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0월 13일 월요일

돌고래의 모정'감동'[하나님의교회]

돌고래의 모정'감동'




지난해 한 관광객이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에 올린 동영상이 큰 화제가 됐었다. 
동영상 제목은 '아기 돌고래야 집에 데려다 줄게' 이다.
 영상 속 어미 돌고래는 새끼 돌고래를 등지느러미 위헤 업고 헤엄쳤다. 
새끼 돌고래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몸에 깊은 상처들이 나 있고 
혈흔은 까맣게 변해 있었다. 
이미 죽은것이다.


파도에 새끼 돌고래의 사체가 휩쓸려갔지만 어미는 포기하지 않았다. 
다시 새끼를 찾아 등지느러미에 업고 계속 헤엄을 쳤다. 
이런 모습은 3일 동안 관광객들에게 포착됐다고 한다. 
많은 네티즌들이 이들의 모습을 보고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죽은 새끼 업은 돌고래, 마음이 뭉클하다”,
 “죽은 새끼를 업은 어미 돌고래의 모습이 마치 사람 같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죽은 자식조차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것이 어미의 마음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한낱 미물에게도 한없는 모정을 주셨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로마서 1:20)

우리 눈으로는 볼 수 없는 ‘하나님의 신성’을 보여주시기 위해서다. 하나님의 신성에는 한없는 모정을 지니신 어머니 하나님께서 계신다는 의미다. 만물이 어머니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고 있으니 그 누구도 그 존재를 몰랐다고 핑계를 대지 못한다. 사도 바울은 명확하게 하늘에 계신 어머니 하나님을 증거했다.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갈라디아서 4:26)

바울의 증언처럼, 우리에게는 아버지 하나님뿐만 아니라 한없는 사랑을 베푸시는 ‘어머니 하나님’께서 계신다. 어머니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셨다. 죽어가는 당신의 자녀(로마서 6:23)를 품에 안아 영원한 생명이 있는 천국에 데려가기 위해서다. 지금 이 항해에 함께하자. 어머니께서 부르신다.



하나님의교회는 저 멀리 하늘에서 이땅까지 자녀에게 생명 주시려 친히 
육체의 모습으로 오신 어머니하나님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의교회가 전하는 어머니하나님을 믿지 않고서는 결단코 
생명을 얻을 수 없습니다
마지막 구원받을 ‘우리’에 속하고 싶지 않으십니까?
그렇다면 생명주시기 위해 이땅에 오신 어머니하나님을 하나님의교회에서 찾으세요




천국혼인잔치-신부는 성도를 의미하는가[하나님의교회$$어머니하나님]

천국혼인잔치-신부는 성도를 의미하는가



어떤 사람들은 성경에서 신부는 '성도'를 의미하기 때문에 신부가'어머니 하나님'이라는 하나님의교회의 가르침은 잘못된 것이라도 주장한다.
그들의 주장대로 성경에서 '신부'는 오직  '성도'만 의미할까.


성경에서 하나의 단어가 반드시 한가지 뜻만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일례로 '양' 이라는 단어가 그렇다. 때로는 성도들을 의미하기도 하고' 때로는 그리스도를 의미하기도 한다. (요한복음 10:10, 1:29)

이와 같이 성경에서  '신부'는 때로는 '성도'를 의미하기도 하고. '어머니 하나님'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앞뒤 말씀을 잘 살펴 '신부' 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뜻을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성도가 신부로 비유된 말씀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고린도후서 11:2)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에베소서 5:23~31)

위 말씀에서는 성도들을 남편 되신 그리스도의 아내로 비유하였다.


성도가 청함 받은 자로 비유된 말씀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 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잔치는 예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치 아니하니 사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잔치에 청하여 오너라 한대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 자리에 손이 가득한지라 (마태복음 22:2~10)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금식할 수 있느냐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는 금식할 수 없나니 (마가복음 2:19~20)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요한계시록 19:7~10)

이 비유들은 성도들을 혼인집 손님들로 비유하였다. 위 두 가지 경우를 비교해보면 성도들을 신부로 비유하기도 했지만 어린양의 혼인잔치 즉, 마지막 천국 혼인잔치에서 혼인집 손님들로 비유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마지막 천국 혼인잔치에서 신부는 누구란 말인가.


천국 혼인잔치의 신부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요한계시록 21:9~10)

오직 위(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갈라디아서 4:26)

사도 바울은 어린양의 아내인 하늘 예루살렘을 우리 어머니라고 증거하였다. ‘우리 어머니’에서 ‘우리’가 성도들이다. 그러므로 어머니는 성도들과 구분된 성도들의 ‘어머니’이다. 마지막 천국 혼인잔치에는 반드시 신부이신 하늘 어머니가 존재한다. 성도들은 혼인집 손님으로 묘사되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 19장의 마지막 천국 혼인잔치의 신부가 성도라는 주장은 도무지 말씀의 앞뒤를 살피지 않은 주장이다.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의 청첩장은 참 부담스러운 청첩장이 될 것 같다. 손님으로 청해 놓고 갑자기 신랑 옆에 세워서 신부가 되라고 할 테니 말이다. 그것도 혼인잔치에 온 손님들 전부를 말이다.

-패스티브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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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하나님만 믿어서는 결코 하나님의 자녀가 될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인 영생은 최종적으로 하나님의교회가 믿는 전하는 어머니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교회&&어머니하나님]예루살렘과 예루살렘

[어머니 하나님]

예루살렘과 예루살렘


성경에서는 예루살렘을 두가지로 나타내고 있다.
"땅에 있는 예루살렘"과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이다.
땅에 있는 예루살렘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중동의 그곳이다.
하지만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예루살렘이여 일어나 보좌에 앉을지어다"."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 찬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내려오니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신부 곧 어린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성경은 수없이 많은 곳에서 예루살렘을 이처럼 묘사하고 있다. 이는 결코 지금 중동에 있는 예루살렘이라 할 수 없다. 성벽 하나 남아 있는 중동의 예루살렘이 보좌에 앉을 수도 없으며, 찬송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위의 성경구절에 나타난 ‘예루살렘’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성경에서는 예루살렘을 두 가지로 나타내고 있다는 점이다. ‘땅에 있는 예루살렘’과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이다. 땅에 있는 예루살렘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중동의 그곳이다. 하지만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사진출처 [The Western Wall by Golasso]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 22:17)

사도 요한은 계시 가운데 구원을 베푸시는 성령과 신부를 보았다. 성령 하나님과 신부께서 주시는 생명수가 값없이 인류에게 전해지는 장면에서 성경은 끝이 난다. 그러나 사도 요한은 바로 전장에서 여기 나타난 신부가 누구인지 무척 궁금해 했다. 그리고 결국 천사를 통해 신부에 대해 확인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요한계시록 21:9~10)

사도 요한을 데리고 간 천사가 보여준 신부는 다름 아닌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다. 그 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워 눈을 뗄 수 없었던 사도 요한이 이를 보고 마치 ‘남편을 위해 단장한 신부’라고 기록했다(요한계시록 21:2). 분명 이 땅에 있는 예루살렘은 아니다.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갈라디아서 4:26)

하늘에서 내려온, 사도 요한이 보았던,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그 예루살렘은 바로 우리의 어머니시다. 그런데 이 짧은 성경 구절 속에 우리는 여러 가지 의문이 든다. ‘우리의 어머니’라는 말의 뜻은 무엇이며, ‘왜 예루살렘은 하늘에서 내려왔을까’ 하는 것과 또 ‘우리’라는 존재는 누구인가 하는 점이다.

먼저 ‘어머니’에 대해 살펴보자.

지구에 존재하는 어떤 생명체든 그 생명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모체가 필요하다. 즉 생명은 어머니로부터 이어 받는다. 육신의 생명은 육신의 어머니에게서, 영의 생명은 바로 영의 어머니를 통해서다. 성경에 과연 영의 어머니가 존재하는가.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세기 1:26~27)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겠다고 하셨다. 하나님 자신을 말씀하시는데 왜 ‘나’라고 단수의 표현을 쓰지 않고 ‘우리’라는 복수의 표현을 쓰셨을까. 또한 여기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사람도 ‘남자’와 ‘여자’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사람이 ‘남자’와 ‘여자’라면 하나님의 형상 안에는 분명 ‘남자의 형상’과 ‘여자의 형상’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남성적 형상의 하나님을 우리가 ‘아버지 하나님’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여성적 형상의 하나님은 당연히 ‘어머니 하나님’이라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렇게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이 존재 하시기에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실 때 ‘우리의 형상을 따라’라고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영의 생명을 위해서는 분명 어머니 하나님이 계셔야 하고, 그 어머니 하나님의 등장을 성경에서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예루살렘’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다음으로는 ‘왜 예루살렘은 하늘에서 내려왔을까’ 하는 문제다. 이 문제는 예루살렘이 ‘하늘 어머니’라는 데 그 답이 있다. 어머니의 존재는 생명을 잉태하고 낳으며 기르는 일에 자신의 전부를 희생한다. 마찬가지로 하늘에 계셔야 할 예루살렘 하늘 어머니께서 하늘에 계시지 않고 이 땅에 내려온 이유는 바로 이 지구에 살고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 때문이다.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요한일서 2:25)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 22:17)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인 영생은 영의 어머니가 아니면 우리에게 주실 수 없기에 하늘의 영광을 버리시고 결국 희생이라는 길을 택하셨던 것이다.

나 여호와가 이같이 이르노라 내가 너희 어미를 내어 보낸 이혼서가 어디 있느냐 내가 어느 채주에게 너희를 팔았느냐 오직 너희는 너희의 죄악을 인하여 팔렸고 너희 어미는 너희의 허물을 인하여 내어 보냄을 입었느니라 (이사야 50:1)

하늘에서 이 땅까지의 멀고 먼 여정을 오로지 자녀 사랑으로 감내하신 예루살렘 하늘 어머니시다. 그러기에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내려오신 이유를 우리는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갈라디아서 4:26)

이 성경구절 속에 담긴 뜻 중에 마지막으로 ‘우리’는 누구인가 하는 점이다.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그러나 그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한 것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계집 종과 그 아들을 내어 쫓으라 계집 종의 아들이 자유하는 여자의 아들로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계집 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하는 여자의 자녀니라 (갈라디아서 4:28~31)

‘우리’라는 대상은 이삭과 같은 존재다. 이삭은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미리 축복해 주셨다. 아브라함 가정에는 이삭 외에 하갈이라는 종의 몸에서 장자인 이스마엘을 얻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오직 이삭에게만 유업을 주겠다 약속하셨다.

아브라함이 이에 하나님께 고하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정녕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 (창세기 17:18~19)

아브라함의 가정에서 상속자의 조건은 아버지가 낳은 자녀가 아니었다. 만약 아버지의 피만 이어 받아도 상속자의 조건이 된다면 14년이나 먼저 태어난 이스마엘이 당연히 상속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삭이 상속자가 될 것이라 하셨다. 이는 상속자의 조건이 바로 어머니에게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어머니인 사라를 통해 태어난 자만을 상속자로 정하겠다 말씀하셨다.

아브라함의 가정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도 이삭과 같은 자녀라고 하신다. 예루살렘 어머니 하나님을 믿고 있는 우리가 구원의 약속을 받은 자라는 것을 밝혀두셨다.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계집 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하는 여자의 자녀니라 (갈라디아서 4:31)
<아래의 영상 참고>



하늘나라의 구원을 받을 수 없는 종의 자녀가 아닌 오직 어머니로 말미암아 상속을 약속받은 이삭처럼 하늘 어머니를 믿음으로 구원을 약속받은 자녀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어머니라고 하셨다. 우리는 곧 이삭과 같이 어머니로 말미암아 구원받는 자녀라는 뜻이다.

예루살렘 어머니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은 이삭과 같은 약속의 자녀가 될 수도 없고 영생을 받을 수도 없다. 하나님의 약속인 영생은 최종적으로 어머니로 말미암아 완성되기 때문이다.

출처 패스티브닷컴

2014년 10월 12일 일요일

[하나님의교회 영혼이야기]사람과 영혼

[영혼]

사람과 영혼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인가
인간의 근원적이고 존재론적인 문제에 답을 던지다.



샘이 죽은 후 몰리는 혼자였다. 잦아지는 그리움에 슬픔이 복받쳐도 위로해줄 사람이 없었다. 그와 함께했던 소파에 앉아 샘을 그리워하던 몰리에게 한사람이 찾아왔다. 오다메였다.
그리고 몰리는 깨닫게 된다. 샘이 영혼의 상태로 자신의 주위를 맴돌고 있음을.


1990년, 전세계적으로 대히트를 쳤던 영화' 사랑과 영혼(Ghost)'의 한 장면이다. 전반부의 안타까움이 절정에 다다를 즈음 이 장면에 이어 몰리는 결국 샘을 만나게 된다. 오다메 속에 들어온 샘의 영혼과의 재회는 보는 이의 노스탤지어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영화 '사랑과 영혼'의 한 장면

하지만 우리는 이 영화에서 차마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떠날 수 없었던 샘의 영혼이 던지는 메시지보다 ‘사람에게 과연 영혼이라는 것이 존재할까’라는 의문을 더 가지게 된다. 과연 영혼이라는 것은 존재할까. 영화에서 샘의 영혼은 몸을 벗어나 활동하며, 눈으로 볼 수 없고, 만질 수도 없는 존재로 설명된다. 물론 영화는 픽션(fiction)이다. 그러나 영화의 소재인 영혼은 논픽션(nonfiction)이다.

사람의 영혼에 대한 문제는 종교를 떠나 오랜 세월 회자되고 있다. 영혼 존재에 대한 갑론을박은 결론 없이 이어진다. 이유는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다’ 말할 수 없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 속에는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이 많다. 겨울이면 유행하는 인플루엔자, 동장군이 몰고 온 찬바람, 손바닥에 득실대는 세균들…. 인간이 가진 시력으로는 그 유무를 확인할 수 없다. 그러나 이들의 존재를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는 이들의 존재를 증상이나 증거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인플루엔자의 증상은 열과 몸살, 기침 등이 있으며, 동장군이 몰고 온 찬바람 또한 피부로 그 증거를 체감할 수 있다. 손의 세균은 현미경을 통해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영혼의 존재는 어떤 증거로 확인할 수 있을까. 성경에서 그 해답을 살펴보자.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창세기 2:7)

생령이란 ‘산 영혼’, ‘산 생명’이란 뜻이다. 흙이라는 육체 속에 하나님의 생기(영혼)로 사람이 창조됐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살아 있는 사람 모두에게는 영혼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영혼의 존재를 어떤 증거로 확인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의 명쾌한 답이다. 누구든지 살아 있다면 그것이 바로 영혼의 존재를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이 숨쉬고, 먹고, 움직이며 살아가는 모든 것, 그것이 바로 사람 속에 영혼이 존재한다는 증거다.
그렇다면 반대로 생각해보자. 사람의 몸속에 영혼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여호와께서 엘리야의 소리를 들으시므로 그 아이의 혼이 몸으로 돌아오고 살아난지라 (열왕기상 17:22)

이 내용은 엘리야라는 선지자가 사르밧 지역에 사는 한 과부를 만나 그의 죽은 아들을 살리는 장면이다. 이때 엘리야 선지자는 하나님께 기도했다. ‘아이의 영혼을 몸으로 돌아오게 해달라’고 말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엘리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빠져나온 영혼을 몸으로 돌려보내 아이를 살아나게 하셨다. 즉 영혼이 몸과 분리되면 사람은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그 사람의 몸에 영혼이 없다는 것 자체가 죽었음을 의미한다. 이를 두고 성경에서는 ‘돌아간다’고 설명했다.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신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전도서 12:7)

‘돌아간다’는 의미는 ‘왔던 곳으로 다시 감’을 뜻한다. 예를 들어 아침에 집에서 나와 학교로 간 아이가 하교 후에 돌아간다면 어디로 갈까. 다시 집으로 가야 ‘돌아간다’는 말이 성립된다. 만약 아이가 하교 후 도서관에 들른다면 이는 ‘돌아간다’는 표현을 쓸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죽게 되면 몸과 영혼이 분리되어 ‘왔던 곳’으로 돌아간다고 하셨다. 육체는 흙에서 왔기에 땅으로 돌아가고, 영혼은 하나님으로부터 왔기에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영혼과 육체의 결합으로 살아 있던 사람은, 수명을 다한 후 영혼과 육체의 분리로 죽게 된다. 이와 관련해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표현하는 습관이 하나 있다. 예로부터 사람의 죽음에 대해 ‘돌아가셨다’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영혼은 아마도 육체가 의식하지 못하는, 삶과 죽음에 대한 메커니즘을 깨닫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몸을 보호하기 위해 인류는 옷을 지어 입기 시작했다. 옷은 유구한 역사 속에 변화를 거듭해 갔다. 그리고 명품이라는 브랜드 속에서 고가의 제품으로 태어나기도 했다. 그렇다고 몸보다 중요하지는 않다. 또한 옷이 아무리 비싸도 저절로 혼자 무엇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사람이 벗어 놓으면 그 자리에서 조금도 움직여지지 않는다. 우리의 몸이 이와 같다. 영혼에서 탈피된 육체는 아무것도 아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존재가 우리 몸이다. 벗어놓은 옷과 같다. 중요성을 논하자면 옷보다 몸이 중요하듯 육체보다 영혼이 더 중요하다는 결론이다.

영혼은 존재한다. 그 존재를 믿을지 말지는 각자에게 달렸다. ‘사랑과 영혼’의 몰리처럼 말이다.


출처 패스티브닷컴

나는 무엇인가? "나"라는 존재의 해답. 
하나님의교회(안상홍증인회) 는 영혼문제에 대한 해답을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서 찾습니다.

잠시잠깐 살다가는 육신의 인생에 연연하기보다
영원한 영혼의 삶을 생각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교회 성도들은 영원한 천국에서
영원한 영의 삶을 소망하며 믿음의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까마귀에게 배우는 효성

까마귀에게 배우는 효성




까마귀의 특이한 습성을 보고 후학들에게 교훈을 남겼는데 
그것이 바로 '反哺之孝(반포지효)'란 고사성어입니다.

 '어미에게 되먹이는 까마귀의 효성'이라는 뜻인데요,  중국 진나라 무제 때의 이밀이란 
사람의 효성에서 유래된 말로
어버이의 은혜에 대한 자식의 지극한 효도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명나라 말의 이시진이 기록한 '본초강목'에 따르면 까마귀는 부화한 지 60일 동안은 
어미가 새끼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어 키우지만
이후 새끼가 다 자라고 어미 새가 사냥할 힘이 없어지면 새끼 새가 어미 새를 먹여 
살린다고 합니다.

 한낱 미물에 지나지 않는 흉조요 유해조류인 까마귀이지만 자신을 지극 정성으로 길러준 제 어미의 은혜를 잊지 않고
사냥할 힘이 없는 어미 새를 봉양합니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이 참.. 부끄러워집니다..

미물인 새도 이렇게 자신을 위해 희생한 부모를 위해 이렇게 은혜를 돌리는데..
저는 하늘어머니의 극진한 사랑과 보살핌을 받고도
아직도 부족하다고 떼쓰는 못난 모습만 보여드리니 너무 죄송했습니다..
부끄럽지 않는 효자가 되어야겠습니다.

평생자신의 머리속에 자식을 품고사는 하늘어머니 하나님의사랑[하나님의교회]

평생 자신의 머리속에 자식을 품고 사는 하늘어머니 하나님의사랑                                               [하나님의교회]




모든 사람의 뇌에는 혈뇌장벽이 있다. 이것은 말 그대로'혈액과 뇌를 둘러싼 액체 사이에 있는 장벽'으로, 뇌로 가는 모세혈관 벽의 내피 세포들이 단단히 결합되어 있어서 대부분의 화학 물질이 뇌로 들어갈수 없게 차단하여 뇌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즉 약물이나 병원체는 물론 해로운 물질이 피를 타고 뇌의 중추신경계로 유입되는 것을 전면 차단해준다. 과학자들은 이 혈뇌장벽이 모체와 태아 간세포 교환을 막기 때문에 엄마늬 뇌 속에 자녀의 세포가 유입될 여지가 없다고 본것이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실험용 암컷 생쥐의 뇌에서 Y염색체를 가진 세포를 찾아냈다. 암컷에서 발견된 Y염색체는 임신 과정에서 수컷 태아로부터 받은 세포가 확실했다. 여기서 프레드 허친슨 암센터의 연구진은 엄마의 뇌 속에 태아의 세포가 유입될 수 있는지, 또 유입이 되었다면 혈뇌장벽을 뚫고 어떻게 유입된 것인지 등 몇 가지 의문을 갖고 연구를 시작했다. 그리고 이들은 2012년 9월 26일, 국제학술지 ‘플로스 원(PLOS ONE)’을 통해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결론은 남아를 출산한 적이 있는 여성의 뇌 영역 곳곳에 Y염색체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연구는 여성의 뇌에서 남성의 DNA를 찾은 최초의 연구이다.

프레드 허친슨 암센터 윌리엄 챈(William F. N. Chan) 박사팀은 32~101세에 사망한 59명의 여성의 뇌 조직을 얻어, 여기에 Y염색체가 존재하는지 검사했다. 검사 결과, 검체의 3분의 2에 달하는 63%의 여성 뇌 조직에서 Y염색체를 발견했다. 연구팀은 이 Y염색체가 임신 중 태아로부터 전달된 것이라고 밝혔다. 챈 박사는 언론을 통해 “여성이 임신을 하면 뇌는 혈뇌장벽에 변화가 생기면서 남자 태아조직이 뇌에 쉽게 들어온다. 이번 연구 결과를 통해 이 같은 마이크로키메리즘이 생긴다는 사실이 입증됐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또 태아 세포가 엄마의 질병을 개선하는 데 도움을 준 것처럼, 엄마의 뇌 곳곳에 유입된 태아의 세포 또한 알츠하이머 곧 치매의 발병을 완화하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을 준다고 보고했다. 치매에 걸린 여성이 치매에 걸리지 않은 여성보다 태아의 유전자를 적게 가진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Y염색체, 즉 태아의 세포가 질병으로부터 엄마의 뇌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였음을 시사한다.

더불어 엄마의 혈뇌장벽을 뚫고 들어가서 뿌리를 내린 태아의 세포가 소멸하지 않고 상당히 오랜 기간 엄마의 뇌 속에서 살고 있었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이번 연구에서 Y염색체가 발견된 가장 나이 많은 여성은 94세였다. 이는 임신과 출산이 끝난 수십 년 뒤까지도 태아의 세포가 엄마의 뇌 속에 여전히 존재했음을 알려준다. 결국 엄마는 평생 동안 자신의 뇌 속에 자식을 품고 살았던 것이다.



만물에 이치가 어머니는 평생 자녀를 머리에 마음에 품어 가듯이 
우리를 육천년동안 한시도 잊지 않은채 살아가신
 영의 어머니하나님이 계십니다
계 21장 2절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계 21장 10절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거룩한성 예루살렘은 누구를 의미 하는 것일까요??
갈 4장 26절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만물을 통해서도 알려주듯이 성경에서도 분명 어머니하나님이 계심을 알려줍니다
육신의 어머니의 사랑의깊이를 알았다면 분명 하늘 어머니하나님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한시도 자녀를 잊지 않는 어머니하나님을 하나님의교회에서 믿어 그사랑을 보답하는
자가되어야 하겠습니다.


천국 가족을 찾습니다[하나님의교회&어머니하나님]


[어머니 하나님]

천국 가족을 찾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우리 어머니라


집마다 지은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히브리서3:4)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창조된 만물에 당신의 뜻을 담아 놓으셨다.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요한계시록4:11)





창조된 만물 가운데'가족'이라는 집단을 두신 뜻은 무엇일까.'가족'은 사회 구성원 중 혈연으로 이어진 1차적 집단을 말한다. 대체로 아버지,어머니,자녀,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님의 창조물 가운데'가족'이라는 시스템을 통해 우리에게 알리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살펴보자.

저희가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 할 때에 지시하심을 얻음과 같으니 가라사대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좇아 지으라 하셨느니라 (히브리서 8:5)

구약시대 모세는 하나님의 지시하심에 따라 지상에 성소를 지었다. 이를 두고 히브리서는 ‘하늘에 존재하고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고 말했다. 이는 비단 지상의 성소만이 아니다. 가족 시스템 또한 하늘에 존재하고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는 뜻이다.

모형이나 그림자는 흔히 아파트를 지을 때 세우는 모델하우스를 예로 들 수 있다. 모델하우스는 아파트와 같은 모양과 구조를 띠고 있지만 실제 사람이 거주하는 아파트는 아니다. 많은 소비자들이 모델하우스를 보고 실제 아파트의 구조를 알게 되는 것처럼 지구상의 존재하는 것들을 보면서 하늘의 것을 알 수 있으며 이는 곧 하늘에 존재하는 것이 실체라는 반증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상의 ‘가족’이라는 시스템을 통해 하늘에 존재하는 실체의 가족에 대해 알아보자.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가족에는 아버지, 어머니, 자녀로 구성되어 있다. 이와 같이 하늘에도 아버지, 어머니, 자녀가 있다. 과연 하늘 아버지는 누구인가.

또 우리 육체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여 살려 하지 않겠느냐 (히브리서 12:9)

육체의 아버지란 우리 육체의 모습을 가지게 한 아버지다. 이 말씀은 육체의 아버지에 대한 도리를 통해 영의 아버지에 대한 도리를 가르치고 있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영의 아버지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기도를 통해 알려주셨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마태복음 6:9)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는 바로 아버지 하나님을 뜻한다. 예수님께서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우리 영의 아버지라고 알려주셨다. 이로써 우리는 하늘 가족에도 아버지의 존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아버지의 존재는 또 다른 가족 구성원을 증거해준다. 왜냐하면 ‘아버지’라는 호칭은 반드시 자녀를 전제조건으로 해야 가능하다.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자녀가 없다면 그는 ‘아버지’라는 호칭으로 불릴 수 없다. 이처럼 지상의 가족 구성원에도 ‘자녀’가 있듯이 하늘 가족에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자녀’들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 (고린도후서 6:17~18)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어 주시며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아 주시겠다는 말씀을 통해 하늘 가족에도 반드시 아버지와 자녀가 존재함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가족 구성원 중 ‘어머니’의 존재는 어떠한가. ‘자녀’는 낳아준 어머니가 있어야 존재할 수 있다. 생명을 잉태하고 낳아주는 어머니가 없다면 ‘자녀’도 있을 수 없다는 뜻이다. 과연 하늘 가족에는 ‘어머니’가 계실까. 지상의 가족을 통해 본다면 반드시 하늘 가족에도 어머니가 존재해야만 한다.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갈라디아서 4:26)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교회에 보내는 편지 속에서 ‘위에 있는 예루살렘’을 일컬어 ‘우리의 어머니’라고 칭했다. 여기서 ‘우리’는 하늘 가족의 구성원인 하늘 자녀들이다. 바울은 하늘 자녀들에게 ‘어머니’가 존재한다는 것을 전하고 있다. 또한 이 글의 말미에도 바울은 하늘 자녀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계집 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하는 여자의 자녀니라 (갈라디아서 4:31)

자유하는 여자는 26절에 나타난 자유자로 곧 우리 어머니를 뜻한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믿고 따르는 자들에게 하늘 어머니의 자녀라는 칭호를 준 것이다. 그렇다. 하늘 어머니의 자녀가 되지 않고서는, 하늘 어머니를 부인하고서는 하늘 자녀가 될 수 없다. 이는 다시 말해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결론이다.

지상의 가족을 통해 하늘에도 가족들이 있으며 결국 하늘 아버지와 더불어 하늘 어머니를 믿지 않고서는 천국 가족의 구성원이 될 수 없다. 이와 함께 우리가 간과할 수 없는 것이 또 하나 있다. 가족이란 부모의 ‘혈연’으로 묶여진 집단이다. 그렇다면 과연 천국 가족은 어떤 혈연으로 묶여졌을까 하는 것이다.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누가복음 22:20)

하나님과 혈연으로 묶여지기 위해 당신의 피를 ‘유월절 포도주’ 속에 담아 두셨다. 즉 유월절을 지키는 사람은 하나님과 혈연관계에 놓이게 된다.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천국가족이 된다는 뜻이다. 하나님을 부모님으로 모실 수 있는 것은 오직 유월절로 가능하다.

유월절을 지키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혈통을 이어받은 하나님의 자녀이며 하나님의 후사가 된다. 이 땅에서도 왕의 후사가 되어 한 나라를 물려받는 것처럼 하나님의 후사는 영원한 천국을 물려받아 구원에 이를 수 있는 큰 축복을 얻게 된다.

이제 우리는 지상의 가족을 통해 천국 가족이 존재하며 유월절을 통해 천국 가족의 일원이 될 수 있음을 알았다. 가족은 서로 사랑하며 서로를 아껴주고 희노애락을 함께한다. 이는 천국 가족도 마찬가지다. 가족 중 한 명이라도 멀리 떠나 있다면 돌아오기를 바라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듯 하늘 아버지, 하늘 어머니께서는 지금 이 순간도 이산된 하늘 자녀들을 찾고 있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 22:17)




출처 패스티브닷컴

하나님께서 정하시고 성경가운데 기록하신 모든 구원의 섭리에 따라 바로 하늘아버지이신 성령하나님과 그의 신부되신 하늘어머니께서 자녀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값없이 허락하셨습니다.
성경의 비밀이신 하늘어머니의 존재를 밝히 드러내주신 재림그리스도 안상홍님과 하늘예루살렘 우리 어머니는 처음부터 우리와 함께 하셨던 참 하나님이시며 이 시대의 우리의 구원자이십니다.

성경의 증거를 통하여 하늘아버지뿐만 아니라 하늘어머니를 영접하셔서 영원한 생명의 진리를 깨닫고 행하여 천국의 약속을 허락받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시길 바랍니다.



2014년 10월 11일 토요일

[하나님의교회]어머니하나님&새예루살렘으로 가야하는 이유

하나님의 교회는 자녀를 향한 어머니 하나님의 간절하신 사랑을 전하는 교회입니다.
사랑 그 자체이신 어머니 하나님이 계신 하나님의 교회가 늘 웃음이 끊이지 않고 행복한 이유입니다.

[하나님의교회 어머니 하나님&새예루살렘으로 가야하는 이유]






하나님을 앙망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순례 여행을 꿈꾸는 곳 예루살렘.사람되어 오신 하나님 예수님께서 죽기까지 희생하시며 며 구원을 완성시킨 골고다 언덕, 핏방울을 흘리며 기도하신 겟세마네 동산 등 하나님의 흔적이 서려 있고 구원의 역사가 펼쳐졌던 현장을 목도한다는 것은 분명 가슴 벅찬 일일 것이다.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황금기를 이끌어간 다윗이 하나님의 궤를 옮겨 신앙의 중심지로 삼은 이래 오늘날까지도 순례자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는다. 단순한 순례의 목적을 벗어나 재앙의 피난처로 여기는 경우도 있다. 밀레니엄버그(Y2K)로 온 세상이 떠들썩했던 1999년에는 사상 초유의 인파로 대혼잡을 빚기도 했으며, 전쟁의 징후가 느껴진다 싶으면 예루살렘 내의 호텔은 피난민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고 한다.


이는 신앙의 궁극적 목적이자 염원인 구원이 예루살렘에서 이루어지고 완성될 것이라는 믿음에서 기인한 행위인데, 그도 그럴 것이 성경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는 자가 구원을 얻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다. 자고이래 성경을 믿는 사람들에게 있어 예루살렘은 구원이 태동하며 예언이 꿈틀거리는, 아주 특별하고 성스러운 장소임에는 틀림없다.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어야 구원을 받는다 …. 그럼 예루살렘행 비행기 티켓을 구하지 못하는 사람은 영영 구원받을 기회를 얻지 못하는 것일까. 하나님께서 가난한 자들을 외면하실 리 만무하다. 과연 예루살렘의 진정한 의미는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그 해답은 전 세계 기독교인들의 믿음의 근간이 되고 있는 ‘성경’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사도 바울은 아라비아에 있는 예루살렘 말고도 ‘또 다른 예루살렘’이 있다고 말한다. 그 ‘또 다른 예루살렘’은 도대체 어디인가. 이사야 선지자와 사도 요한이 보았던 예루살렘은 참으로 영묘하고 신비롭기만 하다.





“예루살렘이여 일어나 보좌에 앉을지어다”,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들이여··· 어미가 자식을 위로함같이··· 너희가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으리니”,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내려오니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신부 곧 어린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라는 묘사들이 그것이다.


이 묘사들에 등장하는 예루살렘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결코 아라비아에 있는 예루살렘처럼 고정된 장소, 땅이 아니다. 살아 움직이는 ‘사람’이다. 그중에서도 여성, 특히 ‘어머니’의 모습으로 인류에게 사랑과 자비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이 수수께끼 같은 예루살렘에 대해 사도 바울은 한마디로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고. 위에 있는 예루살렘, 다시 말해 하늘 예루살렘이 이 시대 인류가 찾아야 할 ‘또 다른’ 예루살렘인 것이다.


새 예루살렘 어머니 하나님을 찾는 자가 구원을 얻게 될 것은 자명하다. 굳이 비행기 티켓을 구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 물론 하나님을 직접 만나는 일은 꿈만 같은 일이겠지만, “너희의 이른 곳은 시온산과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이라 했던 사도 바울의 말대로다.


어머니 하나님께서는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구원받기를 원하신다. 실종 아동의 부모들이 그렇듯 어머니 하나님께서는 하늘에서 잃어버린 자녀들을 찾아 이 땅까지 오셨다. 이것이 새 예루살렘으로 가야 하는 이유다.


-패스티브-



성령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 찾아야 할 구원자는 성령하나님과 어머니하나님이십니다.

상처받은 영혼을 위로해 주시고 아름다운 천국에 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시는

어머니하나님을 영접하시길 바랍니다.


2014년 10월 10일 금요일

이단으로 오해받은 초대 하나님의교회-패스티브닷컴

이단으로 오해받은 초대 하나님의교회-패스티브닷컴중


지금으로부터 2천년 일이다.
당시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도를 전하던 사도바울을 고소해 법정에 세웠다.

이단이란 이유에서다.(행24:1~14)

어째서 사도바울은 이단이란 오명을 쓰게 됐을까
교권을 잡고 있던 유대교의 신앙(교리)과 많은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오직 영으로 계신 여호와 하나님을 믿었으며 사람으로서는 하나님을 제대로 볼수조차 없다고 여겼다.

반면 사도바울(초대 하나님의교회)은  육체로 오신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전했다.

또한 모세를 통해 세웠던 옛언약을 신앙의 중심에 뒀던 유대교와 달리 사도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새 언약을 중심에 뒀다.
이같이 상반된 신앙의 차이로 유대교인들은 편견에 사로잡혀 사도바울을 법정에 세우기에 이르렀다.



조상들도 저희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저희에게서 나셨으니 저(예수님)는 만물 위에 계셔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로마서 9:5)


바울은 육신으로 오신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 증거했다.
왜 그는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 증거했을까?
예수님께서 태어나기 700년 전 이사야가 기록한 예언에 그 근거가 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예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이사야 9:6)


이런 이유로 바울은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에 따라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
예수님을 믿었던 것이다.

아울러 예수님께서 세워주신 새 언약을 지키는 자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 근거로 하나님께서 옛 언약을 폐하고 새 언약을 세워주실 것이라고 예언한 예레미야 선지자의 기록이 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 (예레미야 31:31)


이는 옛 언약을 신앙의 중심으로 삼고 있던 유대교인들은 구원받을 수 없다는 의미다.
 이 말씀을 듣고 수많은 사람들이 유대교를 떠나 하나님의교회로 몰려왔다.


유대교는 반발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예수님을 좇는 모든 하나님의교회 교인들을
이단이란 죄명으로 잡아들이자는 것.
이런 이유로 사도 바울은 법정에서 이단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마치 오늘날 하나님의교회와 기성교회를 보는 듯하지 않은가.


 하나님의교회는 성경의 예언에 따라 육체로 오신
 재림 그리스도 안상홍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을 구원자로 믿는다.
또한 하나님만이 세워주실 수 있는 새 언약을 지킨다.
 이런 이유로 기성교회는 하나님의교회를 이단이라고 비난한다<표 참조>.
하지만 때가 되면 역사는 말해줄 것이다.
오늘날 사도 바울이 이단이 아닌 참 선지자라고 칭송을 받는 것처럼.




성경의 예언은 반드시 이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근거없이  하나님의교회를 비방하고 이단이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행하지 않는 교회가 이단이라
증거하고 있습니다

오직  기준은 성경입니다
성경에 증거되어있고 성경대로 행하는 교회가 바로 진리교회입니다

그곳이 어디입니까?

바로 여기 하나님의교회입니다.





저희 하나님의교회는 성령시대 구원자로 오신 안상홍님을 하나님으로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아버지하나님뿐만아니라 어머니하나님도 믿으며 영생의 축복이 약속된 새언약 유월절을 지키고 있습니다.
성경대로  예배를 드릴때는 여성도 들은 머리수건을 쓰고 예배를 드립니다





초막절의 유래와 의식[하나님의교회]

초막절의 유래와 의식[하나님의교회]

하나님의 거룩한 절기 초막절을 지키는 하나님의 교회!!

하나님의교회에서 지키는 하나님의 절기 초막절의 유래와 의식에 대하여~




초막절의 유래

모세가 두번째 십계명을 받아 내려오던 날부터
모든 백성에게 언약의 말씀과 성막 지을 문제를 설명한후,
그 달 15일 부터 7일간 성막지을 재료(금,은,포목,목재 등)들을
자원하는 사람들이 풍성하게 드려 성막을 짓게 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이 성막 지을 재료들을 바친 그 7일간을 기념하시고 
이스라에로 백성들로 하여금 대대로 이날을 기억하게 하시려 초막절을 정하였던 것입니다.
초막절을 장막절 또는 구려절이라고 합니다.


초막절의 의식

이스라엘 백성은 초막절을 지킬 때마다 장막 짓는 형식을 행하여 초막을 짓기도 하고
종려나무나 화석류 나무나 산 버드나무를 취하여 성전 마당에나 집 위에 깔고, 
덮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일주일간 거하면서 기뻐하고 즐거워했습니다.
그리고 빈곤한 가정은 서로 도와주기도 하며 절기를 거룩하게 지켰습니다.


 레위기 23장 39-43절
너희가 토지 소산 거두기를 마치거든 칠월 십오일부터 칠일 동안 여호와의 절기를 지키되
첫날에도 안식하고 제 팔일에도 안식할 것이요
첫날에는 너희가 아름다운 나무 실과와 종려 가지와 무성한 가지와 시내 버들을 취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칠일 동안 즐거워할 것이라
 너희는 매년에 칠일 동안 여호와께 이 절기를 지킬찌니 너희 대대로의 영원한 규례라
너희는 칠월에 이를 지킬찌니라 너희는 칠일 동안 초막에 거하되 이스라엘에서 
난 자는 다 초막에 거할찌니
이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하게 한줄을 
너희 대대로 알게 함이니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초막절은 거룩한 하나님의 절기입니다.
하나님의교회에서 하나님의 절기 초막절을 즐거운 마음으로 함께 지키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성령의 축복 받아요~^^



성령과신부되신 아버지,어머니하나님"생명수를 받으라"

성령과 신부되신 아버지 어머니 하나님의 간절하신 음성...
"생명수를 받으라"


물은 생명체에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이다. 우리 인체는 70%가 물로 구성되어 있다.그물의1~2% 만 부족해도 심한 갈증을 느끼며 12%가 부족하면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 그러니 물을 두고 생명 그 자체라 말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는 우리 영혼에도 적용되는 진리다. 영혼의 생명인 영생도 생명수가 있어야 유지될수 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수가 없다면 우리 영혼도 심한 갈증으로 죽을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우리 영혼의 생명수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에서 동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달려 왕래하되 얻지 못하리니 그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피곤하리라 (아모스 8:11~13)

우리 영혼에 필요한 생명수는 다름 아닌 하나님의 말씀이다. 아모스 선지자는 이 시대가 하나님의 진리인 생명수를 구하지만 얻을 수 없어 영혼이 심한 갈증을 느끼고 있음을 예언하고 있다. 과연 생명수는 어디에서 받을 수 있을까.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날 생명수를 주시는 주체가 누구인지 요한은 계시록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 22:17)

요한은 지중해 연안에 있는 밧모섬이라는 곳에서 계시를 받았다. 천사가 모여준 미래에 대한 일들 속에서 그는 성령과 신부가 생명수를 받으라고 외치는 모습을 보았다. 여기에 등장하는 성령과 신부는 누구일까. 성령은 성삼위일체 하나님 가운데 한 분이시다. 생명수는 오직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기에 이 시대 성령께서 오셔서 생명수를 주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치라 하겠다.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요한계시록 21:7~8)

그렇다면 성령 하나님 옆에서 함께 생명수를 주시는 ‘신부’는 어떤 존재일까. 생명수를 베푸시는 주체를 알지 못하고서는 생명수를 받을 수 없기에 ‘신부’에 대한 문제만큼은 정확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사도 요한도 이 부분에 대해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요한계시록 21:9~10)

요한은 신부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라고 했다. 이는 이스라엘에 남아 있는 낡은 성벽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과연 생명수를 주시는 신부인 예루살렘은 누구인가?
좀더 쉬운 이해를 위해 아래의 동영상을 잠시 보시면...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갈라디아서 4:26)

그렇다. 생명수를 주시는 성령과 신부는 곧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이시다. 성령 혼자만이 아닌 성령과 신부께서 함께 생명수를 주신다는 것은 이 시대 영혼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생명수를 받기 위해 하늘 아버지와 더불어 하늘 어머니를 믿어야 함을 뜻한다. 이와 함께 구약시대 많은 선지자들도 예루살렘인 하늘 어머니께서 생명수를 주실 것에 대해 예언하고 있다.

그날에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솟아나서 절반은 동해로, 절반은 서해로 흐를 것이라 여름에도 겨울에도 그러하리라 (스가랴 14:8)

실지로 어떤 건물에서 물이 솟아난다면 큰 문제다. 아마도 기초공사부터 다시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스가랴 선지자는 생명수가 예루살렘성에서 솟아나 동서로 흐를 것에 대해 기뻐하고 있다. 이는 실지 성전이 아닌 예루살렘 하늘 어머니로부터 시작된 생명수가 사시사철 쉼없이 흘러 넘칠 것에 대한 예언이다. 이렇게 시작된 생명수는 더욱 그 양이 많아져 동서뿐 아니라 전 세계로 흐를 것을 에스겔 선지자도 예언했다.

그가 나를 데리고 전 문에 이르시니 전의 전면이 동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서 동으로 흐르다가 전 우편 제단 남편으로 흘러 내리더라 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으로 나가서 바깥 길로 말미암아 꺾여 동향한 바깥 문에 이르시기로 본즉 물이 그 우편에서 스미어 나오더라 그 사람이 손에 줄을 잡고 동으로 나아가며 일천 척을 척량한 후에 나로 그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발목에 오르더니 다시 일천 척을 척량하고 나로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무릎에 오르고 다시 일천 척을 척량하고 나로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허리에 오르고 다시 일천 척을 척량하시니 물이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 그 물이 창일하여 헤엄할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 (에스겔 47:1~5)

처음에는 발목에 오르던 생명수가 멀리 흘러갈수록 무릎, 허리까지 차 올라 나중에는 도저히 건널 수 없는 강이 되었다. 이는 생명수인 하나님의 말씀이 처음에는 작게 시작됐지만 마침내는 전 세계로 전파되면서 점점 더 왕성하게 이루어질 것을 예언한 것이다. 그 시발점이 바로 예루살렘 하늘 어머니라는 것이 중요하다.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생명수라야 전 세계로 흘러간다. 세상의 다른 유명한 신학자나 성경 연구가가 아닌 오직 하늘 어머니라야 가능한 예언이다.


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실과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실과가 끊치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실과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로 말미암아 나옴이라 그 실과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 (에스겔 47:12)

예루살렘 하늘 어머니로부터 흘러 넘친 생명수는 결국 강이 되고 그 강 좌우에는 달마다 새 실과를 맺는 생명나무가 자라고 있다. 그 실과는 먹을 만하고 잎사귀는 약재료가 된다는 에스겔 선지자의 예언은 시대를 뛰어넘어 요한계시록으로 이어진다.

또 저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노릇하리로다 (요한계시록 22:1~5)

구약시대 선지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생명수가 솟아난다고 예언한 반면, 사도 요한은 ‘어린양의 보좌’에서 흘러난다고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이 예언도 성령의 신부 되신 하늘 어머니께서 생명수를 주신다는 말씀과 일맥상통한다. 이는 ‘어린양의 보좌’가 뜻하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때에 예루살렘이 여호와의 보좌라 일컬음이 되며 (예레미야 3:17)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보좌, 즉 어린양의 보좌가 예루살렘이라고 증거했다. 다시 말해 사도 요한이 기록한 ‘어린양의 보좌’는 ‘하늘 어머니’를 뜻하는 것이다.

에스겔 선지자가 본, 달마다 새 실과를 맺는 생명나무가 있는 생명강이 예루살렘에서 흘러 넘치는 모습은, 어린양의 보좌에서 생명강이 흘러나오는 것을 기록한 요한의 계시와 같다. 이는 성경 전반에 걸쳐 우리 영혼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꼭 필요한 생명수는 오직 어머니 하나님을 통해 받을 수 있음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요한은 예루살렘 하늘 어머니께서 주시는 생명수를 받은 자들만이 하늘나라에서 세세토록 왕노릇하는 모습을 보았다. 누구라도 생명수를 받지 못한다면 영생도, 구원도, 천국도, 천국의 영광과 축복도 얻을 수 없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어 심한 갈증을 느끼는 이 시대 하늘 어머니께서는 지금 이 시간도 말씀하고 계신다.
“오라! 누구든지 와서 생명수를 받으라.”


출처 패스티브닷컴

하나님의교회는 성령시대 구원자로 임하신 안상홍님과 어머니하나님을 믿습니다.
하나님의교회에서 안상홍님과 어머니하나님 만나시고 영원한 구원의 축복 받으시길 바랍니다.





2014년 10월 9일 목요일

세종대왕의 한글&작은 배려가 위대한 업적을 만든다-2

작은 배려가 위대한 업적을 만든다.세종대왕의 한글-2



훈민정음 서문에서 밝힌바와 같이 세종이 한글 창제를 시작한 것은 어리석은 백성이 문자가 없어서 자신들의 뜻을 쉽게 전달하지 못하는 것을 가엾게 여긴데서 기인합니다. 지금 한글이 세계적으로 명성과 칭찬을 얻는 것은 바로 어리석은 백성을 배려하여 우리글을 만들고자 했던 세종의 작은 배려의 마음,역지사지의 마음이 없었다면 하글은 영원히 창제되지 못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한글을 창제했다는 것 외에도 백성의 어려움을 헤아려 그들의 고충을 해결해 주고자 고민하고 배려한 마음이 가져온 업적은 많았습니다. 해시계와  물시계,측우기 같은 과학적 산물도 농사를 짓는 농민들의 고충을 배려해 만든것이었습니다.

그의 이 같은 모든 업적은 바로 백성의 어버이로서 백성을 배려하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세종 대왕의 배려는 곧 백성을 향한 끝없는 사랑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그의그러한 마음은 급기야 그로 하여금 훌륭하고 뛰어난 임금에게 붙여
지는 칭호인 ‘대왕’이라는 칭호까지 얻게 했습니다.

어느 것 하나 부족할 것 없는 왕이었지만 눈을 낮추고 백성의 눈높이에서 백성을 이해하고 배려하기 위해 수고하고 애쓴 임금 세종. 임금으로서 절대 권력에 눈이 멀어 낮은 자를 돌볼 줄 모르고 자신의 배만 불리던 왕들은 비극의 역사와 수치 속에서 사라졌지만 낮고 어리석은 백성을 진정한 어버이의 마음으로 돌보고 배려했던 세종은 왕 중의 왕에게만 내려지는 ‘대왕’이라는 칭호까지 얻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백성을 위해 만든 한글도 오늘날 세계에서명성과 칭찬을 한몸에 받는 것입니다.


‘배려’로 귀한 열매 업적 쌓는 ‘왕 같은 제사장’이 되어

우주의 별들과 천군천사들을 다스리는 군주가 될 하늘의 자녀는, 훌륭한 왕 같은 대제사장으로서 온전히 하늘의 왕권을 이어받으려면 과연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이런 역사에서 배울 수가 있습니다.
부족할 것 없는 왕의 신분이었지만 어리석은 백성의 입장을 배려하여 어려운 여건 가운데서도 포기하지 않고 한글을 만들었던 세종 대왕의 어진 마음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떠올리게 됩니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장 3~8절).”

백성을 위해 한글을 만들었던 세종 대왕처럼 우리 하나님께서도 하늘의 절대 군주이셨지만 어리석고 미련한 하늘자녀들을 위해 친히 육신으로 오셔서 수많은 인고의 세월을 견디셨습니다. 땅에서 권세를 누리는 마귀를 일순간 멸할 수도 있는 권능을 가지신 왕이셨지만 하늘 자녀를 시기하고 미워하는 마귀에게 당신의 백성이 괴로움을 당할까싶어 하늘의 권능을 숨기고 오셔서 잃어버린 진리를 다시 찾아주셨습니다.

낮아지고 낮아져 종의 입장으로 십자가에서 죽으시기까지 당신의 자녀들을 배려하고 또 사랑하셨습니다. 연약한 육신의 모습으로 임하신 것도, 십자가에 죽으신 것도, 그리고 죄악이 가득한 세상에 물들어 생명을 얻지 못할까 하여사랑하는 어머니께서 이 땅에 계시는 것도 모두 어리석은 자녀들을 배려하는 하나님의 지극한 배려와 사랑 때문이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녀들도 그와 같은 하나님의 마음을 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주의 지존자이셨지만 낮은 데 처한 하늘 백성을 배려하는 마음, 어리석은 백성을 위해 한없이 당신을 낮추신 겸손한 마음, 한없이 자기를 낮추고 복종하고 순종하는 마음. 이러한 마음들이야말로 위대한 왕이라 불릴만한 성군의 마음일 것이며, 우주의 유업을 이어받아 수많은 별나라를 다스릴 수 있는 자격을 지닌 왕의 마음일 것입니다.

세종의 작은 배려가 한글이라는 큰 업적을 만들고 현재 온 세계의 명성과 칭찬을 받게 했다는 것을 반드시 기억해야하겠습니다. 형제자매를 나보다 낫게 여기고 배려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이루라 하신 업적을 무수히 남겨 온 세상의 칭찬과 명성을 받으리라는 예언을 이루어야 하겠습니다.

이 세상뿐만 아니라 온 우주의 칭찬과 명성까지도 얻을 수 있는 위대한 업적을 남길 수 있는 하나님의 왕 같은 제사장이라는 칭함을 얻을 수 있는 자녀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출처 하나님의교회 watv.org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글자, 세종대왕의 한글-1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글자.세종대왕의 한글-1



이세상에는 약3천종의  말이 있지만, 글자는 고작 60종 가량에 불과하다고 합니다.그러고 보면 우리나라는 소수민족만 가진 고유 문자를 사용하는 축복받은 나라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더욱 자랑스러운 것은 그 모든 글자 가운데 누가,언제, 어떻게 만들었는지 명확하게 밝혀진 글자도 한글밖에 없다고 합니다.

또 이세상에서 가장 합리적이며 독창적인 글자는 어떤것일까요?그것 역시 우리나라의 글자인 '한글'이라고 합니다. 한글의 우수성과 ,합리성,독창성 등은 이미 전세계 모든 언어학자가 인정하고 있고 또 훌륭하다고 격찬하는 바입니다.

미국에 널리 알려진 과학전문지 디스커버리지 1994년 6월호에서 레어드 다이어먼드라는 언어학자는 한글을'독창적이고 세계에서 가장 합리적인 문자'라고 극찬한바 있습니다. 그는 또 한글이 간결하고 우수하기 때문에 한국인의 문맹률이 세계에서 가장 낮다고도 말했습니다.

소설'대지'의 작가 펄벅도 한글이'전세계에서 가장 편리한 글자'이며 가장 훌륭한 글자'라고 인정했고'한글을 만든 세종대왕을 한국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로 극찬하기까지 했다고 합니다.언어 연구학으로 세계최고의 명성을 자랑하는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언어학 대학에서는 세계 모든 문자를 합리성.과학성.독창성 등의 기준으로 순위를 매겨 열거했는데 그 1위는 바로 한글이었습니다.

영국의 존 맨이라는 역사 다큐멘터리 작가는 세계 주요 언어의 자모(字母)의 기원을 추적한 그의 저서 ‘알파 베타’라는 책에서 한글을 ‘모든 언어가 꿈꾸는 최고의 알파벳’이라고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또 ‘모든 언어학자로부터고전적 예술 작품으로 평가된다’, ‘단순하고 효율적이고 세련된 이 알파벳은 가히 알파벳의 대표적 전형이다’, ‘인류
의 위대한 지적 유산 가운데 하나다’는 등 거듭거듭 격찬을 했습니다.

급기야 1989년 6월, 유네스코는 세계에서 문맹 퇴치에 공이 큰 사람에게 주는 상을 제정했고 그 상의 명칭을 ‘세종대왕 문맹퇴치상(King Sejong Literacy Prize)’으로 명명했습니다. 이 세종대왕상은 1990년에 인도 과학 대중화 단체가 처음 수상한 이래 세계 곳곳의 문맹퇴치에 커다란 공을 세운 단체에 꾸준히 수여되고 있는 권위 있는 상입니다. 수상자에게는 소정의 상장과 메달 그리고 38,000달러의 상금이 지급되기도 합니다.

이 상의 이름에 세종이라는 이름이 들어간 것은 세종 대왕이 만든 한글이 세계에서 사용하는 글자 가운데 가장 배우기가 쉬워 지구상의 문맹을 없앨 수 있는 글자로 가장 적합하다고 세계가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한류’ 열풍이 부는 등 우리나라의 국력이 신장하면서부터는 호주와 일본 등 여러 외국의 고등학교나 단체에서 한국어를 교육 과목으로 채택하기도 하였고, 미국에서는 1997년부터 미국대학입학 수학능력시험에 한국어가 포함되기도 했습니다. 이외에도 세계 여러 대학과 단체에서도 한국어 강좌가 꾸준히 신설되는 가운데 있습니다.


‘어린 백성’을 위한 세종의 작은 배려가 낳은 위대한 업적


전 세계 학자들이 인정하고 명성과 칭찬을 받으며 위상이 높아져 가는 한글.

지금은 세계적으로 그 독창성과 합리성을 인정받아 전 세계의 명성과 칭찬을 받는 처지이지만 현재의 영광이 있기까지 순탄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한글은 처음 탄생하였을 때만 해도 양반들에게서 철저하게 외면당하던 천덕꾸러기 글자였습니다. 심지어 품위 있는 양반집 자제 이름에 비해 하층민 자제의 이름들이 ‘개똥이’ 수준이었던 것처럼 ‘상말을 적는 상스러운 글자’라는 뜻이 있는 ‘언문’이라는 이름으로 불려 한자에 대하여 비하되기까지 했습니다.

남의 나라 글자인 한자보다 배우기도 쉽고 쓰기도 편한 우리나라 글자였음에도 태어나자마자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것은 양반층의 집단 이기주의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양반들이 사용하던 한문은 서민과 양반을 구분 짓는 척도와 같았습니다. 한자는 양반 계층만이 사용할 수 있는전유물이었던 것입니다. 많은 일반 서민층은 글자가 없어서 불이익을 당해도 자신들의 뜻을 마음대로 펼칠 수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계층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이 한글을 사용한다는 것은 곧 양반 중심 계급사회의 붕괴를 의미하는 것이었기에 양반들이 좋아할 리가 없었습니다.

세종은 지배계층의 최상위에 존재하는 한 국가의 왕이었지만 양반들의 반발이 있을 것이 자명했기에 한글을 만든다는 사실을 알리지 못하고 혼자서 근 10여 년 동안 한글을 만드는 데 온 열정을 쏟았습니다.

일반인들은 집현전 학자들과 함께 한글을 만든 것으로 알고 있지만, 세종 혼자서 한글을 만들고서 집현전 학자들에게 알려 반포하게 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렇듯 한글 창제는 양반층의 눈을 피해 만든, 세종 혼자만의 비밀 프로젝트였던 것입니다.

세종이 양반층의 거센 반발도 무릅쓰고 한글을 만들기로 한 것은 다름 아닌 글자가 없어 제 뜻을 마음껏 표현하지못하는 ‘어린 백성’ 즉 ‘어리석은 백성’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훈민정음 서문을 보면 세종이 한글을 창제하고자 한분명한 이유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 말이 중국과 달라 한자와는 서로 통하지 아니하여서 이런 까닭으로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가 이것을 가엾게 생각하여 새로 스물여덟 글자를 만드니, 모든사람으로 하여금 쉽게 익혀서 날마다 쓰는 데 편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다(현대어로 해석).”

한자는 우리말을 표현하기에 어렵고 배울 기회도 쉽지 않아 양반을 제외한 서민층은 답답한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서민들의 애환을 알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유능하고 실력 있는 대학자가 많았지만, 누구도 어리석은 백성의 고충을 헤아리거나 안타까워하는 이는 단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세종 대왕이 한글을 만들었을 때에도 양반들은 ‘낮고 천하고 이익이 없는 새로 된 글자’로 한글을 업신여길 뿐이었습니다. 학자들은 대대적으로 상소문을 올려 연일 세종을 괴롭게 하기도 했습니다.

모두가 다 아는 글자를 만들 수 없다는 그들의 주장은 오직 자신들만이 문화적 사치를 누리겠다는 집단 이기주의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세종은 특권을 놓치기 싫어 한글 사용에 반대하던 많은 양반과 학자들을꺾고 백성의 어버이로서 어리석은 백성에게 문자를 주어 뜻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한글은 이후 모든 백성으로 하여금 각자의 뜻을 마음껏 글로 펼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훈민정음은 처음부터 백성을 위해 제작된 글인 만큼 배우기가 어렵지 않아 주로 여성과 일반 백성을 중심으로 보급됨으로써 민족의 얼을 담아내는 많은 작업에 도구로 쓰였고 문학적, 역사적으로 크게 이바지를 하게 됩니다.

이 한글은 일본강점기 때, 민족의 얼을 없애려는 식민지 정책에 의해 한동안 난관이 있기도 했지만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언문’이라는 천시받던 이름도 20세기에 와서 주시경 선생에 의해 ‘한글’이라는 새 이름으로 다시 태어나 세계 속에 그 위상을 우뚝 세우게 되었습니다

출처 하나님의교회 watv.org

2014년 10월 8일 수요일

가족(family)의 어원<하나님의교회 패스티브닷컴>

가족(family)의 어원


5월이 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이있다.'가족'이다.세상에서 지치고 힘든 마음을 위로해주고 편안한 쉼터가 되어주는 이들.우리는 그들을 가족이라 부른다.
가족의 품은 따뜻하다. 가족이 없다면 아마도 우리의 삶은 쓸쓸하고 고독할 것이다.


가족은 혈연에 바탕을 둔 자연적인 조직으로서,인류가 시작된 이래 사회를 이루는 기본단위로 존재해 왔다.가족의 결속력은 현실을 뛰어넘는 숭고한 사랑으로까지 이어지기도 한다.죽어가는 엄마를 위해 간을 떼어준 두딸의 이야기,트럭에 깔린자녀를 구하기 위해 초인적인 힘을 발휘한 엄마의 경우가 그러하다.

화창한 봄날,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공원을 거니는 어린아이들이 행복해 보이는 것도 가족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가족 구성원에게 있어서 가족이란 행복 그 자체이자 영원한 안식처이며 세상 풍파의 바람막이와도 같다. 가족의 품이 따뜻한 이유는 아마도 자녀를 한없이 사랑으로 반기는 부모님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FAMILY(가족)의 어원은 ‘Father And Mother I Love You’의 첫 글자를 합성한 것이라고 한다. 즉,  ‘Family’라는 단어에는 ‘아버지 어머니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가족의 어원에서 느껴지듯 가족이란 서로의 사랑이 바탕이 되는,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영혼도 돌아가야 할 따뜻한 가족의 품이 존재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 (마태복음 6:9)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갈라디아서 4:26)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 (고린도후서 6:18)

짧디짧은 인생이라도 우리는 아버지와 어머니, 형제들을 그리워하고 사랑하며 살아간다. 우리 영혼의 가족도 이러하다. 힘들고 지친 영혼을 위로해주시는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계시고 서로를 격려해주는 형제자매의 사랑이 있는 곳이 존재한다. 가장 편안하고 따뜻한 그곳은 바로 천국이라고 불린다. 당신이 천국 가족의 일원이라면 단연 하늘 아버지와 하늘 어머니의 존재를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하늘 부모님을 사랑할 것이다.

출처 패스티브닷컴

가족의 어원에 이렇게 깊은뜻이 있었네요
세상 에서는 어느누구도 믿을수 없고 의지 할수없지만 가족만큼은 믿고 의지할수 있는것 같습니다.우리의 하늘가족들도 마찬가지 입니다.하늘 부모님 품에 평안을 누리고  행복을 얻을수 있습니다. 

2014년 10월 7일 화요일

마음의 힐링, 엄마





부르면 눈시울이 붉어지고, 부를수록 그리운 이름.우리는 그분을'엄마'라고 부른다.

'엄마 찾아 삼만리'는 1976년 일본에서 이탈리아 작가 에드몬도 데 아미치스가 19세기 후반에 발표한 단편동화 <아페니니산맥에서 안데스 산맥까지>라는 작품을 각색하여 애니메이션으로 재탄생된 명작이다.
이탈리아에서 아르헨티나까지 약 1만 2,000킬로미터에 이르는 거리를 아홉살 소년 '마르코'가 엄마를 찾아 떠난다는 내용으로, 우리나라에서도 방영되어 큰 인기를 모은바있다.

주인공 마르코에세 가장 큰 존재였던 엄마와의 소식이 끊기자. 마르코는 스스로 엄마를 찾아 머나먼 여정에 오른다. 힘겨운 여정에 오르는 소년 마르코의 모습에 애절한 주제가가 더해져 안타까움과 감동을 더했다. 특히 엄마와 마르코가 재회하는 장면은 보는 이들의 눈시울을 붉히게 했다.

사진출처[만화 '엄마 찾아 삼만리']

어떻게 보면 케케묵은 고전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지금 보아도 감동적인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엄마'라는 시대를 초월한 공감 때문일 것이다. 엄마가 필요한 사람은 마르코뿐만이 아니다. 엄마에게서 태어난 이 세상 사람들은 누구나 마음의 안식처, 엄마를 찾는다.

한편 영국문화협회에서 세계 102개국, 4만 명을 대상으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영어 단어를 조사했다. 결과는 'Mother(어머니)'였다. '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따뜻함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공통된 정서인 것이다.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갈라디아서 4:26)

우리 영혼에게도 어머니가 존재한다. 어머니와 우리와의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는 하늘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어쩌다 그 품을 떠나 곤고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처지가 되었지만, 우리는 하늘 예루살렘 어머니로부터 세상 어디에서도 받을 수 없는 따뜻한 사랑을 받은 존재들이었다(이사야 50:1, 이사야 49:15). 그런 우리들에게, 진실한 사랑을 찾아보기 힘든 이 세상은 고달플 수밖에 없다. 온갖 물질의 풍요로움을 누리고 살면서도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과 괴로움을 하소연하는 목소리들이 높아져가는 이유다.

어미가 자식을 위로함같이 내가 너희를 위로할 것인즉 너희가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으리니 (이사야 66:13)

요즘 힐링 열풍이 빠르게 번지고 있다. 힘든 세상살이에 지친 내 영혼에게 편안한 안식과 위로를 주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힐링의 효과가 일시적인 위로는 될지언정 영원히 지속되지 못하다는 점이다. 진정한 힐링은 내 마음의 안식처이자, 내 마음의 고향이자, 나를 지으신 하늘 어머니의 사랑으로 채워질 수 있다. 세상에 힐링 열풍이 부는 것도 어쩌면 우리 영혼이 하늘에서 받은 하늘 어머니의 따뜻한 사랑을 갈구하는 표현일지도 모른다.

자, 하늘 예루살렘 어머니께서 당신을 찾아 먼 길을 달려오셨다. 부디 동화 속 주인공처럼 어머니를 찾아 당신의 영혼을 위로하고, 하늘에서부터 시작된 '엄마 찾아 삼만 리'의 여정에 '행복'이라는 마침표를 찍길 바란다.

출처 패스티브닷컴

'엄마'라는 단어 자체가 힐링인거 같네요.
하늘어머니를 만나 진정한 힐링을 받을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하나님의교회 생각그릇넓히기& 한계는없다 [백곡 김득신편 ]

하나님의교회 생각그릇넓히기& 한계는없다 [백곡 김득신편 ]




백곡 김득신은 시인이자 조선 최고의 독서가로 유명합니다.
책을 얼마나 많이 읽었던지 그의 독수기에 실린 36권의 책 모두 1만번 이상 읽었으며,특히 사마천이 쓴 [사기]의 [백이전]은 무려 1억1만3천번이나 읽었다고 합니다.

그가 책에 그토록 몰두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는 명문 사대부가의 자손으로 태어났지만 어릴때부터 학습능력이 떨어져 열살이 되어서야 겨우 글을 배우기 시작했고,스무살에 비로소 작문을 했다고 합니다.
아무리 글공부를 열심히 해도 돌아서면 잊어버렸기에 남보다 더 많은 오력을 기율였던 것입니다.
그가 포기하지 않고 학문을 이어간 데는 아버지의 역할도 컸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공부 못하는 아들을 나무라기보다 성실한 자세로 책을 가가이하는 아들을 오히려 대견하게 여기며,학문의 성취가 늦더라도 읽고 또 읽으면 반드시 대문장가가 될 거라고 격려해 주었습니다.
그리하여 김득신은 59세라는 늦은 나이에 과거에 급제하여 성균관에 입학했습니다.

[재주가 남만 못하다고 스스로 한계를 짓지말라. 나보다 어리석고 둔한 사람도 없겠지만 결국에는 이룸이 있었다. 모든것은 힘쓰는데 달려 있을 따름이다.]=>( 김득신이 스스로 지은 묘비문中)


책 한권읽기도 어려운데  한권을 만번이상 읽는다는것은 정말 대단한일입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끊임없는 노력으로 채워 결국 과거에 급제까지...
노력은 그 결실을 분명맺게 되네요^^ 

엘로힘하나님<아버지하나님&어머니하나님>


하나님은 두분이다

성경은 심해와 같다.깊고 오묘한 수수께끼의 연속이다.
수수께끼는 성경첫장부터 존재한다. 그중 하나가'우리'라는 하나님이다. 아니 '하나님들' 이다



구약성경의 원전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성경에는 ‘하나님’이 복수명사 ‘אֱלֹהִים (엘로힘)’으로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들’로 해석되는 이 표현은 구약성경 39권에 걸쳐 2500회 이상 등장한다. 하나님이 한 분이 아니라는 뜻이다. ‘엘로힘’이라는 이 수수께끼 같은 단어 속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하나님들,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하나님


하나님께서는 피조물인 사람의 형상을 통해 당신을 왜 복수의 하나님으로 표현했는지 알려주셨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세기 1:26~27)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모델로 하여 사람을 창조하셨는데,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 이는 남성적 형상의 하나님과 여성적 형상의 하나님 두 분이 존재한다는 의미다. 두 분의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증거는 이뿐만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사역을 하시며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 속에서도 한 분이 아닌 두 분, 즉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께서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성경은 온 세계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항상 두 분의 하나님이 역사하셨음을 ‘엘로힘’과 ‘우리’라는 표현을 통해 증거하고 있다.

…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여 그들로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창세기 11:1~7)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이사야 6:8)

오만한 인간들의 바벨탑 건설을 중단시키시는 역사를 행하시는 분도 두 분이다. 복음을 전할 사람들을 찾으시는 분도 한 분이 아니다. 이는 구원의 역사를 이끄시는 하나님이 늘 두 분이 존재했다는 증거다. 바로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이다.


하늘가족의 대표,아버지 하나님


대개는 “아버지는 한 분뿐이시니 곧 하나님이시로다(요한복음 8:41)”, “주도 하나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에베소서 4:5~6)” 하신 말씀을 인용하며 하나님은 한 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말씀을 자세히 연구해보면 아버지 하나님이 한 분이라는 뜻이지, 하나님이 유일신이기 때문에 한 분만 존재한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즉, 아버지로서의 하나님이 한 분이시며 아버지 하나님은 유일하게 한 분이라는 말씀이다.
다른 어떤 신도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한 분뿐”이라고 하신 것은 어머니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표현이 아니다. 오히려 어머니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반증이다.

하나님은 분명 두 분이신데, 성경은 왜 “아버지는 한 분뿐이시니 곧 하나님이시로다”,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고 표현한 것일까. 이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갖고 계시는 대표성 때문이다.

예를 들면, 한 가정의 구성원으로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을지라도 가족의 대표인 아버지의 이름만 적어 문패를 거는 이치와 같다. 누구나 아버지의 이름이 갖는 대표성 때문에 그 집에 아버지 혼자만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당연히 어머니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늘 가족에도 이처럼 대표자이신 아버지 하나님이 계시고 어머니 하나님이 계신다.

또 다른 예로, 아담과 하와의 경우를 들 수 있다. 성경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다”고 기록되어 있다(로마서 5:12~19). 즉, 아담 한 사람이 죄를 지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따 먹고 죄를 지은 사람은 아담과 하와 두 사람이었다. 죄를 지은 사람이 두 사람인데도 ‘한 사람’이라고 표현한 것은 아담이 갖는 대표성 때문이다. 이를 두고 하와는 죄를 짓지 않았다고 해석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따라서 “아버지는 한 분뿐이시니 곧 하나님이시로다”,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하신 말씀을 “하나님은 한 분뿐”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성경을 단편적으로만 이해하여 곡해한 것이다.

엘로힘, 성령과 신부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께서 구원의 역사를 이끄시는 장면은 성경 전반에 걸쳐 담겨 있다. 다음은 성경 마지막 장에 묘사된 두 분의 구원자에 대한 기록이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 22:17)

하나님께서 성령과 신부의 모습으로 나타나셔서 구원을 베푸신다는 예언이다. 성령은 아버지 하나님이다. 신부(bride)는 말 그대로 성령의 아내이니 ‘어머니 하나님’인 것이다. 다시 말해 성령과 신부는 창조 시에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하시며 인류를 창조하신 엘로힘, 즉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이다.

어머니하나님께서는 인류에게 영원한 생명을 허락하시기 위해 마지막 성령시대에 이땅에 오셨다.잃어버린 자녀를 찾는 일은 아버지만의 몫은 아닐것이다.


출처-패스티브닷컴





만물과 성경이 증거하는 하늘어머니<하나님의교회>=어머니하나님


만물과 성경이 증거하는 하늘어머니<하나님의교회>=어머니하나님

이 세상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없이 태어나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살과피를 이어받아 우리는 생명을 얻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생명을 주신 분을 아버지 어머니라고 부르지요.
아버지 어머니는 자녀들에게 생명의 근원이요 생명의 요람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아버지 안상홍님과 어머니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교회는 생명이 있는 유일한 교회입니다.
하늘아버지 하늘어머니께서 계신 하나님의교회에서 자신의 
목숨보다도 더 자녀를 사랑하는 하늘부모님의 사랑을 깨닫고 모두 
하늘 천국본향으로 돌아가는 자녀가 되시길 바랍니다.



생소하신가요?^^
먼저 하나님의교회 uccspace를 통해 어머니 하나님이 계심을 좀더 쉽게 살펴볼께요




잘 이해되시나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나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는 사람이라면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먼저 깨달아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사망으로 부터 해방시키시어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성경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성경에서는 아버지 하나님뿐만아니라 하늘어머니께서 존재하심을 분명하고 확실하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전통과 관습이라는 사슬에 얽매어 성경이 증거하고 있는 하늘어머니의 존재를 부인하며 비방하고 있습니다.
성경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육의 어머니로 부터 육신적인 생명을 받듯이 우리 영혼의 생명은 영의 어머니 즉 하늘어머니로부터 주어지게 됨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 만물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뜻을 담아 창조 하셨습니다.
계 4:11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또한 만물을 통하여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신성도 알 수도 있도록 허락하셨습니다.
   
롬 1: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눈에 보이는 모든 만물은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신성을 깨닫게 하시고자 하나님의 뜻을 담아 창조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만물중에 눈에 보이는 육의 어머니를 존재케 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는 육의 어머니를 통하여 하늘어머니께서 계심을 알려 주시려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만물과 성경을 통해 증거하신 하늘어머니를 믿는 하나님의교회에서는 하늘어머니의 사랑으로 밝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끊이 없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에서 하늘어머니의 사랑도 확인하시고 믿음의 목적인 영혼 구원의 축복도 받으세요.