지시는 거예요?"
그러자 노인은 대답했다.
"아 ,글쎄 어느길로 가야 할지 지팡이를 던져서 정하려는데 수십번을 던져도 지팡이가 자꾸 왼쪽으로만 향하지 않겠나. 나는 오른쪽으로 가고 싶은데 지팡이가 계속 왼쪽으로 향해서 오른쪽으로 나올때까지 던지고 있다네."


오른쪽 길로 가고 싶다면 차라리 지팡이를 던지지 말고 그냥 오른쪽 길로 가면 될 것을, 자기 생각에 맞추려고 고집스럽게 지팡이를 던지는 노인의 모습은 마치 오늘날 기성교회 교인들을 보는 것 같다. 하나님의 뜻을 자기 생각에 맞추려 성경의 말씀 중에 마음에 드는 부분만 순종하고, 그렇지 않은 부분은 철저히 무시하며 자신의 생각대로 고집스럽게 신앙생활을 하는 교인들의 모습이 노인과 별반 다르지 않다.

순종은 듣고 싶은 말씀만 듣는 것이 아니다. 비록 자신의 생각과는 달라도 성경에 나와 있다면 자신의 고집을 접고 따라가는 것이 순종이다. 수천 년 동안 일요일에 예배를 드려왔다 하더라도 성경의 안식일이 토요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자신의 생각을 접고 토요일 안식일에 예배를 드려야 하는 것이 순종이다. 12월 25일을 예수님의 탄생일로 수백 년간 지켜왔다 해도 그것이 성경에 없다면 과감히 버려야 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순종이다.

과거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던 사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므로 어떤 결과를 맞이했는가. 하나님께서는 사울에게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아무것도 남기지 말고 진멸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사울은 자신의 생각에 좋아 보이는 전리품들을 취하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그랬으면서 그는 그것을 하나님께 제사드리기 위한 것이었노라고, 가장 좋은 것만 취해왔노라고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기까지 했다(사무엘상 15:1~21). 그런 그에게 하나님의 선지자 사무엘은 이렇게 책망했다.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사무엘상 15:22~23)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그 명령에 절대적으로 순종해야 한다. 내 생각과 내 상식에 아무리 좋아 보이고 옳게 보이는 것일지라도 그것이 성경에 없다면 과감히 버려야 하는 것이다. 일요일예배와 크리스마스는 성경에 없다. 하나님의 명령이 아닌 사람의 계명인 것이다.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사도행전 5:29)

너는 돌아와 다시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한 그 모든 명령을 행할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여 이 율법책에 기록된 그 명령과 규례를 지키고 네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 여호와 네 하나님께 돌아오면 … 네게 복을 주시되 곧 여호와께서 네 열조를 기뻐하신 것과 같이 너를 다시 기뻐하사 네게 복을 주시리라 (신명기 30:8~10)

진실로 하나님을 믿는다면 이제라도 사람의 계명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할 것이다. 지팡이가 오른쪽으로 향할 때까지 계속해서 던지는 노인처럼 고집을 버리지 않는다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명약관화한 일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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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고정관념과 편견과 사람의 상식을 버리고. 올바르게 하나님 말씀인 성경의 
가르침을 실천해야 하기에 하나님의 교회의 가르침은 매우 중요합니다.
사람의 계명이 아닌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하나님의 교회로 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