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15일 월요일

*위가 두 개인 개미*

위가 두개인 개미


하루는 신문에서  '지구상에 살고 있는 개미들의 총 무게는 얼마나 될까?'
하는 제목으로 개미의 생태계가 실린 흥미로운 기사를 읽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과연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 해답은 놀랍게도 지구상에 살고 있는 전인류의 총 무게와 같다고 합니다. 


가히 상상치 못했던 수치의 기사를 읽으며 저는 참으로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대체 어떠한 특성과 요소가 있기에 
그와 같이 무리를 이루는 번식력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는 사람을 통하여 인터넷으로 개미에 관해 알아보았습니다. 
개미가 엄청난 무게의 수치로 기록될 수 있는 것은 독일의 생태학자들이 실험 연구한
 사실을 토대로 한 것인데 브라질 열대 밀림 속에서 사는 모든 동물들을 
거대한 저울에 올려 무게를 달아본다는 가정하에 연구해 본 결과 
흰개미를 포함한 전체 개미가 밀림 전체 동물의 중량 중 약30%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이는 개미의 부지런한 근면성이 있는 것도 요인이지만 가장
 큰 요인은 개미는 작지만 사회성이 발달한데다 수가 워낙 많기 때문이기도 하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저의 관심을 끈 개미의 기사는 
개미에게는 위(胃) 가 두 개나 있다는 점입니다.

 각 생물마다 소화 기관과 먹이를 저 는 방식은 다르지만 
개미의 경우 심장과 모이 주머니, 전위, 중장과 직장,그리고 항문과 기타 기문,
말피기씨관,두푸르샘,독샘, 저장낭이 있는데 
그 외에도 먹이를 임시 저장하기 위한 가짜위가 있다나요?


그 가짜 위를 영어로 크라프(Crop : 거둬들인 수확을 의미함) 또는 크러프라고 하는데 
이 두 개의 위(胃) 중에서 하나는 자신을 위한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평소에 모아온 꿀과 양식을 저장하였다가 배고픈 동료들에게 
입을 통하여 양식을 나눠주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배가 고픈 개미가 동료의 머리를 툭툭 건드리게 되면 위에 저장해 농은 양식을 
되새김질하듯 내어 먹여주는 이 생존을 위한 생태계의 신비는 
실로 저의 마음에 크나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우리들도 믿음생활을 할 때나 혼자만 가는 천국이 아니기에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서로 사랑하고 위하며 나눠줄 줄 아는 그런 믿음의 
소유자들이 되어야겠습니다. 
생명의 양식을 자신을 위해서만 쌓지 말고 시온의 가족 된 내 형제자매를 위해서도 
저장하고 준비해야 함을 말입니다. 
나 자신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잘 깨닫고 이해하여 함께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며 하늘나라 갈 수 있도록 손잡아 주는 것!
이것이 우리의 할 일이 아닐까요?


이천 년 전 이 땅에 오신 우리 하나님께서 부탁하신 '내 양을 먹이라’ 는 음성을 기억하며
 영의 양식이 결핍되어 시들하게 죽어 가는 영혼들이 없는지 살펴봅시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 한마음이 되어 진정한 사랑의 꽃을 피우는 
시온의 향기들이 다 되어야겠습니다.



[하나님의 교회 구 소식지 '십사만사천지 23호]



이교주의의 혼합물=크리스마스(성탄절)

이교주의의 혼합물=크리스마스(성탄절)



크리스마스(Christmas)는 그리스도(Christ)와 미사(Mass)의 합성어다. 
흔히 그리스도의 뜻을 기리기 위한 의식으로 알려져 있지만, 
정작 이때 행해지는 의식은 예수님의 
생애나 가르침에서 그 근거를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이교도에서 유입된 잡다한 의식의 혼합물이라 할 수 있다.


영국의 인류학자 제임스 프레이저는 그의 저서에서 
“전 로마와 그리스에서 12월 25일을 공휴일로서 
축하하는 최대의 이교 예배는 이교 태양신 예배인 미트라 종교였다. 

이 동계 축제를 탄생 즉, 태양의 탄생이라고 불렀다”고 밝혔다.


결국 태양신의 탄생일이 기독교 내로 유입되면서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둔갑했다는 말이다.
이 때문에 크리스마스 때 카톨릭에서 행해지는 수많은 의식들이 태양신교의 의식과 닮아
 있을 수 밖에 없다. 태양신교의 의식 중 12월이 되면 3대 축제가 열렸는데, 
기독교가 그 풍습 또한 그대로 들여왔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 때 선물을 주고 받는 풍습은, 3대 축제 중 하나인 시길라리아(Sigillalia) 제일에 
어린아이에게 인형과 같은 선물을 나눠주는 풍습을 계승한 것이다. 
며칠 동안 환락을 즐기는 것도 사투르날리아(Saturnalia) 제일의 모습 그대로다.





태양신교의 사상은 크리스마스 트리와도 연관이 있다.
고대 바벨론 전설에 따르면 한 상록수가 죽은 나무 그루터기에서 솟아났다고 한다.
사람들은 새로 솟아난 상록수가 죽은 태양신 니므롯이 그의 아들 담무스 안에서
회생한 것을 상징한다고 믿었다.

이 외에도 이집트, 로마 등 여러 국가에서 사철 푸른 나무,
일명 거룩한 나무에 대한 샤머니즘적인 숭배사상이 있었다.

스칸디나비아에서는 새해가 되면 악마를 물리치기 위하여 집과 주변을 상록수로 꾸며왔던
 주술적인 신앙의 형대가 있었다. 이집트에서는 종려나무를 신성시했으며,
로마에서는 전나무를 거룩하게 구별하고 농신제 기간 동안 태양을 상징하는 붉은 열매를
장식하며 태양신을 숭배하는 신앙적 행위로 기념해 왔다.
크리스마스 트리는 이러한 나무에 대한 사상를 재현한 것이다.



'Festivals, holy days and saints’ days'는 “
크리스마스 나무의 도금한 견과나 볼들은 태양을 상징하며 … 
동지절의 모든 축제는 크리스마스에 흡수되었고 … 
크리스마스 나무는 오딘(Odin, 스칸디나비아의 신)의 
거룩한 전나무에 바친 영예에서 온 것”이라고 기록했다.




어린이들에게 친숙한 산타클로스 역시, 하나님과는 상관이 없다

270년경 소아시아 지방(지금의 터키)의 항구도시 파타라에서 
태어난 성 니콜라스(St. Nicholas)가 산타클로스의 효시다. 
니콜라스는 남몰래 많은 선행을 베푸는 사람이었다. 
어느 날 그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결혼을 하지 못하는 세 자매의 사연을 듣고 그들을 돕기로 결심했다. 
그는 아무도 모르게 금 주머니를 굴뚝으로 떨어뜨렸고 금덩이는 벽에 걸어둔 양말 속으로 들어갔다. 
그의 도움으로 세 자매는 결혼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가 죽은 후 그의 이야기는 유럽으로 전해졌다.
12세기 초 프랑스의 수녀들이 니콜라스의 축일(12월 6일)의 하루 전날인 5일에
 성 니콜라스의 선행을 기념했고 이후 전 지역으로 이러한 풍습이 퍼져나갔다.



그러나 당시 이들이 기념했던 니콜라스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산타클로스의 모습과는 다르다. 
현재의 산타클로스는 영리 목적으로 조작된 것이며, 물론 그리스도와는 관계가 없다.
 “오늘날처럼 산타클로스가 순록이 끄는 썰매를 타고 다니는 모습으로 일반 사람들 앞에 등장한 것은
 1822년 성탄절 이브로, 뉴욕의 신학자 클레멘트 무어가 쓴 ‘성 니콜라스의 방문’이라는 
시가 효시였으며, 본래 날렵하고 키가 큰 모습에서 통통한 볼에 뚱뚱한 모습을 하게 된 것은 
토마스 나스트라는 19세기의 만화가가 20년 동안 잡지에 성탄절 삽화를 그리면서 완성한 것이다. 
또 현재처럼 빨간 옷을 입게 된 것은 1931년 미국 해돈 선드블롬이
 코카콜라 광고를 위해 그린 그림에서 유래한 것이다(시사용어사전 2003).”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고 약 300년 후,12월 25일이 예수님의 탄생일로 제정되면서 
이 같은 태양신 숭배 및 이교도의 풍습이 기독교화된 것이다.

 그것은 대부분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한다는 명목으로 행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는 태양신 축제에 참여하고자 했더 부패한 기독교인들의 변명에 지나지 않다는 
사실을 역사를 통해 이해해볼 수 있다. 

크리스마스를 형성하고 있는 모든 풍습과 의식이 그리스도가 아닌
 태양신과 연관돼 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해준다.



출처 패스티브닷컴

2014년 12월 14일 일요일

수어드의 바보짓<하나님의교회 행복한 가정>




"얼음이 필요하다면 미시시피강의 얼음이 있지 않나요?"


"그렇게 거대한 아이스박스가 도대체 어디에 필요한 건가요?"


1867년, 미국이 러시아로부터 알래스카를 사들였을때,
사람들은 매입을 주도했던 미 국무장관 윌리엄 수어드를 맹비난했다.


불과 720만 달러의 헐값에 거저 얻은 땅이었지만
그 당시 사람들에게 있어 알래스카는 쓸모없는 얼음땅일 뿐이었다.
그래서 수어드가 알래스카를 매입한 일을 '수어드의 바보짓'이라고 비꼬았다.



그러나 1896년 금광이 발견되면서 알래스카는 금싸라기 땅이 되었고,
제 2차 세계대전 때에는 군수물자를 보급하는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가 되었다.
더구나 석탄,목재에 이어 급기야 어마어마한 양의 유전까지 발견되면서 
미국의 경제에 큰 도움을 준 것이다.


지금의 사람들은 알래스카를 매입한 일에 대해 '수어드의 탁월한 선택'이라고 말한다.


-안식일을 준비하는 행복한 가정중에서-





세상 사람들 또한 복음을 전하는 것을 어리석고 헛수고하는 사람으로 볼지 모릅니다.
그러나 훗날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우리의 선택이 탁월한 선택임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2014년 12월 12일 금요일

광우병<하나님의교회&패스티브닷컴>

광우병


잊어버릴 만하면 들려오는 소식 중의 하나가 광우병이다.
지난 달 말, 포르투갈에서 1998년 태어난 숫소에게서 광우병이 발생했다고 전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우리나라의 경우 2000년 12월 30일부터 포르투갈을 포함한
유럽연합에서 생산된 소나 쇠고기는 수입이 금지되어 있다."고 밝혔지만
그래도 찜찜한 마음은 지울수가 없는 것이 사실이다.






광우병은 소의 뇌에 변형이 일어나 생기는 전염성 질환으로,
공식명칭은 ‘우해면양뇌증(Bovine Spongiform Encephalopathy)’이다.
 소의 뇌에 스펀지 같은 작은 구멍이 생기면서 조직이 흐물흐물해지는 병인데,
 소가 이 병에 걸리면 방향감각을 잃고 미친 것처럼 움직이기 때문에 일명 ‘광우병’이라 부른다. 
광우병에 걸린 소는 전신에 마비가 오고 시력을 상실하며 결국 죽음에 이른다고 한다.



광우병의 원인은 역학조사 결과, 초식동물인 소에게 먹인 ‘동물성’ 사료 때문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초식동물인 소에게 양이나 동종인 소의 뼈와 부산물을 섞은 사료를 먹인 것인데, 
실제로 광우병이 최초로 발견된 영국은 1980년대 초부터 젖소의 우유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양이나 소의 사체를 사료 원료로 사용했다고 한다. 
한마디로 자연의 섭리를 거슬러 먹지 말아야 할 음식을 섭취한 것이 화를 키운 것이다.



더욱 큰 문제는 광우병에 걸린 소를 사람이 먹게 될 경우 광우병에 감염될 수 있다는 것이다. 
‘변종 크로이츠펠트 야콥병’은 광우병이 사람에게 전염된 것으로 '인간광우병'이라고 불린다.

광우병에 걸린 소의 고기나 그 추출물로 만든 음식을 먹었을 때 감염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20~30대의 젊은 연령층에서도 발생하는데,
이 병에 걸리면 피로, 우울증, 운동장애, 경련, 
치매가 빠르게 진행되며 환자의 90%가 1년 내에 사망에 이른다고 한다.



자연의 섭리를 거슬러 먹지 말아야 할 음식을 먹음으로써 죽음에 이르는 일은 이뿐만이 아니다. 
영적으로도 먹지 말아야 할 음식이 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양식을 먹고 생명수를 마셔야 한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라고 하시며 유월절을 새 언약으로 약속하신 생명의 양식이 바로 그것이다
(요한복음 6:48).



때가 이르매 예수께서 사도들과 함께 앉으사 이르시되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 또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누가복음 22:14~20)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와 명령을 버리고 사람이 만들어놓은 계명을 지킨다면 
영적 광우병에 전염되고 말 것이다.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이 유월절을 버리고 태양신의 탄생을 기념하는 크리스마스를 
지키고 있고,
 안식일을 버리고 태양신을 숭배하는 일요일을 지키며 더 잘해보겠다는 생각으로, 
더 열심을 내겠다는 생각으로, 오랜 세월 사람의 계명을 지켜오고 있다.


초식동물이 풀을 먹어야 하는데도 먹지 못할 음식을 먹음으로써 
뇌에 구멍이 생겨 죽어가는 이치처럼 하나님의 백성들이 먹어야 할 생명의 
계명을 지키지 못하고 
변질된 사람의 계명을 지킴으로써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 영혼이 병들어 
하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영원한 멸망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외식하는 자들아 이사야가 너희에게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일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마태복음 15:7~9)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태복음 7:21~23)


생명의 양식인 하나님의 계명과 소에게 있어 동물성 사료 같은 사람의 계명을 분별할 줄 
알아야할 것이다. 죽음에 이르는 전염병에 감염되지 않으려면 먹어야 할 것과 
먹지 말아야 할 것을 철저히 가려 먹어야 할 것이다.



출처패스티브닷컴


2014년 12월 11일 목요일

생명과의 길을 열어주신 초림예수님과 재림그리스도 안상홍님<하나님의교회>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성경을 허락하신 궁극적인 목적은 영혼의 구원에 있습니다.

따라서 성경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구원자이신 하나님을 반드시 만나야 하겠습니다.

성경에는 많은 비유가 기록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 창세기에 기록된 에덴동산의 역사는 하늘에서 범되하고 이 땅에 떨어진 인류의 범죄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 비유 속에 감추어진 참된 의미를 깨닫는다면 인류가 짊어지고 있는 사망의 고리를 풀어낼 수 있습니다.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은 허락된 사람들과 허락되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마13장 10~16)

그렇다면 이 비밀을 알 수 있도록 허락된 사람들은 천국을 약속받은 ,참으로 복 받은 사람들이라 하겠습니다.





선악과의 범죄와 생명과


에덴의 역사를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명하셨으나 인류는 뱀의 미혹에 빠져 선악과를 따 먹고 죽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창 2장 16~17절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 3장 1~6절 “…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 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비유상의 뱀은 마귀를 뜻합니다(계 12장 9절 참고).
간교한 마귀는 사람의 심리적인 약점을 잘 알고 교묘하게 접근해 죄와 사망을 끌어들였습니다.
에덴의 범죄는 실상 하늘나라에서 우리가 지은 죄를 재구성하여 우리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이 땅에 태어나는 사람은 아담과 하와처럼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에덴동산에는 선악과를 먹고 죽게 된 사람이라도 먹기만 하면 살 수 있는 생명과가 있었습니다.


창 3장 22~24절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 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에서 쫓아내시고, 생명과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그룹들과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셨습니다.






유월절로 허락된 생명과



예수님께서도 당신이 바로 생명과의 실체이심을 증거하셨습니다.

요 6장 53~57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살아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


선악과를 먹고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된 인생들에게 유일한 복된 소식은 생명과를 먹게 해주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뿐일 것입니다. 그런데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면 영생을 가졌다”고 하셨으니 이는 곧 생명과를 허락하시겠다는 뜻이 되겠습니다.

그룹들로 하여금 죄인들이 생명과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지키라고 명하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다시 생명과의 길을 열어 우리 죄인들을 살려주실 분도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당신의 보배로운 살과 피를 통해 영생을 약속하신 예수님은 당연히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새 언약 유월절을 세우시며 생명과인 당신의 살과 피를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시고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 26장 17~28절, 막 14장 12~24절, 눅 22장 7~20절 참고).


그러나 이 생명과의 진리를 싫어하는 사단은 사람들의 마음을 충동해서 주후 155년, 197년 또 325년 세 차례의 논쟁과 종교회의를 거쳐 교묘하게 유월절을 없애버렸습니다. 동방교회에서 중시했던 유월절을 없애고, 서방교회를 중심으로 유월절 다음에 오는 첫 번째 일요일(부활절)을 기념하게 함으로써 날짜를 변경해 유월절을 지킬 수 없도록 한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하나님의 때와 법을 바꾸려 한다는 다니엘서의 예언대로 이루어졌습니다(단 7장 25절 참고).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단에 의해서 짓밟힌 생명의 진리, 새 언약 유월절을 장차 다시 오셔서 회복해주실 것도 알려주셨습니다.
수 세기에 거쳐 수없이 많은 신학자들이 연구해도 그들은 이 유월절 진리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생명과는 오직 하나님께서만 허락해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생명과의 길을 열어주신 하나님 안상홍님




2천 년 전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목적도 우리의 생명, 곧 구원을 위함이라고 하셨습니다.


히 9장 28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그렇다면 두 번째 오시는 그리스도는 생명과의 진리인 유월절을 가지고 등장하시는 분이라야 하겠습니다. 그래야만 에덴동산으로부터 오늘날 마지막 성령시대까지 봉해져 있던 모든 비밀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 천국의 비밀을 허락받지 못한 자들은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고, 깨닫지도 못할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율법학사들은 알지 못했던 예수님을 어부들이 알아보았고, 들판에서 양을 치던 목동들이 알아보았습니다. 낮고 천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을 알아보고 올바르게 경배했던 그들이 축복받았던 것처럼 오늘날 이 시대에 천국의 비밀을 알 수 있게 허락받은 우리는 정말 복 있는 사람들입니다.


성경은 오래 저장되었던 포도주로 영생을 허락해주시는 그분을  우리의 하나님이시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사 25장 6~9절 참고). 

 325년 이후로 오랫동안 봉해졌던 새 언약 유월절을 다시  우리에게 찾아주신  안상홍님은 우리가  기다려온,   이 시대의  구원자이십니다.



선악과의 범죄로 하늘에서 쫓겨나 영원한 죽음의 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죄인들을 구원하시고자 하나님께서 이 땅까지 오셔서 우리로 생명과를 먹을 수 있도록 천국의 비밀들을 모두 풀어주셨습니다. 생명과를 가지고 오신 우리의 하나님, 안상홍님께서 주시는 죄 사함의 축복과 영원한 천국으로 돌아갈 축복까지 모두 허락받으시는, 하나님의 귀한 자녀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말투는 내용을 담는 그릇입니다.





말투는 내용을 담는 그릇입니다.


같은 말도 듣기 싫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투가 퉁명스럽거나 거친 용어를 사용하거나
목소리가 유난히 공격적일 때 그런 느낌을 줍니다.


그러나 말투가 좋지 않으면
말하는 사람의 의도와 전혀 다른 의미로 변질됩니다.


당신이 좋은 말도 퉁명스러운 말투로 하면
듣는 사람은 "나한테 화난 것일까?"라고 오해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거친 말투는 당신의 의도와 다르게
"나를 겁주려는 것일까?"라는 메시지로 변하기 때문입니다.


말이란 내용만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라 말하는 방법도 의미를 갖습니다.


따라서 당신이 속마음과 달리 퉁명스러운 말투로 말한다면
당신은 주변 사람들에게 많은 오해를 받을 것입니다.






말투란 말을 담는 그릇입니다.
물을 어떤 모양의 그릇에 담느냐에 따라
세숫물로 보이기도 하고 먹는 물로 보이기도 하듯
말투는 그 나름대로 독립된 의미를 지닙니다. 



하나님의교회 사람들은
어머니교훈처럼 큰그릇이 되기위해 노력합니다.
형제에게 한 모든것이
결국은 내게로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왜 나야?!





흑인 선수로는 최초로 미국 메이저 테니스대회에서
우승한 아서 애시 (1943~1993)


인종차별이 심한 버지니아에서 가난한 경비원의 아들로 태어나
두 번이나 세계 랭킹 1위에 오른 전설적인 테니스 선수입니다.


심장질환으로 은퇴한 후 코치,방송해설가,자선사업가,
흑인과 빈곤층 어린이를 위한 인권운동가로 활동하던 
그는  심장수술 때 받은 수혈로 
에이즈에 감염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고 난 후 더욱 활발히 사회활동을 했습니다.


"애시, 왜 하나님은 당신에게 그렇게 무서운 질병을 주셨을까요?
하늘이 원망스럽지 않습니까?"


누군가 이렇게 물었을 때 그가 대답했습니다.


"내가 메이저 대회 우승컵을 들었을 때 "왜 나야?' 라고 묻지 않았습니다.
마찬가지로 나의 죽음에 대해서도 '왜 나야?'라고 묻지 않겠습니다.
나의 고통에 대해서 '왜 나야?' 라고 묻는다면
내가 받은 은총에 대해서도 '왜 나야?'라고 물어야 할테니까요."



-<엘로히스트에게 띄우는 편지> 중에서-




시련은 '축복'의 다른 이름입니다.
과거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해방시키신 하나님께서는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 그들의 배고픔을 해결해주시기도 했지만
그들에게 불뱀과 전갈이 있는 고통의 광야길을 걷게도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을 낮추고 시험하여 마침내
그들에게복을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어떤 시련을 겪느냐보다 시련에 대처하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내게 주어진 시련이 축복임을 깨달을 때
내 인생은 불행에서 참된 행복으로 바뀝니다.



2014년 12월 10일 수요일

메멘토 모리<하나님의교회&패스티브닷컴>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이 말은 '죽음을 기억하라','너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뜻의 라틴어다.
옛적 로마에서는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개선장군이 시가행진을 할 때 노예를 뒤따라오게 하며 이렇게 외치도록 시켰다고 한다. 한껏 승리감에 도취되고 기쁨으로 고무된 개선장군에세 찬물을 끼얹는 소리인 셈이다.


그들의 행위가 범상치 않게 느껴지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지금은 이렇게 개선가를 부르고 있지만 언젠가는 너도 죽을 것이다’라는 사실을 상기시켜 겸손하게 살라는 교훈을 심어주기 위한, 의미심장한 행위이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한 문제는 인류 최대의 이야깃거리이자 수수께끼다. 그래서 그리 많은 철학자들이 생겨난 건지도 모른다. 철학자들의 논제는 삶이란 무엇이다, 인간이란 어떤 존재다, 죽음이란 무엇이다 등 대개가 인생이다. 철학자들은 그런 식으로 자신의 인생관을 타인에게 설파해 어디에 가치를 두고 살아야 하는지 제시해주기도 한다.


과연 성공한 인생은 어떤 것일까. 세상에 태어나 누구는 부(富)를 축적하는 것으로, 누구는 권력을 누리는 것으로, 누구는 이름을 알리는 것으로 성공했다고 말한다. 세간에 오르내리는 성공스토리의 주인공들이 그룹총수 혹은 매출깨나 올리는 사업가, 정치인, 유명인 일색인 것을 보면 이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들의 성공스토리는 뭇 사람들에게 삶의 지표가 되기도 한다. 스토리의 주인공을 롤모델로 삼고 사업전략을 짜거나 정치노선을 바로잡거나 생활습관을 바꾸기도 한다. 그렇게 하면 정말로 성공스토리의 주인공처럼 살게 될지도 모른다. 떼돈을 벌 수도 있고, 유명해질 수도 있고, 권력을 손에 쥘 수도 있다. 그러나, 찬물 끼얹는 소리를 안 할 수가 없다. 그렇다 할지라도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며, 죽을 때 그것들을 갖고 갈 수도 없다는 것이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제아무리 엄청난 부와 명예와 권력을 가졌던 사람일지라도 죽을 때는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했다. 역사를 뒤흔들었던 제왕들은 어떠한가. 굴지의 기업을 이끌며 부를 거머쥐었던 기업가들은 어떠한가. 살아생전 그들이 소유하던 것을 영원히 갖고 산다면 좋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태어날 때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않았듯이 말이다. 공수래공수거는 불변적이고 불가항력적인 법칙이다. 한평생 쌓아온 공을 영원히 가지지 못하는 인간은 불행하고 불안하고 불완전한 존재인 것이다.


고대 이스라엘 왕조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솔로몬은 세상의 모든 것을 가졌던 사람이다. 그런 그가 깨달은 것은 의외의 것이었다.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 내가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본즉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전도서 1:2~3, 14)







부와 명예와 권력을 모두 가졌던 솔로몬은 열심히 살아보려고 발버둥치는 사람들에게 찬물을 끼얹고 있다. 인류 역사상 최고의 성공가도를 달렸다고 할 만한 그가 남긴 말은 ‘내가 모든 것을 가져봤는데 다 헛되고 부질없더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떠한 삶이 진정 성공한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영원히 가질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인생은 그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그것은 바람이 지나면 없어지나니 그곳이 다시 알지 못하거니와 여호와의 인자하심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며 그의 의는 자손의 자손에게 미치리니 곧 그 언약을 지키고 그 법도를 기억하여 행하는 자에게로다
 (시편 103:15~18)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지키고, 하나님의 법을 기억하여 행하는 사람에게 영원히 인자를 베풀겠다고 하셨다. 즉 영원한 생명을 허락해주시겠다는 뜻이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성공한 삶을 살고 있는 데다 영원한 생명까지 받는다면 금상첨화인 인생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솔로몬의 충고를 두고두고 곱씹어야 할 것이다.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신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
 (전도서 12:1, 7~8)


출처 패스티브닷컴



2014년 12월 9일 화요일

크리스마스(성탄절)은 태양신의 생일날

태양신의 날 크리스마스(성탄절)




하나님의교회는 사람이 만든 계명은 절대 지키지 않습니다.
사람이 만든 계명은 아무리 좋다고 할지라고 구원이 없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사람의 계명으로는 일요일예배, 크리스마스, 추수감사절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성경대로 안식일, 유월절 등 3차 7개절기 등 하나님의 계명을 소중히 지키고 있습니다.


크리스마스 = 그리스도(Christ) + 마스(mass)

크리스마스는 중세 카톨릭용어로 그리스도의 미사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12월 25일만 되면 거리 곳곳에서는 캐롤이 흘러나오고 사람들은 즐거워하지만

크리스마는 본래 교회가 세속화되던 4세기경 이교도의 축제일을 받아들여 

기독교의 축제일로 바꿔치기한 우상숭배입니다.



<교회사 174쪽, 이건사 발행>

성탄절 : 성탄절을 12월 25일로 지킨 것은 354년의 기록에 나타났으니, 
곧 로마감독 리베리우스(Liberius)시대였다.
 379년에는 콘스탄티노플 시에서 축하하였고 애굽과 팔레스타인에 전파되었다.
 크리스마스의 기원을 특기하자만 
그 풍속이 로마에서 일어난 것이니 그 자체가 이런 것이다. 
로마에는 12월 말에 들어서면서 연거푸 삼대 축제일이 있은 것이다.


그 하나는 사투르날리아(Saturnalia)라고 하는 것이 있었는데
 12일부터 24일까지 지킨 것이다.
 잠시 다른 신이 지배할 때에 황금시대를 이루었는데 
그 일을 기념하기 위하여 제축하는 것이다. 
이 절기에는 빈부귀천의 구별을 망각하고 환락에 취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시길라리아(Sigillalia)제일이 있으니
 12월 하순에 있은 것으로 이 때에는
 소아에게 인형을 주어 즐기게 하는 절기인 것이다.


나머지 하나는 브루말리아(Brumalia) 제일이니
 이것은 동지제(冬至祭)로서 태양의 떠오름을 축하하는 절기였다.


이런 축제일에 가담할 수 없는 기독교인들로서는 별다른 의미로 축하하는 집회를 
모색하게 된 것이고 또한 그리스도께서 이 태양이 나온 후에 탄생하셨다는 것이 
적합하다고 생각되어서 이 때로 크리스마스를 삼아 축하하는 풍이 시작하게 된 것이니
 이것이 곧 구주 강탄 축하의 시작인 것이다.




100년 이전에 기록된 신약성경에 354년부터 지키기 시작한 크리스마스가 

기록이 되지 않은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성경에는 크리스마스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없으며,

예수님과 사도들 역시 크리스마스는 지킨 일이 없습니다.

성경대로 행하는 하나님의교회로 오셔서 값없이 구원받으세요.





물의 5가지 가르침<하나님의교회&좋은글>


물은


1.항상 자기의 진로를 찾아 멈추는 일이 없다.


2.스스로 움직여 다른 것을 움직인다.


 3.장애를 만나면 그 세력을 몇배로 한다.


 4.스스로 맑으려 하고, 다른 것의 더러움을 씻고,
 부탁을 가리지 않고 받아들인다.


5.양양한 대해를 채우고, 비가 되고 구름이 되고,
 얼어서 영롱한 얼음이 되지만, 그 성질은 잃는 법이 없다.





물은 항상 낮은대로 찾아 흘러갑니다.

낭떠러지를 만나도 결코 주저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물을 만나든지 모두 다 맞추어줍니다.

그 모습은 시시때때로 변하지만 그 본질은 결코 변함이 없습니다.



물처럼 겸손한 모습으로

힘들고 어려운 일이 닥쳐도 피하지 말고 부딪혀 이겨내고

어떤 형편 가운데 있더라도 불평하지 말고

누구를 만나든 어울리지만 결코 마음만큼은 변함없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두 척의 배<하나님의교회&패스티브닷컴>

두 척의 배



여기 두 척의 배가 있다.
한 척은 요나의 배요. 또 다른 한 척은 바울의 배다.
두배의 차이가 무엇일까.
먼저 요나의 배를 보자.
요나는 앗시리아의 수도인 니느웨가 아닌 다시스로 향했다.
요나에게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앗시리아.
그것도 우상이 창궐한 니느웨로 가서 재앙을 선포한다는 것이 어쩌면 무모한 것처럼 느껴졌을 수도 있다.
공연히 그곳에서 몰매를 맞느니 그냥 피하고 볼 심산이었던 것이다.
다시스로 향하는 배에 오르자 요나는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잠이 들었다.


여호와의 말씀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쳐서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하였음이니라 하시니라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낯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선가를 주고 배에 올랐더라 여호와께서 대풍을 바다 위에 내리시매 바다 가운데 폭풍이 
대작하여 배가 거의 깨어지게 된지라 사공이 두려워하여 각각 자기의 신을 부르고 또 배를 가볍게 
하려고 그 가운데 물건을 바다에 던지니라 그러나 요나는 배 밑층에 내려가서 누워 깊이 
잠이 든지라 선장이 나아가서 그에게 이르되  자는 자여 어찜이뇨 일어나서 네 하나님께 구하라 
혹시 하나님이 우리를 생각하사 망하지 않게 하시리라 하니라 그들이 서로 이르되 
자 우리가 제비를 뽑아 이 재앙이 누구로 인하여 우리에게 임하였나 알자 하고 
곧 제비를 뽑으니 제비가 요나에게 당한지라 
(요나 1:1~7)


하지만 갑자기 폭풍을 만난 배는 위기에 처했고 배에 탔던 사람들은 이 일이 어찌된 영문인지 
제비를 뽑았다. 결국 요나는 들통이 나고 말았다. 
사람들은 요나를 물속으로 내던졌고 폭풍은 순식간에 잠잠해졌다. 
그렇게 요나를 버리고서야 배는 무사히 다시스로 향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바울과 함께 배에 탔던 사람들은 어찌됐을까. 
바울은 당시 로마로 압송돼 몇몇 죄수와 함께 배에 올랐다. 
이탈리아로 향하던 중 배는 ‘위험한 동북풍’이라는 뜻의 태풍, 유라굴로를 만났다. 
사람들은 짐을 바다에 던졌고 배의 장비마저 내던졌지만 태풍은 잠잠할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그때 바울이 말했다.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면 좋을 
뻔하였느니라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생명에는 아무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나의 속한 바 곧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그러나 우리가 한 섬에 걸리리라
 (사도행전 27:21~26)


결국 바울과 함께 승선했던 모든 사람들은 인근의 섬으로 피해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했던 요나와 함께했던 사람들은 요나를 버림으로 살 수 있었지만, 
바울과 함께했던 사람들은 바울 때문에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두 척의 배에 탔던 사람들의 결과를 통해 오늘날 신앙의 길을 가는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지 
고민해야 한다.
 혹시 내 믿음의 배에 요나와 같은 사람이 있는지, 바울과 같은 사람이 있는지 말이다.
만약 하나님 말씀에 순종치 않는 요나와 같은 사람이 있다면 
과감히 그 사람을 버리는 것이 당신의 생명을 구하는 길이다.


하나님을 믿지만 그 말씀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은 어떤 경우일까. 
요나처럼 직접적인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는 사례도 있겠지만 하나님의 규례, 계명들을 
따르지 않는 것도 해당된다. 즉 불법을 행하는 것이라 하겠다. 

하나님의 계명인 안식일, 유월절, 침례, 여성도의 머리수건 등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성경에도 없는 일요일예배, 크리스마스, 추수감사절, 맥추감사절 등 사람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 사례들이다.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 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요한계시록 22:18~19)


천국을 향하는 믿음의 배에 누가 동승하고 있는지 잘 살펴서 요나의 배에 탔던 사람들처럼 
받지 않아도 될 재앙을 받는 일이 결단코 일어나서는 안 될 것이다


출처 패스티브닷컴




2014년 12월 8일 월요일

그리스도의 셀룰러메모리를 가진 자들<하나님의교회&패스티브>

그리스도의 셀룰러메모리를 가진 자들




셀룰러메모리(Cellular Memory), 일명 세포기억설은 
장기 이식 수혜자들에게 나타나는 한 증상이다. 
이는 기증한 사람의 성격이나 습관이 수혜자에게 전이되는 현상으로 
미국 애리조나주립대학교의 심리학 교수인 게리 슈왈츠(Gery Schwartz)에 의해 처음 발견되었다. 
그에 따르면 사람의 생활 습관, 식성, 관심분야 등 일종의 단편 기억이 뇌뿐만 아니라 
인체의 장기 속 세포에도 저장되고 그 기억이 전이될 수 있다고 한다.



실례로, 
한 어린아이가 심장 이식 수술을 받은 후 지속적으로 똑같은 악몽을 꾸게 되었다. 
누군가에게 살해당하는 꿈이었다. 
정신과 치료로도 소용이 없자 아이의 부모는 아이를 경찰에 데려가게 되었고 
그 꿈이 이식받은 심장의 주인이 살해당한 것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결국 아이의 증언을 토대로 몽타주를 그려 살해범을 잡게 되었다고 한다. 
그 외에도 평소 그림실력이 초등학생 수준밖에 안되던 사람이 
젊은 화가의 심장을 이식받은 후 그림을 잘 그리게 되었고, 
스턴트맨의 심장을 이식받은 후 스포츠를 좋아하고 잘하게 되었다는 사례가 있다고 한다.



이러한 셀룰러메모리를 가진 사람들이 성경에도 등장한다.
그리스도의 심장을 이식받은 사람들,
곧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빌립보서 1:8)


사도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의 심장을 이식받은 자로서,
그리스도를 닮고 그리스도를 위하는 생애를 살았음을 고백하고 있다.
이전 유대교에 있을 때에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고
성도를 괴롭히는 일을 앞장서서 행했던 그였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세우신 새 언약을 지킴으로 
그리스도의 심장을 이식받고 새사람으로 거듭났다.
 그리고 이후로는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복음의 길을 뒤따르며 
초대교회의 부흥을 이루는 장본인이 되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심장을 이식받음으로 
그리스도께서 걸으셨던 셀룰러메모리를 전이받은 것이다.


바울이 자기의 규례대로 저희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야 할 것을 증명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 
(사도행전 17:2~3)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유월절)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고린도전서 11:23~26)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 
무릇 남자로서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요 
무릇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 
이는 머리 민 것과 다름이 없음이니라 
(고린도전서 11:1~5)


이처럼 그리스도의 심장을 이식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리스도께서 전하여준 
새 언약을 지키며 그리스도께서 걸어가신 길을 걸어가는 셀룰러메모리를 전이받게 되는 것이다. 
성경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성도(聖徒), 
즉 거룩한 무리라 부르며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요한계시록 14:12)


오늘날 그리스도의 본을 따르기를 원하고 구원받기를 원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정작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성경은 사도 바울이 그러했듯이 마지막 구원받을 백성들은 
새 언약의 안식일, 유월절, 머리수건 등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이라고 증거하고 있다.
 이들이야말로 그리스도의 심장을 이식받아 
그리스도의 뒤안길을 따르는 셀룰러메모리를 가진 자들인 것이다.



출처 패스티브닷컴




소에게 배우는 지혜<하나님의교회&행복한 가정>

소에게 배우는 지혜




소와 말이 물웅덩이에 빠지면 어떻게 될까요?
둘 다 헤엄쳐 뭍으로 나오는데,
 말은 힘이 좋아서 소보다 휠씬 빠른 속도로 빠져나온다고 합니다.


그런데 홍수가 나 급류에 떠내려가는 상황이라면 어떨까요?
소는 살아서 나오지만 말은 죽는다고 합니다.


힘 좋고 헤엄 잘 치는 말은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려고 필사적으로 발버둥 치다 
지쳐서그만 익사하는 데 반해, 
소는 물이 흐르는 대로 둥둥 떠다니다 
얕은 곳에 닿으면 천천히 걸어 나온다는 것입니다.


역시 우생마사(牛生馬死)즉 '소는 살고 말은 죽는다'는 말이 생겨났습니다.


자신의 힘을 믿고 무리하게 대응하기보다는 겸허한 마음으로 참고 기다리는 지혜를 
가져야 할 때가 있습니다.


우보천리(牛步千里),'소걸음으로 천 리를 간다'는 말도 있듯 
조급해하며 서두르지 않아도 뚝심을 갖고 흔들리지 않으면 
필경 목적지에 당도하게 됩니다. 
우직하고 유순한 소에게 배울 점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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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가정<하나님의교회>

2014년 12월 6일 토요일

반드시 챙겨야 할 것<하나님의교회&안상홍님>




국제 산악 가이드이자 암벽 등산의 선구자인 게리 스콧은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히말라야를 서른 번 이상 오른 등반의 달인입니다.
등반에 있어 산을 오르는 기술만큼 중요한 것은 짐을 챙기는 기술입니다.


화려한 등반 경력을 지닌 그는 어떻게 배낭을 꾸릴까요.
언제 어떻게 필요할지 모르니 일단 갖고 가자는 사람들은
산행 내내 보따리를 수십 번 풀었다 묶었다 수고를 하는데,
짐이 많을수록 정상에 도달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합니다.
펼쳐놓은 짐 중에서 절반만 챙기되 반드시 챙겨야 하는 것은
생명과 관련된 것이라고..


인생길도 목표를 향한 등반과 같습니다.
지금 내가 짊어진 짐 중에 내려놓아야 할 것은 없는지
혹 필요한 것은 빠뜨리진 않았는지 살펴봐야겠습니다.


 - 엘로히스트에게 띄우는 편지중에서 -

2014년 12월 5일 금요일

평면사고와 입체사고<하나님의교회&패스티브>

평면사고와 입체사고






세상을 살다 보면 처음으로 생소한 일을 하게 될 때 아직 경험해보지 않은 일이라
자신감도 부족하고 불안한 마음에 눌려서'과연 내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혹은 '이 일이 옳은 것인가, 잘못된 것인가?'하며 고민할 때가 있다. 
내일 일은 고사하고 당장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여 
끔찍한 재앙과 사고를 당하는 현실을 날마다 목도하면서 불확실한 미래와 
삶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우리 인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시편 70:10)



사람은 누구나 안락한 삶을 꿈꾼다. 
그러나 그러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가로와 세로만 생각했던 평면사고보다는 가로와 세로와 높이, 
넒이까지 생각하는 입체사고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때이다. 
봄이 왔어도 봄만 생각하는 평면사고에서 벗어나 이제는 곧 여름이 오고 
가을과 겨울까지 닥친다는 것을 내다보면서 입체사고로 진화되고 
변화된 삶을 추구하고 대비해야 할 것이다.



저희가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히브리서 11:15~16)


이 땅에 살면서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며 사는 사람이야말로 평면사고에서 벗어나 입체사고, 
고차원의 사고를 가진 자일 것이다. 사계절의 변화가 뚜렷한 온대지방에 살면서도 
계절의 변화를 체감하지 못하고 그저 오뉴월이 한창인 메뚜기 같은 사고를 가지거나, 
여름 한철 내내 신바람나게 노래하고 즐기던 베짱이 
같은 사고를 가진 자들은 결코 생각하지 못하는 세계인 것이다.



봄이 지나면 여름이 오고 때가 되면 가을, 겨울이 지나 다시 새로운 봄이 오듯이, 
우리 인생도 이생이 지나가면 반드시 내생이 오리라. 
그 내생을 보장하는 시온에 거하고 있고, 
어머니 하나님이 함께 계시니 이 얼마나 행복하고 감사한 일인가?



우리의 절기 지키는 시온성을 보라 네 눈에 안정한 처소된 예루살렘이 보이리니 
그것은 옮겨지지 아니할 장막이라 … 거기 거하는 백성이 사죄함을 받으리라
 (이사야 33:20~24)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갈라디아서 4:26)




출처 패스티브닷컴



2014년 12월 4일 목요일

동방에 오신 재림그리스도 안상홍님<하나님의교회>






성경에는 두번째 오시는 예수님, 즉 재림 예수님에 대한 예언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은 그 많은 예언 중 '과연 재림 예수님께서는 어디에 오시냐'하는 것입니다.
구원받고자 하는 성도들이 그토록 기다리는 구원자께서 오시는 장소를 모르고서야 어떻게 구원을 논할 수 있을까요?



한번 죽은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와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히브리서 9:27~28)



이 말씀에서 우리는 몇 가지 의문점을 가지게 됩니다. 그 중 하나가 ‘두 번째’라는 단어입니다.
하나님께서 영으로만 계신다면 첫 번째, 두 번째와 같은 서수로 표현할 이유가 없습니다.
 영으로는 우리와 항상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두 번째 나타나신다’는 것은
 첫 번째 이스라엘에 오셨던 것처럼 두 번째도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재림 예수님께서 오시되 어디에 오시는 것일까요?
사람으로 태어나신다면 분명 초림 예수님처럼 태어나는 장소가 있지 않겠습니까?
초림 예수님 당시에도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는 장소가 어디인가를 놓고 많은 학자들의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사람의 생각으로 판단하기에 앞서 우리는 그 해답을 성경에서 찾아야 합니다.
 위에 기록된 말씀을 본다면 두 번째 오시는 예수님께서는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오시는 분입니다. 
 반드시 재림 예수님께서 오시는 장소에서는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다시 말해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는 그곳에 재림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것입니다.




이 시대 오신 재림그리스도 하나님의교회 안상홍님을 알지 못하고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교회 안상홍님께서는 성경의 예언대로 동방의 땅 끝 나라 대한민국에 오셔서
325년 폐지되었던 새언약 유월절을 회복하심으로 우리들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인류의 구원을 위해 하늘 영광을 뒤로 하시고 이 땅까지 사람의 모습으로 오셔서
성경의 모든 예언을 이루신 하나님의교회 안상홍님을 영접하여 구원받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